たそがれ淸兵衛 황혼의 사무라이 ★★★☆
감독 : 山田洋次  야마다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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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씨네큐브에서 영화 한 편 땡겼습니다.

근사한 포스터와 달리 본격 칼싸움 영화는 아닙니다. 딱 두 번, 칼싸움을 보여주긴 하는데 그닥 멋을 부린 장면도 아니구요. 사무라이이기 보다 농부이고자 했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일본에서 평단과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사무라이' 영화라는 장르적 이유가 아니라, 주인공 이구치가 오늘날의 '아버지'와 겹쳐지는 그 현재성에 있을 것입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그 때문에 자신을 돌볼 시간이나 여유가 없는 아버지. '조직'에 묶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상이나 신념과는 반대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 가족을 사랑하며 소박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 그런 모습들이 지금의 '아버지'들의 일상의 모습이나 고민과 많이 닮아 있어 시대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선 감동을 주는 것일 테지요. 

그렇지만 이구치가 현실의 '아버지'상과 100% 겹치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이구치는 재능과 인격을 갖춘 완벽한 인물이에요. 당대의 검객과 합을 겨룰 수 있는 뛰어난 사무라이일 뿐만 아니라, 가난에 찌들려 살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며 출신양명의 욕망도 드러내지 않는,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입니다. 자식과 노모에게는 상냥하고 다정한 아버지구요. 이렇듯 완성된 인간으로 설정된 이구치이기에, 영화는 흡사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나 환경에 처한 영웅적 인물의 좌절을 그린 비극처럼 보입니다. 이구치의 죽음도 역사적 격변과 무관하지 않구요. 하지만 가난 때문에 이러저러한 수모를 겪고 일생의 소망이었던 여인과의 결혼도 할 수 없었던 이구치가 한결같이 자신의 가난한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욕망과 회한과 분노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아버지'가 이 땅 위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이 영화가 이구치을 통해 묘사하는 '이상화된 아버지상'이 묵직한 감동과 함께 잃어버린 어떤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비슷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구치 정도면 '영웅'이지 결코 평범한 아버지가 아닌 거지요.

이구치의 시종 쯤으로 나오는 배우는 '바보'역 전문인가보군요. 작년에 보았던 <무능한 사람>이란 영화에서도 바보로 나와 혀짧은 소리를 내었었는데... 요고 역의 타나카 민 이라는 사람은 팜플렛에 의하면 '세계적인 무용가'라는군요. 어쩐지 이구치 칼에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의 몸부림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어요. <메종 드 히미코>의 그 게이 할아버지랍니다.

'산타페'의 여인 미야자와 리에의, 노화의 징후가 드러나는 얼굴은 약간 안스럽더이다.  (200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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