세계의 감독 6인이 말하는 오즈 야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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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단순한 사물을 지그시 응시하는 예술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나는 오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내 영화는 할리우드영화처럼 큰 사건도 없고, 또 드라마적이지도 않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내 영화에 대한 옹호자와 비판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들 모두가 오즈를 거명했다. 지지자들은 내 영화를 옹호하기 위해 오즈를 말했고, 비판자는 오히려 그 부분을 비판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초등학생의 인생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스토리가 프레임 안에서 흘러넘치면 관객은 피곤해한다”라고. 그 점에서 오즈는 나의 변호사였다. 오즈의 영화에서도 역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와 장면만으로 오즈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첫눈에 무언가 새롭다고 느꼈다. 영화가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프레임에서 프레임으로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오즈를 존경하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에 많은 감독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영화를 만드는 우리 각자는 상상적으로 오즈와 관계를 맺고 있다. 언젠가 빔 벤더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즈의 영화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사물을 예술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그걸 듣고 왜 이 감독이 오즈 영화를 동경하는지 알게 되었다. 벤더스가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오즈가 최고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있다. 오즈는 예술을 가르쳐준 것이다. 평상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단순한 사물, 그것을 지그시 응시하는 예술을…. 이것이 오즈의 제일 중요한 점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는 ‘사물 그 자체’가 느껴진다. 그의 예술세계는 간단하고 평범하다. 장식없는 수수한 세계이다. 그러나 깊은 표현을 담고 있다. 이해시키려 하는 것도, 결과를 강제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인위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영화 <달과 연못>을 오즈 감독과 ‘본다는 것’에 충실한 관객에게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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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뇰 드 올리베이라

산문적이어서 시적인...

먼저 오즈에게 오마주를 바치게 되어 영광스럽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오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짧은 에세이 <소박과 순수의 철학자>라는 글을 쓰고, 파리에서 오즈의 훌륭한 영화 두편을 본 정도이다. 바로 <동경이야기>와 <꽁치의 맛>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작품만을 보고도 그가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있고, 또 순화된 작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즈의 영화에는 미조구치 겐지가 보여주는 리얼리스틱한 면을 넘어설 수 있을 만한 리듬감은 없다. 그러나 그보다 산문적이다. 그 점이 또 다른 종류의 시적인 힘을 갖게 한다. 이건 영화 <만춘>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즈와 나의 공통점을 먼저 얘기하면 그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감정의 표현법이다. 오즈의 작품에서 감정의 표현은 억제되어 있다. 나 역시 감정표현을 너무 드러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고 관객 자신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판단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동은 결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 아니다.

그 점에서 <만춘>의 딸의 감정 역시 매우 억제되어 있다. 여기에는 감싸주고 보살펴주기를 필요로 하는 딸에게 더이상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딸의 행복을 비는 깊은 애정이 승화되어 있다. 육체적인 느낌보다는 아버지로서 딸의 행복을 비는 사랑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섹스는 자연의 일부이고 육체적 상상이지 감정은 아니다. 일순간의 동요로 나오는 부분도 있다. 생물적인 욕망으로서의…. 그래서 <만춘>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 이상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딸이 아버지를 떠나서 결혼을 하면 둘이 살아왔던 그 관계는 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애정에 대한 것이지 육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요시다 감독의 말처럼 이 장면에 성적욕구가 표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딸과 아버지의 애정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생일 역시 오즈와 같은 12월1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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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샤오시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그만의 방법

<가배시광>을 어제 겨우 끝마쳤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만춘>과 <태어나 봤지만> <동경이야기>를 다시 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들이고, 특히 <태어나 봤지만>은 1985년에 내가 처음 본 오즈의 영화이다. 신기한 것은 오즈의 영화는 볼 때마다 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즈의 영화는 내게 있어 한마디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글로 시작해보려 한다. 그는 어느 문학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사물의 사실은 표면에 숨겨져 있고 표상으로서 상징되어 있다. 그래서 문자라는 것은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것이다”라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어떻게 연결하느냐,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물과 사실을 보여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오즈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이다. 오즈 감독은 삶의 직접적인 표면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그러나 되풀이하여 보면 그것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생활의 디테일, 즉 감추어져 있는 듯한 작은 것들이 각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깥에서 <만춘>의 딸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나도 거기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허우샤오시엔은 영화 상영 직전 필름을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둘의 관계를 통해 가정과 집에 대한 지배권, 쉽게 말하면 누가 이 집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담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이가 많아져서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외출하기를 원한다. 아내는 자신의 영역인 집에 내가 오랫동안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28살짜리 딸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에게 집은 일상을 공유해나가는 그녀들만의 영역인 것이다. <만춘>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면 하라 세스코가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손님과 장기인지 트럼펫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웃는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하지만 그뒤의 표정은 뭔가 못마땅해하고 있다. 자기의 집에 허락도 없이 누군가 침범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 컷에서 <만춘>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확실히 느꼈다. 하라 세츠코가 연기한 딸은 성적 욕구를 느끼는 남성으로서의 아버지를 떠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엄마 대신에 지켜왔던 아버지를 포함하여, 즉 집(가정)을 떠나기 싫은 것인지 모른다. 이것은 일상 그 자체이다. 이러한 사소한 감정의 변화는 계속된다. 일상에서 느끼는 여성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오즈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그걸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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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다 히로카즈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지만 역동적인 힘

대학에 입학했던 20살, 오즈의 영화 <태어나 봤지만>과 <낙제는 했지만>을 보았다. 분명 이때까지 본 쇼치쿠의 영화와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 뒤이어 <만춘>과 <동경이야기>를 봤는데, 한마디로 그 느낌은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오즈의 영화를 보고 처음 강하게 받은 인상은 ‘대사가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이 점이 매우 의문스러웠다. 특히 류 치슈의 의미없는 듯한 대사가 반복될수록 어딘지 모르게 리듬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나의 시나리오 안에 그것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오즈를 모방하는 형태로 대사의 반복을 집어넣어본 것이다. 내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접한 것은 20대 후반인데 그 이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그를 모방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그리고 30대가 되어 <환상의 빛>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나는 영화 속 어떤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낡은 일본 가옥 한채를 찾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넓은 집이면 오즈의 영화처럼 찍을 수 있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큰 툇마루와 10조의 다다미를 찍을 때 표준 렌즈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삐딱한 여러 각도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제일 안정감 있는 각도는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오즈 영화 같은 숏이 나와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모방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표면적으로 나의 영화는 오즈 영화를 많이 모방했지만 내가 찍은 것이 정지되어 있고 정적인 듯한 느낌이라면 오즈의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정적이지만 그 안에는 역동적인 감정이 흐른다. 이것이 차이이다. 그는 가장 동적인 순간에도 정적인 느낌을 사용하여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실패로부터 ‘이제 오즈로부터 벗어나자’라고 각오했다. 그래서 ‘나만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특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시기의 나의 자유로웠던 감각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다. 이것이 내가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영화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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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신지

’나란히’신으로 중독시키다

나는 선배들과 달리 오즈와 아무 관계없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또 그것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는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오즈라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 하고. 어제 나는 텔레비전에서 <태어나 봤지만>을 보았다.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옆으로 나란히 있는 형제장면이었다. 이 ‘나란히’ 기법이 새로운 한편의 영화, 아니 몇십편의 영화가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현상이었다. 이런 장면을 일본영화 안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들의 나란히 신을 보면서 오즈를 떠올리는 것은 오직 나뿐일까? 예를 들어 마키노 마사히로 감독의 <죽어주세요>에서 다카쿠라 겐과 동료가 나란히 있는 신, 그리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의리없는 전쟁>에서 고바야시 아키라와 다른 인물이 나란히 있는 신은 결국 오즈를 연상시킨다. 후카사쿠 긴지는 오즈와 정말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내 영화 <유레카>의 경우에도 인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신이 있는데, 오즈의 영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오히려 이 장면을 <와일드 번치>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오즈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오즈에게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오즈 중독’에 대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오즈 중독에 대한 더 명확한 예는 최근에 만든 <달의 사막>이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일부러 일본 가옥을 넣었고 카메라의 위치도 오즈처럼 하려 했다. 그리고 이야기도 가족의 일상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렇게 전부 오즈식으로 하면서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 좀더 새로운 영화가 되는 것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좌절’했다. 왠지 모르게 지루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즈는 좌절을 한 적이 없을까’라고 말이다. 최근에 오즈의 초기작 <즐겁게 걸어라>를 봤는데 그것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 오즈도 뭔가를 모방하려 하다가 좌절한 경우라는 것이다. 즉 미국영화를 모방하려고 하다가 좌절을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즈의 경우는 그 좌절로 인해 오히려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좀더 말하자면, 야마나카 사다오의 <인정지풍선>의 어떤 숏은 <즐겁게 걸어라>의 이동 숏과 정말 닮아 있다. <인정지 풍선>의 경우는 오즈의 숏을 모방하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오즈의 영화가 야마나카 사다오 영화보다 훨씬 전의 영화이다). 다시 말하면 오즈가 미국영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경우, 그리고 야마나카 사다오가 오즈를 염두에 두었지만 극복한 경우가 나에게 큰힘을 준다. 오즈도 좌절했다는 점, 그를 모방한 또 다른 감독이 오즈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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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

그는 우리의 무의식이다

오즈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년 전인 1980년 초 필름센터에서 하는 오즈 회고전에서였다. 그때 거의 전 작품을 보았다. 보기 전에 나는 오즈의 영화가 일본의 일상에 대해 담담하고 평화롭게 그려내는 홈드라마라고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정반대였다. 이것은 아마 오즈 영화의 스테레오 타입을 부수고 재평가하자는 그때의 분위기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오즈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뭔가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8mm영화를 찍을 때는 오즈를 응용하자는 분위기의 한편에 속해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카메라의 포지션과 시선, 즉 연출을 모방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레다 감독이 지적한 것처럼, 오즈를 흉내내고, 류치슈의 연기를 그대로 흉내내는 연기를 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 오즈에 대한 모방을 그만두었다. ‘오즈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그만두었다. ‘오즈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된 것이 일본 전통 가옥 안을 찍는 것이었다. ‘가능한 한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자’라고 다짐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강령>이라는 호러영화를 찍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일본 가옥 안을 찍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오즈는 피하자’라는 강박관념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집안에 들어간 촬영기사는 갑자기 카메라의 높이를 낮추고 있었다. 주인공인 야쿠쇼 고지 역시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고정된 카메라에 맞추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말 마술 같은 일이었다. 촬영기사와 배우들 역시 오즈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일본 가옥신만큼은 오즈의 영화처럼 나와버렸다. 사실 지금은 오즈를 의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강하게 거부하는 것 역시 이전에 그에게 강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오즈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로, 그가 뭘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수수께끼로 남겨둔 채로, 나만의 다른 연출을 생각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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