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Clint Eastwood
imdb    naver   

진짜 아들을 찾기 위한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 분)의 노력이 부패한 권력에 의해 번번히 좌절되는 장면을 보면서, 전 '보지 말아야 할 영화를 보러 왔구나' 후회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제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감독이고 그의 영화는 언제나 100% 신뢰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체인질링>이 드러낼 어떤 진실이 무척 고통스럽고 잔인할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신경이 날카롭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요즘의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영화였어요.

크리스틴의 고난에 더욱 분노하게 되는 이유는, 부패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폭력성은 20년대 미국에서나 2009년의 한국에서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패하고 폭력적인 경찰, 진실을 왜곡하길 주저않는 전문가들, 권력의 입맞대로 왜곡된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 그들에게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법체제. 2009년 우리의 상황과 놀라울만큼 닮아 있지 않습니까? 차이가 있다면 우리의 개신교는 <체인질링>처럼 사회적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점, 우리 사회에는 왜곡되고 편향적인 정보에 속아넘어가는 바보들이 <체인질링>보다 많다는 점, <체인질링>처럼 시위를 한다면 우리는 물대포와 경찰특공대를 만나게 될 거라는 점, 그리고 우리의 권력층은 <체인질링>의 그들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견고하게 연대하고 있어 <체인질링>에서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은 모든 종류의 권력에 내재된 본질적인 속성일 것입니다. 그게 정치적 권력이든 의학적 권위든 종교적 권위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그러한 속성이 야만적인 폭력으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선 어떠한 권위든지 서슴없이 비판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들이지요. 앞으로는 더더욱 요원해질 것이구요. 안봐도 뻔한 수순을 밟으며 조만간 MB악법이 통과되면 우린 <체인질링>의 20년대 미국과 다를 바 없는 '민주사회'에서 살게 될테지요. 누군가가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을, 그들의 불의에 대한 비난을, 생존의 요구를 외치면, 어디선가 나타난 정권의 '개'들이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탄압하고 죽음을 강요하는 세상! 그 곳에서 재벌언론은 용비어천가를 불러대고 멍청하고 탐욕스런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이명박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할테지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화당원이라는 사실은 저의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영화들이 혜안을 가진 노인의 성찰을 담은 뛰어나고 놀라운 작품들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은 혹은 제가 발견하지 못한 그의 세계관에는 저로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보수'를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존경할만한 보수'라는 개념 자체를 갖기 힘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좀 찾아보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부시의 대통령선거 캠페인에 참가하기를 거부했으며 극우세력의 행태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고 하는군요. 그의 정치적 입장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미친 건 아니었군요, 다행히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30년생, 이순재보다 5살 형님이네요.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그가 죽으면 전 정말 통곡이라도 할 것 같아요.

단역이라 얼굴이 기억나진 않지만, 세발자전거 탄 여자애 중 하나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딸이라고 합니다. 96년생. 그러니까 우리나이도 67,8살에 자식을 본 것이군요. 허허... 뭐, 54살에 17살 먹은 여자애랑 결혼해서 73,4살에 마지막 아들을 품에 안은 Chapline의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기독교에서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죄의 사함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체인질링>의 연쇄살인범도 자신은 회개하였으니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구요. 참 속통터지는 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령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승인해 6명을 죽게한 김석기도, 광주에서 학살을 명령한 전두환이도,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천국갈 수 있겠군요! 뭐 이런 씨발스런 경우가 다 있나요? 한국의 있는분들, 가진분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도 저런 교리 때문인가요? 
(2009.01.23)

 

  1. 쓰리 2013.07.23 03:00 신고


    2009.02.15

    “나는 노스콧에게 2년간 독방에 갇혀 있다가 교수형당해야 한다고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순간이 너무나도 통쾌했다. 요즘 판사들은 범죄자들에게 주삿바늘(약물 처형)을 꽂는 것이 잔인한 형벌이라고 걱정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우리가 피검사를 받을 때 꽂는 것과 똑같은 주삿바늘을 두고서 말이다.”
    라고 클린트이스트우드가 말했다고 하는데요. 진정 꼭또님도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저는 사실 저 말에 굉장히 놀랐거든요.

    • Cocteau Ozu 2013.07.23 03:01 신고

      2009.02.15

      저도 노스콧이 죽음을 맞는 순간 통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사형제도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남은 목숨을 빼앗는 것 이외에 그가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생각할 수 없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구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많이 잘못했으면 많이 받아야 하구요. 종교인이 아닌 저로서는 인간이 인간의 죄를 판단하고 처벌하는 데에 딱히 거부감이 없습니다. 사형만이 유족의 분노와 통한을 씻어줄 유일한 해결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범죄자라는 것이 100% 확실한 경우에 한해서.

      사형제도에 문제점이 많다는 건 압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심지어 목숨을 빼앗았는데도 사형되지 않는 경우도 있구요. 정치범이나 사람 열댓명 죽인 연쇄살인범은 사형시키는데 김우중이나 전두환 혹은 김석기 같은 것들은 사형 안 시키는 건 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위해 죽음을 팔고 사는 군수산업계의 CEO나 석유재벌들, 다이아몬드 거래상 같은 부류들도 포함해야겠지요. 사적인 목적이나 쾌락을 위해 남을 죽인 놈은 사형시키는데 국가나 공동체의 이익 같은 명분하에 남/다른 민족/국민의 목숨을 뺏은 놈은 가만 놔두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며 살인을 저지르면 사형의 대상이 되지만 제도의 비호 아래 사람을 태워죽이는 놈은 그냥 자리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되는 것도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노스콧 같은 놈은 사형시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납득할만한 처벌을 생각하기 힘들군요. 교회 안 다니는 Christine Collins도 그 처형에 분명 만족해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쓰리 2013.07.23 03:01 신고

    2009.02.15

    저도 종교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에 대한 어떤 일말의 동정심같은 걸 갖고 있습니다. (뭐 사실 크게 신경쓰게 되는 부분은 절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연쇄살인범은 어떤 동기나 목적성을 갖는 살인이 아닌, 잘못된 호르몬분비의 영향으로 인한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에서요. 저렇게 태어났는데 그 본능을 어떻게 표출해야할까, 차라리 동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생각을 잠시하기도 했답니다. 오히려 연쇄살인범들보다 위에 써놓으신 몇몇정치범들과 다이아몬드거래상들이 죽어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인간으로서 통제 가능한 범위내에서 나쁜짓을 하고 있으니까요.
    갑자기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이 떠오르네요.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소년이 어떨결에 주인공 아들을 죽인 것과(죽은아들의 아버지는 그 소년을 용서합니다) 본능에 의해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들과는 당연히 다르게 해석을 해야맞겠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할 부분인 것 같으네요.
    연쇄살인범도 어찌보면 잘못된 호르몬을 갖고 태어난 소수자인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무고하게 죽게 된 사람의 입장과 유족들의 분노를 제가 감히 어떻게 이해할까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저는 연쇄살인범의 입장과 그의 부모와 자식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어떠할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만약에 제 자식이 연쇄살인범으로 태어났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자신의 본능에 의해 충동적으로 사람을 세명 죽였습니다. 그럼 제 아이는 사형을 당해야할까요.

  3. 쓰리 2013.07.23 03:02 신고

    2009.02.15

    참 제가 여기 홈페이지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중학생이었는데 아직까지 있네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고 찾아와봤습니다. 다행히 네이버에 cocteau라고 치니까 바로 나오던데요. 그래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어떤 좋은 영화를 볼까 생각하다가 님의 리뷰를 참고해보려고 온건데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다. ^^

    • Cocteau Ozu 2013.07.23 03:03 신고

      2009.02.16

      허허... "쓰리"라는 아이디가 어쩐지 낯이 익다 싶었어요. 지금은 나이가 얼마나 되셨을까 짐작이 안가는군요. 몇년전엔 중학생이었던 사람이 방금 제대했다며 글을 남긴 적이 있어서... 어쨌든 반갑습니다. 허허..

  4. papa 2013.07.23 03:03 신고

    2011.01.03


    오래된 리뷰에 댓글 남기는 게 멋쩍습니다만 이 블로그를 며칠 전에 발견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체인질링 보고 싶은데 너무 괴로울까 봐 아직도 못 봤네요. 주인장님 요새 정기적으로 기고하시는 매체가 있는지요?

    공감가는 리뷰가 참 많아서 궁금합니다.

    • Cocteau Ozu 2013.07.23 03:04 신고

      2011.01.09


      안녕하세요... 변변찮은 글들을 읽으시느라 괜한 시간만 낭비하게 만든 건 아닌지 죄송스럽네요... 호호...

      요즘에는 영화를 잘 안 보기 때문에 '감상문' 같은 것도 잘 만들어내지 않고 있어서...

      전에도 '기고'라고 하기 부끄러운 것들이라...

      공감 가는 리뷰가 많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체인질링은 위에 낙서해놓은 만큼 괴로운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저 낙서를 할 즈음에 제가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거든요.

      재밌는 영화니까 시간나실 때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