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zu의 방안의 사계절

Posted 2013.07.22 11:33

 




[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kino의 1998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1895-2001 일본영화 진검승부> 꼭지 중 Ozu부분만 발췌했습니다.

폐간된 잡지사이기 때문에 문제삼는 분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혹시라도 저작권이 문제될 경우 제게 알려주시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

Ozu의 방안의 사계절 部屋の中の季節

Ozu는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일본영화의 고전주의를 완성한 두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가족극 이야기를 순환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였으며, 같은 카메라 구도 안에서 같은 렌즈를 사용하고 같은 방법으로 연출하고 같은 방식으로 편집하였다. 그에게 반복은 차이이며, 차이 안에서 계속 반복하였다. 그는 계절을 가지의 무대로 삼으면서 결코 방 바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의 영화 전체가 하나의 원이 되기를 원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Ozu는 영화가 삶의 방식에 대한 시적인 우주가 되기를 원한 작가다.

Ozu는 이상한 사람이다. 그는 1903년 12월 12일에 태어나 60년을 살고(동양에서 이야기하는 인생의 하나의 완성된 원) 1963년 12월 12일 자기 생일에 죽었다. 그는 계속해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으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는 계속해서 같은 배우들에게 같음 배역을 맡겼으며, 48년 이후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한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Ozu는 살아 생전에 단 한 번도 서방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자신도 별다른 예술적 야심이 없었으며, 그 자신의 작은 공간을 이루는 세트와 평범한 야외에서 사소한 가정극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들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비평가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70년대 이후 서방세계에서 그의 추종자들이 나타났다. 빔 벤더스는 그 첫 번째 세대이다. 그리고 뒤이어 짐 자무쉬는 미국에서 Ozu는 베끼기 시작했다. Ozu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해졌다. 폴 슈레이더는 Ozu가 칼 드레이어,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영화에서 초월적 스타일을 완성한 작가라고 찬양했다. 노엘 브뤼쉬는 Ozu의 영화가 서구 영화 전체의 재현 시스템 자체의 전제조건 그 모두를 해체시키고 있다고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데이빗 보드웰은 Ozu의 영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 시네마데끄에서 그의 전작을 보고 난 다음 그 전체가 영화에서 하나의 시학을 이루었다고 탄식하였다. Ozu는 점점 더 거장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90년대 영화감독들은 그 누구라도 Ozu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들 스스로 Ozu를 베끼고 있는 지경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다.

Ozu는 1927년 무성영화에서 시작하였다.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영화는 시대극 <참회의 칼>이다. 그는 28년에 5편, 그리고 29년에 6편, 30년에 6편을 만들었다. 그가 평생 만든 53편의 영화 중 17편을 3년 사이에 만든 셈이다. 그는 32년까지 23편의 무성영화를 만들었으며, 헐리우드 슬랩스틱 희극과 활극영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Ozu는 이미 고전적인 편집방법과 희극적 묘사에서 능수능란했으며, 몇편의 연작과 유사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 <대학을 나오기는 했다만>(29)과 <낙제를 했다만>(30) 그리고 <태어나기는 했다만>(32)은 서로 껴안고 있으면서 다른 영화이다.

그런데 32년 토키영화 <다시 만날 날까지>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자기의 이야기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말하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그에게서 영화의 발화인 텍스트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그는 미조구치처럼 크레인에 의한 롱 테이크나 딥 포커스, 또는 쿠로사와의 멀티 카메라에 의한 동시 연출과 같은 것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Ozu는 영화에서 편집의 방법을 바꾸어보려고 하였다. 그것은 시선을 바꾸는 것이며, 그것으로 대화하는 체계를 다시 구성하고, 그 안에서 영화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Ozu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형식의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구의 영화 고전문법이 자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형식의 자의식이 들어있는 한편 그 자체로 자기가 살아가는 일본의 삶의 재현과 질서에 영화를 맞추어보려는 조화와 중재의 껴안음과 어우러짐이 있다. Ozu에게서 형식은 긴장이 아니라 이완과 다가섬이다.

Ozu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완성된 첫 번째 영화는 <만춘>(49)일 것이다. Ozu는 여기서 서구적 데꾸빠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시선의 상상선과 45편집체계의 나누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일치하지 않는 상상선으로 편집의 흐름을 중단시킴으로써 영화 이미지의 연속성의 원칙을 부정한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 두 등장인물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객을 디제시스 공간 안에 포함시킨다는 원칙을 (영화이론에서 봉합(suture)이라고 부르는) 버린 것이다. 그러나 Ozu의 이러한 방식은 일본 영화 안에서도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일본 평론가인 사토 다다오조차도 Ozu의 이런 스타일은 인물들이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Ozu 영화에서는 공간의 어떤 배열도 결국 읽기를 요구하는 텍스트라는 점이며, 단지 있는 그대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Ozu의 이러한 접근은 3차원에 관한 일본인들의 접근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Ozu는 자신의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 쇼트로 들어가는 정지된 풍경을 반복적으로 집어 넣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그저 기차이며, 공장의 굴뚝이며, 야구장의 전광판이며, 골목의 술집 네온 사인이지만 그러한 쇼트의 특성은 복합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며, 다양한 방식으로 디제스틱한 흐름을 지연시킨다. 서구의 비평가들은 이것을 일본 전통문학 와가(和歌)에서의 ‘마구로-고도바(枕詞)’와 맥을 같이하는 필로우-쇼트라고 불렀다. 이 양식이란 일본적인 가족관계에 의지한 인간중심주의로 다시 재배열되었다. Ozu의 카메라는 360도로 고정시킨 채 편집을 통해 원형으로 이동시키면서 프레임 내의 구성과 카메라/디제시스 관계 양자에 모두 적용되는 중심의 법칙에 의해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Ozu의 필로우 쇼트들은 카메라가 잠시(때때로 오래) 자연의 움직이지 않는 쇼트들에 초점이 맞춰질때 비슷한 탈중심화의 효과를 가진다. 대부분 그들의 보이지 않는 순간 대신 그들 옆에 있는 커피 포트, 지붕, 가로등, 빨래줄과 같은 사물이 보여진다. 이 쇼트들은 특정 담론에 끼어들어 각각의 탈중심 효과가 그 자체의 독자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Ozu는 이것을 <초여름>(51>과 <동경 이야기>(53)에서 더 밀고 나아갔다. 그는 이 안에서 항상 50미리 표준렌즈를 버리지 않고 거의 고정된 카메라로 마치 멈추어 선 것처럼 가족들의 이합집산의 내면을 담아냈다. 그것을 담기 위해 Ozu는 가장 좋은 시선의 위치로 이른바 다다미 쇼트라고 불리는 로우 앵글 쇼트를 시종일관 하나의 원칙처럼 사용하였다. Ozu 이외에 다다미 쇼트를 사용한 사람은 나루세 미키오 뿐이다. 그러나 나루세의 영화에서는 자주 로우 앵글 쇼트가 보여지지만 앉아 있는 등장인물의 하이 앵글(미조구치의 영화에서처럼)이 함께 사용됨에 따라 로우 앵글 스타일은 일본영화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Ozu는 이 쇼트를 단지 가옥 구조 때문에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는 49년 이후 자가의 카메라를 완전히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등장인물들은 이동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멈추어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ㄷ. 그 안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등장인물이 들어가고 나오며, 사건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전체가 하나를 이루면 인물 중의 하나가 빠져 나가고 그 공간 만큼 비어있는 여백 안에서 남은 사람은 가족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슬픔에 잠긴다. 그러니까 그의 카메라가 내려 앉은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Ozu의 영화는 시작할 때가 가장 완전한 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구조는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미조구치처럼 잔혹한 운명이나 쿠로사와처럼 거시적인 폭력이나 나루세처럼 시대의 변화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Ozu에게서 그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아내는 죽음을 맞이하고, 나이가 찬 딸은 시집을 가야한다. 그러나 아직 살아남은 늙은 남편은 혼자 살아야 하며, 딸을 시집보낸 늙은 아버지는 이제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 그리고 슬프지만 과부인 어머니는 영원히 그의 달과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다. Ozu에게서 그저 혼자 남는 것에 대한 슬픔이 남겨질 뿐이다.

Ozu는 58년 <피안화> 이후 단지 여섯 편의 칼라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들은 영화사상 가장 침울한 영화들에 속할 것이다. 그 안에는 이미 죽음이 깊이 드리워져 잇다. 등장인물들 중의 그 누군가는 계속 죽어서 실려나가거나 아니면 그들의 대화는 죽은 자에 관한 것이다. Ozu의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은 홀아비인 늙은 아버지가 과년한 딸을 시집 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후 집에 와서 평소처럼 잠에 든다. 하지만 밤은 길고 늙은 아버지는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서 깨어난다. 그는 불현듯 이제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 주전자는 더 없이 슬퍼 보인다. 영화는 거의 죽음과도 같은 침묵에 쌓인 필로우 쇼트들의 연속 속에서 끝난다. Ozu는 그 순간 더할나위 없는 영화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Ozu의 영화는 한편씩 보아서는 아무런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영화다. 그의 영화는 전체를 볼 때 비로소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병풍이다. Ozu는 미조구치가 만든 병풍과는 다른 의미에서 가옥 속에 살아가는 가족들에 관한 일상의 시학을 담아낸 것이다.  (정**)


 

신고

Ozu와 미조구치 - Other Perspective

Posted 2013.07.22 11:32

 

 




[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kino의 1996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Scenographie(s) 1895-1996 >라는 꼭지에 Other Perspective라는 keyword로 Ozu와 미조구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폐간된 잡지사이기 때문에 문제삼는 분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혹시라도 저작권이 문제될 경우 제게 알려주시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

Other Perspective
서방세계 영화가 딥 포커스, 쁠랑 세캉스, 고전적 편집체계를 완성하였던 1950년대에 일본영화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깊이 없는 공간, 불연속적 편집체계를 완성하였다. Ozu와 미조구찌는 서구 중심의 시선을 해체하고, 일본의 전통과 근대화 사이에서 영화적 공간을 발명하였다. 이러한 일본영화의 이미지 공간은 인물의 형상과 시선이 원심적 틀(2차원의 평면구도)을 가진 18세기 일본풍속화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정중동의 연기를 펼치는 ‘노’연극의 단순성과 절제, 불교문화권의 無와 선(禪)의 초월의식을 결합하였다.

 

1950년대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과 존 포드, 스튜디오 시스템, 장르 영화가 고전영화 형식을 완성한 시기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 Ozu와 미조구찌는 정반대의 영화형식을 발명했다. 미조구찌는 사극영화의 전통적인 건축구조 속에 들어가 높이와 낮이, 멀고 가까움, 종횡으로 연결된 수평과 수직의 동선, 건축구조의 겹을 따라 건물 안에 놓인 건물에로의 불연속성과 카메라의 동선을 서로 조화시켰다. 반면 Ozu는 근대화의 과정에 놓인 일본 가옥구조 속에서 일상생활의 예법과 가족 사이의 관계 사이에서 생rusk는 시선을 중심에 놓고 정지한 카메라의 위치와 거리, 편집체계와 인물배치를 만들어냈다.

미조구찌와 Ozu가 발견한 영화 속의 자족적인 소우주는 동양철학과 불교문화권 내부의 전통을 융해시킨 것이다. 두 감독은 카메라 수사학에서 몇가지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동일한 공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사방세계의 그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Ozu와 미조구찌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발명은 ‘내러티브 공간’에서 탈피한 ‘여백의 공간’에 대한 의미부여다. 서구의 영화사가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에서 출발해 입체구도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 때 동양에선 오히려 평면구도 속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여백의 공간에 대한 사고를 이끌어냈다. 내러티브 공간은 과학적이며 측량 가능한 가시적인 공간이지만 사물화된 반면, 여백의 공간은 감정적이며 비가시적이지만 인격화된 공간이다. 여기서 동양의 초월적 無와 선(禪)의 사고가 프레임 속으로 스며들면서 전혀 다른 영화전통이 형성되었다.

서구영화의 공간은 애초부터 채워져있다는 패러다임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물의 중심에는 인간이 놓인다. 하지만 일본영화의 공간은 애초부터 비워져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여긴다. 따라서 서방세계 영화 프레임의 원리는 ‘공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지만 일본영화 프레임의 원리는 ‘공간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이다. 이것은 일본영화에서 공간과 인물, 시선이 화면 외부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 자체를 지워버리고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일본영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해온 데이빗 보드웰과 도날드 리치는 Ozu와 겐지의 독창적인 구도가 일본의 전통회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명한 바 있다. 그들이 내세운 가설 중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사고와 문화의식을 규정하는 문자의 차이다. 서구문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문자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이런 관습은 운동의 방향과 성격을 규정짓게 되는데 서구영화에서 공간분할의 기본선인 대각선 방향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를 향하고 이것은 운동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동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반면 일본영화의 대각선 구도는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 방향을 향하며 이것은 이미지-운동을 거스르면서 휴식과 침묵의 정적인 이미지-감정을 자아낸다.

Ozu와 미조구찌를 이해하는 열쇠는 이들의 선율적인 풍경(미조구찌)과 운율적인 인물(Ozu)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빛과 그림자에 대한 원리다. 서구의 영화가 ‘빛’과 기계장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면서 현실의 표면을 모사하거나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일본의 영화는 ‘그림자’와 내면풍경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현실의 이면에 숨은 내재적인 본질을 더욱 주목하였다. 채워넣기와 비워내기의 긴장을 조율하는 미조구찌의 ‘여백의 공간’과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리듬을 조율하는 Ozu의 ‘여백의 쇼트’는 이런 민족적 원형의식의 소산이다.

Ozu보다 먼저 서방세계에 발견된 미조구찌는 서구영화의 하이 앵글이 만들어내는 신(神)의 시선 대신 크레인 쇼트를 통해 공간을 조감하면서 건축에서 출발한 컨셉트로 닫힌 프레임의 설계적인 미학을 구사했다. 수평구도 속에 병풍이나 나무 등을 이용한 수직구도를 설정하여 운동성을 부여하고, 의도적으로 배치한 여백의 공간을 통해 프레임 내에서 보이는 부분보다 감추어진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구상 속의 추상이라는 선(禪)의 경지를 이끌어냈다. 반면 잡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가족이야기를 일관했던 Ozu는 서구영화의 로우 앵글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릎 꿇은 앉은 높이의 수평적인 다다미 쇼트로 보다 엄격한 양식화를 꾀하면서 시선의 여백이라는 전대미문의 영화언어를 창조했다. 한 프레임 안에서 쇼트-반응 쇼트를 동시에 해결하는 그의 독창적인 양식은 단조로운 수평구도와 깊이를 무시한 딥 포커스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시선의 엇갈림과 물질과 물질의 여백에 주어진 정서와 감정을 이용한 풍부한 심리적 뉘앙스의 공간으로 포면의 경계를 확장시켰다. 이러한 발명은 이후 아시아 영화를 자극하는 하나의 새로운 공간적 인식이 되었다. 80년대 대만영화와 중국 5세대 영화는 모두 여기서 출발한다. 

신고

오즈구미 小津組

Posted 2013.07.22 11:24

 1: 사이토 다츠오 斎藤達 雄 (1902~1968)


日本映画データベース    imdb   wikipedia (japanese)

초기 Ozu 영화의 최 대 스타. 1923년 쇼치쿠에 들어갔고 183cm의 큰 키와 서구적인 풍모를 살려 코미디 연기에 재능을 발휘했다. Ozu 영화에는 두 번째 작품 <若人の夢 젊은이의 꿈>에서 주연한 이래 <学生ロマンス: 若き日 학생 로망스 젊은 날>에선 늘 상대에게 속는 학생, <落第はしたけれど 낙제는 했지만>에선 낙제 생활을 즐기는 학생역을, 그리고 <東京の合唱 동경의 합창>, <青春の夢いまいづこ 청춘의 꿈은 어디에>, <その夜の妻 그 날 밤의 아내>, <淑女と髭 숙녀와 수염> 등에 서 조연급으로 출연했다. Ozu의 걸작인 <大人の見る絵本 生れてはみたけれど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선 가정의 아이들 앞에선 위풍당당하지만 회사 상급자 앞에선 쩔쩔매는 샐러리맨의 비애를 빼어나게 연기했다. 이후 Ozu 영화 출연작으로는 <淑女 は何を忘れたか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 <戸田家の兄妹 도다가의 형제 자매들> 등이 있다.





 

2 - 스기무라 하루코 杉村春子 (1909~1999)

haruko 01.jpg

haruko 02.jpg

haruko.jpg

나루세 미키오의 <흐르다> DVD 커버입니다. 왼쪽이 스기무라 하루코입니다.

日本映画データベース     imdb   wikipedia (japanese)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여배우 가운데 한 사람으로 Ozu의 후기 작품에서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라 세츠코의 숙모역을 연기한 <晩春 늦봄>, 그리고 <麦秋 초 여름>, <お早よう 안녕하세요>, <浮草 부초> 등 역할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출중한 연기로 화면을 채웠다. 스기무라 하루코는 <東京物語 동경 이야기>의 큰 딸역을 소화한 바 있는데, 이는 무미건조하지만 인정이 남아 있는 인물의 조형이라는 점에서 Ozu 의 연기에 대한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秋刀魚の味 꽁치의 맛>의 스기무라의 연기에서 배어나오는 애절함 또한 Ozu 의 버리기 어려운 진미 가운데 하나이다. 기노시다 게이스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에도 출 연한 바 있다.



3: 사다 케이지 佐田啓二  (1926~1964)

日本映画データベース    imdb 

<お早よう 안녕하세요> 와 <秋日和 가을 햇살> 등에 출연했으며 1950년 대 쇼치쿠를 대표하는 대스타였다. 기노시타 게이스케, 나카무라 노보루,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의 연기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한 것은 Ozu였는데, Ozu의 유작 <秋刀魚の味 꽁 치의 맛>에선 골프 클럽을 탐내는 회사원역을 맡아 허황된 이유로 부친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멜로드라마로서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연기파 배우로도 인정받았다. Ozu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돈독했던 배우로 그가 죽기 직전에는 병 간호를 하기도 했다.

아들인 나카이 키이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4: 사토미 톤 里見弴 (1888~1983)

 

 

日本映画データベース

Ozu가 중학생 시절 부터 좋아했던 소설가. 1952년부터 Ozu와 본격적으로 교분을 갖기 시작했으며 Ozu의 영화 <彼岸花 달맞이꽃> 와 <秋日和 가을 햇살>은 사토미 톤이 Ozu의 영화화를 예정하고 소설을 쓴 경우다. 그의 아들인 야마노우치 시즈오는 이후 Ozu 영화 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明治21年~昭和58年(1888~1983)
 
本名・山内英夫
 
小説家。横浜生まれ。有島武郎、生馬の弟。東京帝国大学中退。学習院時代に文学グループを作り回覧雑誌「麦」を発行。雑誌「白樺」の創刊に同人として参加し、小説のほか翻訳や詩歌を発表するが、のちに離れて独自の道を歩む。泉鏡花に傾倒し、文学的影響を受け、やがて師事する。著作に鎌倉をとり入れた『安城家の兄弟』や、『多情仏心』『大道無門』『極楽とんぼ』など。幼少期は由比ガ浜の父の別荘で過ごし、大正13年から鎌倉の各所に住み、昭和28年から没年まで扇ガ谷に居住した。鎌倉ペンクラブ、鎌倉文庫の創立に尽力するなど鎌倉文士の中心的存在だった。
 明治21年~昭和58年(1888~1983) 
 

 

 

 

5: 이케다 타다오 池田忠雄
 

 

日本映画データベース    imdb

<突貫小僧 못말리는 꼬마> 에서 <長屋紳士録 셋방살이의 기록>까지 모두 15편의 Ozu 영화의 시나리오에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 Ozu 영화외에 <육군>(기노시타 게이스케), <귀향>(오니와 히데오) 등의 영화에서 대본을 썼다. Ozu의 협력자였을 뿐 아니라 사생활에서 도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6 : 아오키 토미오 青木富夫 (=도칸 고조 突貫小僧) (1923~2004)

aoki-tomio.jpg

日本映画データベース    imdb  

Ozu 감독의 <会社員生活 회사원 생활>에서 본명인 아오키 도미오로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이어 <突貫小僧 못말리는 꼬마>에서는 주역을 맡았고 이 이름을 아예 예명으로 채택했다. 악동적 이미지를 지닌 아역 배우로 초기 Ozu 영화에 곧잘 등장하곤 했다. <大人の見る絵本 生れてはみたけれど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선 아버지에게 맞서 단식 투쟁을 벌이는 형제 가운데 동생역을 맡은 바 있다. <東京の宿 동경여관> 등에 출연했던 그는 다이쇼大正 말기에 태어난 하층 소년의 이미지에 썩 어울리는 배우였다. 이후 <淑女は何を忘れたか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 검도 시합의 심판역으로 나왔던 <淑女と髭 숙녀와 수염> 등에 출연했으며,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작품에도 얼굴을 비췄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으랏차차 스모부>(원제는 <시코, 밟고 말았다>)에서 다카나카 나오토의 극중 이름을 ‘아오키 토미오’라고 한 것은 Ozu 감독과 배우 도칸 고조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다카나카 나오토는 수오 마사유키의 2007년작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에서도 ‘아오키 토미오’ 라는 이름으로 출연합니다. 

大正12年10月7日生まれ。横浜出身。昭和4年松竹蒲田入社。2作目出演の「突貫小僧」が通名となり人気の子役に。昭和6年より一時、突貫小僧を芸名に。戦後日活~のちフリーに。異父弟に青木放屁。最近まで映画界で活躍していた。平成16年1月24日没。

 

 

 

 

 

 

신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글입니다 어디서 퍼왔는 지는 말 안 할래요.


사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처음 보고, 혹은 단 한 편만 보고, 그의 영화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영화에 대한 글을 많이 읽어서 남의 깨달음을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 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에이젠쉬테인이나 오손 웰즈를 본 다음 할 말이다. 누구나 처음 오즈를 보면 좀 어리둥절해진다. 거의 리듬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일정한 길이를 유지하면서 흘러가는 쇼트들, 혹은 어느 쇼트도 갑자기 명 장면이 되어 숨을 멎게 할만큼 그 스스로의 존재감을 갖지 않고 그저 거기 인물들 앞에, 집안에, 그 안에서 창문을 걸쳐 저 멀리 풍경을 바라보면서 멈춰 서 있는 듯한 카메라, 거의 표정이 없는 인물들이 짓는 미소, 혹은 기어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얼굴, 일정하게 톤을 유지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거의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고정된 목소리,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그 어떤 반전도 허용하지 않고 예정된 수순을 따라가는 줄거리, 그 앞에서 그 무언가를 잡아냈다면 이건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오즈의 영화가 주는 위대함은 그 어느 쇼트에, 혹은 그 어느 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 전체 오십 네 편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종 오즈의 위대함은 그것을 그 형식에로 환원시키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그 위대함이 보이지 않는 초조함 대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이 보인다고 말하고 싶은 안간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즈가 무릎을 꿇고, 후지 필름으로, 동일한 등장인물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시종일관 50미리 표준렌즈로, <늦봄>에서의 자전거 타는 하라 세츠코를 보여준 이후에는 그의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카메라를 이동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앉혀놓고, 혹은 세워 놓고, 180도 시선 나누기를 포기한 다음, 360도 원형 상상선을 그어서 카메라의 위치를 옮겨 가면서 영화를 찍었다는 것은, 오즈의 영화가 지니는 기괴한 측면이지 그것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설명이다. 만일 그 말이 성립된다면 오즈의 무성영화들은 모두 실패했다고 말해야만 한다. 하지만 오즈의 무성영화들이 보여주는 그 우아 한 이동촬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혹은 저 위대한 세 편의 <...했지만>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생각에 <태어나기는 했지만>은 (문제의 그 단절을 보여주는) <늦봄>에도 비견할만하다. 혹은 <비상선의 여자 >는 적어도 <피안화>보다는 좋다. 그리고 나는 1934년에 만든 <부초이야기>가 같은 이야기를 다시 찍은 59년의 <부초>보다 (그 등대 앞에 놓은 맥주병의 첫 장면만을 예외로 치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1942년에 찍은 < 아버지가 있다>는 어떻게 할 참인가? 그러니까 <늦봄> 이후의 오즈만을 보고 그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절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오즈의 위대함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오즈가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면서 했던 유명한 말, 혹 은 하스미 시게히코가 오즈를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인용했던 말, “두부 집에서 돈까스를 만들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는 말은 사실상 오즈가 세상을 떠난 다음 그의 영화를 설명하려드는 시도에 대한 유언과도 같은 충고이다. 나는 이 말 을 듣는 순가 그 어떤 오즈에 대한 설명보다도 거기 핵심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전통과 모던, 두 개의 일본, 전쟁 전과 전쟁 이후, 하지만 ‘하여튼’ 그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이상한 슬픔이 감돈다. (이 말의 방점 은 ‘하여튼’이다. 이 표현은 매우 잔인한 말이다) 왜냐하면 두부 집은 결국 사라져가면서도 그 집은 살기 위해 돈까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즈가 헐리우드 영 화에서 가져온 엎치락뒤치락 희극 코미디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세상과 영화 사이의 불편함을 보았다. 그건 단지 영화 안의 형식이 아니라, 바뀌어 가는 세상의 질서들이 안겨주는 삶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다. 오즈에게서 중요한 것은 카메 라의 위치나 편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음식을 차려 놓은 밥상과, 술잔과, 주전자와, (서양에서 들어온) 스포츠(특히 야구)와, 파칭코와, 장기와, 가게의 간판과, 그것이 늘어선 긴자나 이께부꾸로, 마루노우치의 비즈니스 센터, 병원과, 공장의 굴 뚝과, 기차와, 방안의 텔레비전과, 전화와, 시계와, 그 소리들에 있다. 오즈는 그것들이 영화 안으로 들어와 등장인물들과 함께 살아야하는 그 어쩔 수 없는 불편함에 감정을 안겨주려고 한다. 거기에는 이상할 정도의 자포자기가 있다. 그것이 슬프다. 그 감정을 환유하는 것은 딸의 결혼식이다. 그 결혼식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이제 혼기가 되었으므로 아버지 곁을 떠나는 것이다. 그걸 아버지가 막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슬프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떠나간 것들은 딸이 이제 채우지 않아 텅 빈 주전자처럼 슬프게 저기 놓여있고, 없던 자리에 새로운 것들은 어느새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다. 그 사이에 마치 시간은 멈춘 것처럼 하늘은 항상 맑고, 그래서 기후의 변화가 거의 없는 오즈의 영화는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게 만든 다. 그러니까 오즈에게서 (59년의 <보초>를 예외로 하면) 구로사와 아키라처럼 비가 몰아치거나 안개가 쏟아져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것은 상사할 수 없는 일이다. 구로사와가 세상을 뒤흔들어보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고 탄식하는 동안, 오즈는 그 세상을 멈추어보려고 그렇게 조용히 앉아있어도 결국 시간은 그 주위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음을 슬프게 인정하고야 만다. 오즈는 이것을 하나의 질서로 만들기 위해 일단 멈추어 선다. 그리고 돈까스 집이 되어 가는 일본을 ‘하여튼’ 살아보려고 한다. 사실 오즈 영화에서 이상하게 인상적인 것은 오즈의 아이들이 모두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거나 가벼운 병이 아픈 쇼트만 있다는 점이다. 그 아이들은 그 어머니의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아버지와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 혹은 그 딸들은 아버지가 올라올 수 없게 계단이 없는 이층에서 지낸다. (오즈의 영화에는 딸의 방에 올라가는 계단을 찍지 않았다는 히스미의 저 무서운 지적!) 오즈의 영화는 그 모든 것을 그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만든 영화들이다.

그러니까 오즈를 척 보고 난 다음, 위대하다고 말하면 그건 오즈를 슬프게 만드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오즈는 실패한 것이다. 그 반대로 자꾸만 돌아볼 때, 오즈의 영화는 처음에는 모든 것이 그렇게 안장되고 멈추어버린 듯 했던 모든 것들이 점점 불편해지는 영화이다. 이를테면 <동경 이야기>의 가장 큰 사건은 할머니의 죽음이다. 그런데 정작 오즈는 할머니의 죽음을 찍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늘 창문 앞을 지나가는 이웃집 아줌마가 할아버지에게 질문할 때 그 예의바르 고 단조로운 할아버지의 대답을 통해서 알 뿐이다. 혹은 <꽁치의 맛>에서 온통 관심을 기울인 딸의 결혼식을 정작 오즈는 찍지 않는다. 다만 피로연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를 볼 뿐이다. 그것을 절제라고 설명하는 것은 오즈를 오해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오즈는 그렇게 만들어서 딸의 결혼 전 전체와 결혼 후의 씬을 연결하는 그 대목을 송두리째 생략한 다음 그냥 이어 붙인 것이다. 그건 그렇게 붙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연결한다. 그 대신 동일한 쇼트가 다시 되돌아온다. 오즈는 같은 자 리에서, 같은 구도로,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찍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같은 장면 안에서 결국에는 없는 것을 본다. 이에 할아버지 곁에 더 이상 할머니는 없다. 아버지 곁에 딸은 더 이상 눕지 않는다. 참으로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오즈의 영화에 서 계절은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즈는 이 모든 것을 순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즈의 영화 제목에는 그렇게 많은 계절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계절의 제목 중에 일년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겨울이 없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오 즈 자신은 농담처럼 겨울에는 영화를 찍기 너무 힘들어서 안 찍을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장소로 귀결한다. 그 곳은 집이다. 말하자면 오즈에게서 펼쳐진 집은 하나의 우주이다. 그는 세상을 향해 열린 창문 곁에서, 정원을 향 해 열어놓은 마루에서, 어디선가 나타난 딸이(정말 오즈의 집에서는 그걸 알 수가 없다) 자기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층에 올라간 것을 탄식하면서, 마치 자기 자신에 말하듯이 서로에게 말하는 정면의 카메라 앞에서, 결코 손 댈 수 없는 외로운 존재들의 360도 편집의 순열에 따라, 그 자리에 붙잡힌 듯이 앉아서 그 순환을 받아들이는 우주의 존재론이다.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작은 우주가 순환하고, 그의 오십 네 편의 영화 속에서 커다란 우주가 순환한다. 그 모든 것이 얼핏 그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가장 불편한 방법으로 거기 그렇게 놓여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순환한다.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없어지면 없어진 대로, 그러나 그 안에서 하여튼 살아야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오즈는 그 슬픔을 찍는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결국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만일 오즈를 보면서 여전히 그 불편한 형식 때문에 감탄을 한다면, 아직 당신은 더 살아야 한다. 당신이 저 정말적인 외로움 안에서, 그 형식의 쓸쓸함 으로 인하여, 거듭 되돌아오는 텅 빈 쇼트들 속에서, 결국 마주치고야 말 산다는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오즈는 정말 위대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 것. 그리고 당신이 차 맛을 느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실 것. 오즈의 말을 흉 내내자면 찻집에 와서 제발 그 차를 커피 마시듯이 마시지 말 것.


신고

 


지난 2001년과 2004년에 서 울에서 Ozu의 회고전/특별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Ozu의 영화를 보러 갔을 뿐, 그 밖에 더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02.jpg

1. 서울 시네마테크 제2회 상영회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① 기획 및 주최: 서울 시네마테크  http://cinemathequeseoul.org
② 공동 주최: 일본 국제교류기금
③ 기간: 2001년 1월 12일~ 1월 20일
④ 장소: 아트선재센터
⑤ 상영작: <태어나기는 했지만>, <외아들>, <바람 속의 암탉>, <늦봄>, <초여름>, <동경 이야기>, <이른 봄>, <부초>, < 가을 햇살>, <꽁치의 맛>, 다큐멘터리 <오즈의 초상: 살아보기는 했지만> (총 11편)


2. 하이퍼텍 나다 감독주간 영화제 10번째 & 시네마테크 부산 기획 영화제
01.jpg

① 일시: 서울 2004년 5월 28일 ~ 6월 10일, 부산 2004년 5월 8일 ~ 5월 23일
② 주최: (주) 동숭아트센터, 시네마테크 부산
③ 후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④ 장소: 서울 하이퍼텍 나다, 부산 시네마테크 부산
⑤ 상영작: <태어나기는 했지만>, <외아들>, <도다가의 형제 자매들>, <셋방살이의 기록>, <바람 속의 암탉>, <늦봄>, <초여름>, <오차즈케의 맛>, <동경 이야기>, <이른 봄>, <동경의 황혼>, <피안화>, <안녕하세요>, <부초>, <가을 햇살>, <꽁치의 맛> (총 15편)


* 팜플렛은 귀찮아서 표지만 스캔했어요.

신고

하라 세츠코 - 영원한 성처녀

Posted 2013.07.22 11:19

 

hara.jpg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 -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4 >라는 책에 실려있 는 글입니다.

저작권 관계로 일부만 퍼왔습니다.  


하라 세츠코 - 영원한 성처녀

''영원한 성처녀''란 하라 세츠코에게 언론이 붙인 별명이다. 배우로 활동할 때에도 사람을 가리는 편이었고 은퇴 후의 은든 생활 때문에 종종 스웨덴 출신의 미국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Greta Garbo에 비교되는 하라는 전후에 <이대로의 삶의 방식으로 このままの生き 方で)>(1948)라는 자서전을 썼다. 당시 하라 세츠코는 민주주의 계몽 영화에 출연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훗날 연기하게 되는 <도쿄 이야기(東京物語)>(1953)의 정숙한 미망인처럼 전후 삶, 여배우로서의 삶을 前戰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려 는 의지를 굳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후략)

 

신고



Ozu의 영화는 비슷비슷한 내러티브 만큼이나 제목 또한 비슷하여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죠.

아래 Ozu가 감독한 全作 54편의 일어제목/영문표기제목/영어제목/한글제목 을 정리하였습니다.

해당 언어에 제목이 둘 이상인 경우는 semicolon으로 구분했습니다.


1. 1927.10.14 懺悔の刃 / Zange no yaiba / Sword of Penitence / 참회의 칼

2. 1928.04.29 若人の夢 / Wakodo no yume / Dreams of Youth / 젊은이의 꿈

3. 1928.06.15 女房紛失 / Nyobo funshitsu / Wife Lost / 잃어버린 아내

4. 1928.08.31 カボチャ / Kabocha / Pumpkin / 호박

5. 1928.09.28 引越し夫婦 / Hikkoshi fufu / A Couple on the Move / 이사하는 부부

6. 1928.12.01 肉体美 / Nikutaibi / Body Beautiful / 육체미

7. 1929.02.22 宝の山 / Takara no yama / Treasure Mountain / 보물산 ; 보물의 산

8. 1929.04.13 学生ロマンス: 若き日 / Gakusei romance: Wakaki hi / Days of Youth / 학생 로망스 젊은 날 ; 젊은 날 ⓢ ☆

9. 1929.07.05 和製喧嘩友達 / Wasei kenka tomodachi / Fighting Friends / 일본식 싸움 친구

10. 1929.09.06 大学は出たけれど / Daigaku wa deta keredo / I Graduated But... / 대학은 나왔지만 ☆

11. 1929.10.25 会社員生活 / Kaishain seikatsu / The Life of an Office Worker / 회사원 생활

12. 1929.11.24 突貫小僧 / Tokkan kozo / A Straightforward Boy / 못말리는 꼬마

13. 1930.01.05 結婚学入門  / Kekkongaku nyumon / Introduction to Marriage / 결혼학입문  

14. 1930.03.01 朗かに歩め / Hogaraka ni ayume / Walk Cheerfully / 즐겁게 걸어라 ; 명랑하게 걸어 ⓢ ☆

15. 1930.04.11 落第はしたけれど / Rakudai wa shita keredo / I Flunked But... / 낙제는 했지만  ⓢ ☆

16. 1930.07.06 その夜の妻 / Sono yo no tsuma / That Night''s Wife / 그 날 밤의 아내 ⓢ ☆

17. 1930.07.27 エロ神の怨霊 / Erogami no onryo / The Revengeful Spirit of Eros / 에로스의 원령 ; 에로스의 복수

18. 1930.10.03 足に触った幸運 / Ashi ni sawatta koun / Lost Luck ; Luck Touched My Legs ; The Luck Which Touched the Leg / 발에 닿은 행운

19. 1930.12.12 お嬢さん / Ojosan / Young Miss / 아가씨

20. 1931.02.07 淑女と髭 / Shukujo to hige / The Lady and Her Favorite ; The Lady and the Beard / 숙녀와 수염  ⓢ ☆

21. 1931.05.29 美人と哀愁 / Bijin aishu / Beauty''s Sorrows / 미인애수

22. 1931.08.15 東京の合唱 / Tokyo no kôrasu / Tokyo Chorus ; Tokyo no gassho / 동경의 합창 ; 동경 합창  ⓢ ☆

23. 1932.01.29 春は御婦人から / Haru wa gofujin kara / Spring Comes from the Ladies / 봄은 여인으로부터

24. 1932.06.03 大人の見る絵本 生れてはみたけれど  / Otona no miru ehon - Umarete wa mita keredo / Children of Tokyo ; I Was Born, But... / 태어나기는 했지만  ⓢ ☆

25. 1932.10.13 青春の夢いまいづこ / Seishun no yume imaizuko / Where Are the Dreams of Youth? ; Where Now Are the Dreams of Youth / 청춘의 꿈은 어디에 ⓢ ☆

26. 1932.11.24 また逢ふ日まで / Mata au hi made / Until the Day We Meet Again / 다시 만나는 날까지

27. 1933.02.09 東京の女 / Tokyo no onna / Woman of Tokyo / 동경의 여인 ⓢ ☆

28. 1933.04.27 非常線の女 / Hijosen no onna / Dragnet Girl ; Women on the Firing Line / 비상선의 여자 ; 비상경계선의 여자 ⓢ ☆

29. 1933.09.07 出来ごころ / Dekigokoro / Passing Fancy / 지나가는 마음 ⓢ ☆

30. 1934.05.11 母を恋はずや / Haha wo kowazuya / A Mother Should Be Loved /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야 ⓢ ☆

31. 1934.11.23 浮草物語 / Ukikusa monogatari / A Story of Floating Weeds / 부초 이야기 ⓢ ☆

32. 1935.01.20 箱入娘 / Hakoiri musume / An Innocent Maid ; The Young Virgin / 순진한 처녀

33. 1935.11.21 東京の宿 / Tokyo no yado / An Inn in Tokyo / 동경의 잠자리 ; 동경여관  ⓢ ☆

34. 1935._._ 菊五郎の鏡獅子 / Kagamijishi / Kikugoro / 카가미지쉬

35. 1936.03.19 大学よいとこ / Daigaku yoitoko / College Is a Nice Place ; Tokyo Is a Nice Place / 대학은 멋진 곳

36. 1936.09.15 一人息子 / Hitori musuko / The Only Son / 외아들 ⓢ ☆

37. 1937.03.03 淑女は何を忘れたか / Shukujo wa nani o wasureta ka / What Did the Lady Forget? /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 ⓢ ☆

38. 1941.03.01 戸田家の兄妹 / Todake no kyodai / The Brothers and Sisters of the Toda Family ; The Toda Brothers and Sisters / 도다가의 형제 자매들 ⓢ ☆

39. 1942.04.01 父ありき / Chichi ariki / There Was a Father / 아버지가 있었다 ⓢ ☆


(1943년에 류 치슈, 사노 슈지 등이 출연한 <遥かなり父母の国 머나먼 부모의 나라>라는 영화가 제작되다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40. 1947.05.20 長屋紳士録 / Nagaya shinshiroku / The Record of a Tenement Gentleman / 셋방살이의 기록 ; 나가야신사록 ; 세입자 인명록  ⓢ ☆

41. 1948.09.17 風の中の牝鶏 / Kaze no naka no mendori / A Hen in the Wind / 바람 속의 암탉 ⓢ ☆

42. 1949.09.13 晩春 / Banshun / Late Spring / 만춘 ; 늦봄  ⓢ ☆

43. 1950.08.25 宗方姉妹 / Munekata kyoudai / The Munekata Sisters / 무네카타 자매들 ; 무네가타 자매 ⓢ

44. 1951.10.03 麦秋 / Bakushû / Early Summer / 초여름 ; 맥추  ⓢ ☆

45. 1952.10.01 お茶漬の味 / Ochazuke no aji / Flavor of Green Tea Over Rice ; Tea Over Rice ; Tea and Rice / 오차즈케의 맛 ⓢ ☆

46. 1953.11.03 東京物語 / Tôkyô monogatari / Tokyo Story / 동경 이야기  ⓢ ⓒ

47. 1956.01.29 早春 / Soshun / Early Spring / 이른 봄 ; 조춘  ⓢ ☆  ⓒ

48. 1957.04.30 東京暮色 / Tôkyô boshoku / Tokyo Twilight ; Twilight in Tokyo / 동경의 황혼  ⓢ ☆ ⓒ

49. 1958.09.07 彼岸花 / Higanbana / Equinox Flower / 달맞이꽃 ; 피안화 ⓢ ☆ ⓒ

50. 1959.05.12 お早よう / Ohayô / Good Morning ; Ohayo / 안녕하세요  ⓢ ☆

51. 1959.11.17 浮草 / Ukigusa / Drifting Weeds ; Floating Weeds / 부초 ⓢ

52. 1960.11.13 秋日和 / Akibiyori / Late Autumn  / 가을 햇살  ⓢ ☆ ⓒ

53. 1961.10.29 小早川家の秋 / Kohayagawa-ke no aki / Autumn for the Kohayagawa Family ; Early Autumn ; The End of Summer ; The Last of Summer / 고하야가와가의 가을  ⓢ ⓒ

54. 1962.11.18 秋刀魚の味 / Sanma no aji  / An Autumn Afternoon ; The Widower / 꽁치의 맛  ⓢ ☆



  • ⓢ (survive)는 현재 필름이 남아있는 영화를 표시합니다. 총 33편.
  • ☆와 ⓒ 는 제가 DVD로 소장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는 국내출시판, ⓒ는 criterion판.

 

신고

세계의 감독 6인이 말하는 오즈 야스지로



abbas.jpg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단순한 사물을 지그시 응시하는 예술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나는 오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내 영화는 할리우드영화처럼 큰 사건도 없고, 또 드라마적이지도 않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내 영화에 대한 옹호자와 비판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들 모두가 오즈를 거명했다. 지지자들은 내 영화를 옹호하기 위해 오즈를 말했고, 비판자는 오히려 그 부분을 비판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초등학생의 인생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스토리가 프레임 안에서 흘러넘치면 관객은 피곤해한다”라고. 그 점에서 오즈는 나의 변호사였다. 오즈의 영화에서도 역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와 장면만으로 오즈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첫눈에 무언가 새롭다고 느꼈다. 영화가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프레임에서 프레임으로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오즈를 존경하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에 많은 감독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영화를 만드는 우리 각자는 상상적으로 오즈와 관계를 맺고 있다. 언젠가 빔 벤더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즈의 영화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사물을 예술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그걸 듣고 왜 이 감독이 오즈 영화를 동경하는지 알게 되었다. 벤더스가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오즈가 최고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있다. 오즈는 예술을 가르쳐준 것이다. 평상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단순한 사물, 그것을 지그시 응시하는 예술을…. 이것이 오즈의 제일 중요한 점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는 ‘사물 그 자체’가 느껴진다. 그의 예술세계는 간단하고 평범하다. 장식없는 수수한 세계이다. 그러나 깊은 표현을 담고 있다. 이해시키려 하는 것도, 결과를 강제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인위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영화 <달과 연못>을 오즈 감독과 ‘본다는 것’에 충실한 관객에게 바치고 싶다.


 oliveira.jpg
 
마뇰 드 올리베이라

산문적이어서 시적인...

먼저 오즈에게 오마주를 바치게 되어 영광스럽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오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짧은 에세이 <소박과 순수의 철학자>라는 글을 쓰고, 파리에서 오즈의 훌륭한 영화 두편을 본 정도이다. 바로 <동경이야기>와 <꽁치의 맛>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작품만을 보고도 그가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있고, 또 순화된 작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즈의 영화에는 미조구치 겐지가 보여주는 리얼리스틱한 면을 넘어설 수 있을 만한 리듬감은 없다. 그러나 그보다 산문적이다. 그 점이 또 다른 종류의 시적인 힘을 갖게 한다. 이건 영화 <만춘>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즈와 나의 공통점을 먼저 얘기하면 그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감정의 표현법이다. 오즈의 작품에서 감정의 표현은 억제되어 있다. 나 역시 감정표현을 너무 드러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고 관객 자신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판단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동은 결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 아니다.

그 점에서 <만춘>의 딸의 감정 역시 매우 억제되어 있다. 여기에는 감싸주고 보살펴주기를 필요로 하는 딸에게 더이상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딸의 행복을 비는 깊은 애정이 승화되어 있다. 육체적인 느낌보다는 아버지로서 딸의 행복을 비는 사랑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섹스는 자연의 일부이고 육체적 상상이지 감정은 아니다. 일순간의 동요로 나오는 부분도 있다. 생물적인 욕망으로서의…. 그래서 <만춘>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 이상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딸이 아버지를 떠나서 결혼을 하면 둘이 살아왔던 그 관계는 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애정에 대한 것이지 육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요시다 감독의 말처럼 이 장면에 성적욕구가 표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딸과 아버지의 애정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생일 역시 오즈와 같은 12월12일이다.)

 

hu.jpg

허우샤오시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그만의 방법

<가배시광>을 어제 겨우 끝마쳤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만춘>과 <태어나 봤지만> <동경이야기>를 다시 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들이고, 특히 <태어나 봤지만>은 1985년에 내가 처음 본 오즈의 영화이다. 신기한 것은 오즈의 영화는 볼 때마다 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즈의 영화는 내게 있어 한마디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글로 시작해보려 한다. 그는 어느 문학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사물의 사실은 표면에 숨겨져 있고 표상으로서 상징되어 있다. 그래서 문자라는 것은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것이다”라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어떻게 연결하느냐,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물과 사실을 보여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오즈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이다. 오즈 감독은 삶의 직접적인 표면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그러나 되풀이하여 보면 그것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생활의 디테일, 즉 감추어져 있는 듯한 작은 것들이 각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깥에서 <만춘>의 딸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나도 거기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허우샤오시엔은 영화 상영 직전 필름을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둘의 관계를 통해 가정과 집에 대한 지배권, 쉽게 말하면 누가 이 집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담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이가 많아져서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외출하기를 원한다. 아내는 자신의 영역인 집에 내가 오랫동안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28살짜리 딸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에게 집은 일상을 공유해나가는 그녀들만의 영역인 것이다. <만춘>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면 하라 세스코가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손님과 장기인지 트럼펫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웃는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하지만 그뒤의 표정은 뭔가 못마땅해하고 있다. 자기의 집에 허락도 없이 누군가 침범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 컷에서 <만춘>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확실히 느꼈다. 하라 세츠코가 연기한 딸은 성적 욕구를 느끼는 남성으로서의 아버지를 떠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엄마 대신에 지켜왔던 아버지를 포함하여, 즉 집(가정)을 떠나기 싫은 것인지 모른다. 이것은 일상 그 자체이다. 이러한 사소한 감정의 변화는 계속된다. 일상에서 느끼는 여성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오즈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그걸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koreeda.gif

고레다 히로카즈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지만 역동적인 힘

대학에 입학했던 20살, 오즈의 영화 <태어나 봤지만>과 <낙제는 했지만>을 보았다. 분명 이때까지 본 쇼치쿠의 영화와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 뒤이어 <만춘>과 <동경이야기>를 봤는데, 한마디로 그 느낌은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오즈의 영화를 보고 처음 강하게 받은 인상은 ‘대사가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이 점이 매우 의문스러웠다. 특히 류 치슈의 의미없는 듯한 대사가 반복될수록 어딘지 모르게 리듬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나의 시나리오 안에 그것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오즈를 모방하는 형태로 대사의 반복을 집어넣어본 것이다. 내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접한 것은 20대 후반인데 그 이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그를 모방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그리고 30대가 되어 <환상의 빛>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나는 영화 속 어떤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낡은 일본 가옥 한채를 찾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넓은 집이면 오즈의 영화처럼 찍을 수 있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큰 툇마루와 10조의 다다미를 찍을 때 표준 렌즈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삐딱한 여러 각도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제일 안정감 있는 각도는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오즈 영화 같은 숏이 나와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모방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표면적으로 나의 영화는 오즈 영화를 많이 모방했지만 내가 찍은 것이 정지되어 있고 정적인 듯한 느낌이라면 오즈의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정적이지만 그 안에는 역동적인 감정이 흐른다. 이것이 차이이다. 그는 가장 동적인 순간에도 정적인 느낌을 사용하여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실패로부터 ‘이제 오즈로부터 벗어나자’라고 각오했다. 그래서 ‘나만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특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시기의 나의 자유로웠던 감각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다. 이것이 내가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영화관이다. 


  aoyama.jpg

아오야마 신지

’나란히’신으로 중독시키다

나는 선배들과 달리 오즈와 아무 관계없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또 그것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는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오즈라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 하고. 어제 나는 텔레비전에서 <태어나 봤지만>을 보았다.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옆으로 나란히 있는 형제장면이었다. 이 ‘나란히’ 기법이 새로운 한편의 영화, 아니 몇십편의 영화가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현상이었다. 이런 장면을 일본영화 안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들의 나란히 신을 보면서 오즈를 떠올리는 것은 오직 나뿐일까? 예를 들어 마키노 마사히로 감독의 <죽어주세요>에서 다카쿠라 겐과 동료가 나란히 있는 신, 그리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의리없는 전쟁>에서 고바야시 아키라와 다른 인물이 나란히 있는 신은 결국 오즈를 연상시킨다. 후카사쿠 긴지는 오즈와 정말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내 영화 <유레카>의 경우에도 인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신이 있는데, 오즈의 영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오히려 이 장면을 <와일드 번치>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오즈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오즈에게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오즈 중독’에 대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오즈 중독에 대한 더 명확한 예는 최근에 만든 <달의 사막>이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일부러 일본 가옥을 넣었고 카메라의 위치도 오즈처럼 하려 했다. 그리고 이야기도 가족의 일상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렇게 전부 오즈식으로 하면서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 좀더 새로운 영화가 되는 것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좌절’했다. 왠지 모르게 지루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즈는 좌절을 한 적이 없을까’라고 말이다. 최근에 오즈의 초기작 <즐겁게 걸어라>를 봤는데 그것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 오즈도 뭔가를 모방하려 하다가 좌절한 경우라는 것이다. 즉 미국영화를 모방하려고 하다가 좌절을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즈의 경우는 그 좌절로 인해 오히려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좀더 말하자면, 야마나카 사다오의 <인정지풍선>의 어떤 숏은 <즐겁게 걸어라>의 이동 숏과 정말 닮아 있다. <인정지 풍선>의 경우는 오즈의 숏을 모방하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오즈의 영화가 야마나카 사다오 영화보다 훨씬 전의 영화이다). 다시 말하면 오즈가 미국영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경우, 그리고 야마나카 사다오가 오즈를 염두에 두었지만 극복한 경우가 나에게 큰힘을 준다. 오즈도 좌절했다는 점, 그를 모방한 또 다른 감독이 오즈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고 있다.


kurosawa.jpg

구로사와 기요시

그는 우리의 무의식이다

오즈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년 전인 1980년 초 필름센터에서 하는 오즈 회고전에서였다. 그때 거의 전 작품을 보았다. 보기 전에 나는 오즈의 영화가 일본의 일상에 대해 담담하고 평화롭게 그려내는 홈드라마라고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정반대였다. 이것은 아마 오즈 영화의 스테레오 타입을 부수고 재평가하자는 그때의 분위기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오즈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뭔가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8mm영화를 찍을 때는 오즈를 응용하자는 분위기의 한편에 속해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카메라의 포지션과 시선, 즉 연출을 모방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레다 감독이 지적한 것처럼, 오즈를 흉내내고, 류치슈의 연기를 그대로 흉내내는 연기를 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 오즈에 대한 모방을 그만두었다. ‘오즈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그만두었다. ‘오즈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된 것이 일본 전통 가옥 안을 찍는 것이었다. ‘가능한 한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자’라고 다짐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강령>이라는 호러영화를 찍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일본 가옥 안을 찍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오즈는 피하자’라는 강박관념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집안에 들어간 촬영기사는 갑자기 카메라의 높이를 낮추고 있었다. 주인공인 야쿠쇼 고지 역시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고정된 카메라에 맞추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말 마술 같은 일이었다. 촬영기사와 배우들 역시 오즈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일본 가옥신만큼은 오즈의 영화처럼 나와버렸다. 사실 지금은 오즈를 의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강하게 거부하는 것 역시 이전에 그에게 강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오즈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로, 그가 뭘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수수께끼로 남겨둔 채로, 나만의 다른 연출을 생각하려 하고 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