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の中の牝鷄 바람 속의 암탉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imdb

오즈 야스지로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영화는 전통적 미덕을 지닌 여성에게 호의를 보냈으며, 가령 <오차즈케의 맛>의 다에코처럼 그런 미덕을 지니지 못한 현대적인 여성은 비난어린 시선으로 묘사합니다.

물론 반동적인 여성관 때문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비난하는 것은 편협하거나 부당한 처사겠지요. 하지만 오즈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플롯에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전장에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궁핍한 삶을 살던 도키코는 아들이 갑작스레 장염에 걸리자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단 한번 매춘을 합니다. 뒤늦게 돌아온 남편에게 이 멍청한 도키코는 그 사실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이 사실에 분개한 남편은 도키코를 집요하게 구박합니다. 심지어 우발적이긴 했지만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리기까지 해요. 도키코는 죽을 죄를 지었다며 내내 질질 짜구요, 볶아먹든 삶아먹든 니 맘대로 처분해달라며, 아내와 어머니의 도리를 지켜내지 못한 자신을 학대합니다. 남편의 개지랄도 다 받아들이구요. 화 한번을 안내요. 불가항력이었다는 변명도 않고.

가장 가관인 장면은 도키코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후 쩔뚝거리며 힘겹게 윗층으로 올라가는, 그 새디스틱한 씬입니다. 고난에 찬 여성의 일생을 미학적으로 승화한 봉건적 여성관의 감독들을 우린 숱하게 보아왔지요. 라스 폰 트리에 같은 작자들요. 오즈의 저 장면도 라스 폰 트리에 영화의 한 장면 못지않게 불쾌한데, 도키코가 겪게 되는 저 물리적 시련이 (당대의 윤리의식에 따라 규정되고 Ozu가 반복하고 있는) '죄값'에 대한 '회개'와 '응징'의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친구인 류 치슈와의 대화에서 아내를 이성적으로는 용서하겠는데 감정적(?)으로는 용서가 안된다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냥은 용서할 수 없었던 거지요. 자신의 실수로 부상을 입은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용서가 된 것입니다. 차라리 아내에게 직접적인 폭행을 가했다면 그 솔직한 반응에 공감(?)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쩔뚝거리며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는 아내를 조금도 부축하지 않고 퍼대고 앉아 있는 남편의 모습은 죄없는 범죄자를 가혹하게 심판하는 율사의 모습처럼 냉정하고 비열해보였습니다.

<피안화>에서 어머니를 연기한 다나카 기누요가 도키코 역을 맡아 답답하기 그지없는 여인상을 연기합니다.   

단 한 번도 웃을 일 없는, 어두운 영화였어요.   (2004·06·06 23:31)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바람 속의 암탉 風の中の牝鷄
A Hen in the Wind
1948년, 83분, 흑백, 영어자막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에 나간 남편 슈이치는 돌아오지 않고 소식도 없다. 남편 없이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던 도키코는 아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판다. 그러던 중 슈이치가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남편에게 매춘 사실을 고백하는데..
미조구치 겐지의 <밤의 여인들>에서 창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인기 여배우 다나카 기누요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 전작인 <셋방살이의 기록>이 도시 인정물의 연장선상의 희극적인 작품이었다면, <바람속의 암탉>은 패전 후의 생활고와 가혹한 현실을 다룬 작품으로 가족간의 갈등을 주로 다루었던 오즈의 작품 세계에서 전후 일본사회에서 겪는 여성의 수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전후 일본의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묘사로 동시대의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작품이지만, 오즈의 후기 영화미학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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