学生ロマンス 若き日 학생 로망스 젊은 날 (1929) ★★☆
감독 : 小津安二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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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로망스 젊은 날>은 두 대학생의 실패한 연애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편의상 학생1과 학생2라고 하겠습니다. 영화에서 서로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없는데다 저로선 이름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군요.) 1920년대말의 일본 사회가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놀고먹자 분위기에요. 두 주인공은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공부는 하는둥마는둥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시험이 끝나자 책을 팔아 스키타러 갑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고 삶에 대한 불안도 내비치지 않아요. Ozu가 같은 해에 만든 <대학은 나왔지만>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생고생하는 인텔리를 묘사한 걸 보면, 마냥 희망차기만 한 시대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이렇게 놀고먹는 대학생들이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정이 가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특히 뺀질하게 생긴 학생1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에요.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고 무례하기 이를데 없는 제멋대로인 인간이지요. 그가 졸졸 쫓아다니는 그 여자에 대한 행동은 거의 성희롱에 가깝고 심지어 (아마도) 돈을 받기로 하고 만든 그녀의 물건을 그녀가 곤란해 함에도 아랑곳없이 강탈하다시피 합니다. 혼자사는 여자집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불쑥 들어와 시시덕거리는 장면에선 짜증이 나서 영화를 그만 볼까 싶기도 했어요. 그가 역시 양해도 구하지 않고 얹혀사는 학생2를 골려먹는 장면들은 거의 새디스틱하기까지 하구요.

물론 저렇게 민폐만 끼치는 캐릭터,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학생1이 이 영화속에서는 그냥 '유쾌한 사람'으로 묘사된다는 거에요. 글쎄요... 시대마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매너의 수준이나 기대치가 다르겠지만 오늘날의 관객, 특히 여성분들이 보기에 학생1의 행태는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정도가 심합니다. 유쾌하다니요. 실제로 저런 종류의 인간이 오늘날에도 있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게 분명해요.

당대에는 분명 코미디로 받아들여졌을테지만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전혀 웃기지도 않습니다. 이건 80여년이라는 시간적 괴리 때문만은 아닐거에요. Ozu가 3년후에 만든 무성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이 상영된 하이퍼텍나다는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거든요.

영화는 공장, 고층빌딩들, 학교 운동장 등 도시의 풍광을 패닝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맺습니다. 그밖에도 Ozu의 인장이라 할만한 '풍경 보여주기'도 나오구요. 하지만 영화속 풍경들은 등장인물의 시점숏이고 영화 전체의 맥락에서 의도하는 바도 분명해서-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굴뚝을 틸팅하는 장면은, 말하자면 결국 실패로 끝난 그들의 연애를 상징하는 거겠지요-, Ozu 후기 영화의 풍경 장면처럼 어떤 심미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몇몇 장면은 편집도 꽤 빠른 편이어서 Ozu의 중후기 영화를 주로 보아온 저에게는 꽤 낯설더군요.

여튼간에 Ozu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면 안봐도 전혀 지장없는 영화입니다. Ozu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도 굳이 보실 필요는 없어요. 비슷한 시기의 Ozu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높은 평가를 받기는 힘든 영화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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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미인으로 묘사되는 여주인공과 맨날 골탕만 먹는 학생2. 스키장에서의 수줍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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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쳐다봐도 짜증이 확~ 밀려오는 학생1. '인생을 즐기자'는 취지로 춤추고 계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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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の合唱 도쿄의 합창 ★★★
감독 : 오즈 야스지로 小津安二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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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긴 했지만...>급의 코미디를 기대하고 갔습니다만, 그다지 재밌지 않군요. 아, 이상할까요. 70년도 지난 무성영화를 재미를 기대하며 보러간다는 건? 하지만, <태어나긴 했지만...>은 놀랄만큼 재밌고 웃겼거든요.

오즈 야스지로의 초기영화들은 본 것이 거의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5,60년대 영화와 비교해보면 경기불황이나 실업같은, 상당히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가령 <오하요>같은 영화처럼, 새로이 보급되는 문명의 이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 영화도 없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에두르는 방식의 비판이었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정의'를 지키려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재취직이 어려워 나름의 곤경에 처하는 한 가장의 얘기를 하며 좀 더 직접적으로 당대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현실인식이 신랄하다든지 과격할 정도로 비판적이라든지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가령 갑자기 영어선생으로 취직이 되는 결말은 뜬금없더군요. 하긴 누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암울한 비젼을 보고 싶어하겠어요/했겠어요.

여튼 그닥 재미없었습니다.    (2005·12·19 21:56)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TITLE (K)  도쿄의 합창
 
TITLE (E)  Tokyo Chorus
 
TITLE (O)  東京の合唱
 
DIRECTOR  오즈 야스지로 小津安二郞   Ozu Yasujiro
 
ADDITION  1931 | 35mm  | 91min  | 일본  | b&w 무성영화  

출연: 오카다 도키히고, 스가와라 히데오, 야구모 에미코, 이치무라 미츠오, 다카미네 히데코

기타무라 고마츠의 소설을 노다 코고가 각색한 오즈 야스지로의 초기 걸작. 직장을 잃은 기혼 샐러리맨에 관한 진지한 코미디로, 주인공이 다른 직업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면서 겪는 뼈저린 불운들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비판의식과 함께, 비극적인 소재로 훌륭한 희극을 만들어낸 오즈의 능력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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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刀魚の味 꽁치의 맛 ★★★★
감독 : 小津安二郞 (오즈 야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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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유작이죠. 안 본 영환줄 알았는데 본 영화군요. 언제 봤더라...?

늙은 홀아비를 두고 차마 결혼하지 못하는 딸을 아버지가 시집보내려한다는, <늦봄>과 <가을햇살>과 유사한 줄거리가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꽁치의 맛>이 다른 점이 있다면, <꽁치의 맛>의 딸 미치코가 실연을 하고, 철딱서니 없을망정 아들 하나가 남아 있어 <늦봄>이나 <가을햇살>에서처럼 남겨진 애비가 처량한 신세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역을 맡은 류 치슈는 아래 캡쳐한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슬픔이 역력한 표정으로 딸의 빈 방을 쳐다봅니다. <가을햇살>에서 불꺼진 방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노모의 실루엣이나 <늦봄>의 사과깍는 홀아비의 손과 달리, 감정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네요. '절제'라는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원칙을 생각해보면 이채로운 장면입니다.

딸 미치코 역을 맡은 이와시타 시마 岩下志麻 라는 배우는 시노다 마사히로의 <
동반자살>에서 기생 코하루 역과 부인 오산으로 1인2역을 맡았던 그 배우군요. 아, 심금을 울리는 미소입니다.  (2004·06·28 2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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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시타 시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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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도 이와시타 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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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간 딸의 텅 빈 방을 보면서 슬플에 잠긴 홀아비 류 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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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まれてはみたけれど 태어나기는 했지만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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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무성영화입니다.

무성영화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지요. 소리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소리없음을 보충하기 위해 배우들은 과장되고 정형화된 연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아이들은 놀랍도록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명성이 자자한 채플린의 < Kid, The >의 그 꼬마아이의 연기와 비교해보세요. 오즈의 영화가 10년 정도 후에 만들어지긴 햇지만, 그 연기의 생동감은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의 아이들이 방금전까지 골목에서 뛰어놀다가 엄마가 밥먹으래서 콧물 쓱 닦아가며 뛰어온 것처럼 보이는 반면(물론 요즘엔 그렇게 한가한 아이들이 거의 없겠지만..), < Kid, The >의 아이는 어딘지 경직된 듯한 연기를 하지요. 왜 이 영화 속 아이들의 연기보다 < Kid, The >의 아이의 연기가 더 큰 명성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가장 재밌게 본 무성영화에요. 가장 웃기는 코미디기도 했구요. 한 번 더 보려고 했는데 상영이 끝났군요.

허허... 위의 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저 이상하게 생긴 꼬마, 눈에 선하군요. 하는 짓이 어찌나 웃기고 귀여운지... ^^  (2004·06·08 12:44 )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태어나기는 했지만 生まれてはみたけれど
I Was Born, But...
1932년, 91분, 흑백, 무성, 영어자막
오즈적 스타일과 세계관이 드러나는 초기 대표작으로, 오즈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최초의 작품. ‘일본 영화계의 첫 사회적 리얼리즘 작품’이라 칭송받기도 한 이 작품은 직장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한 회사원의 고단한 삶을 두 아들의 눈으로 응시한 작품으로 풍부한 유머 속에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직장상사의 집 근처로 이사 온 요시이 겐지스케의 두 아들 료이치와 겐지는 텃세를 부리는 동네 아이들을 힘과 꾀로 물리치고 당당히 승자가 된다. 어느 날 자신들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직장 상사인 이와사키의 집에서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아버지가 직장상사인 이와사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굽신거리는 모습의 활동사진을 접하게 되는데.... 「키네마순보」가 뽑은 그해 최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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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の中の牝鷄 바람 속의 암탉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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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영화는 전통적 미덕을 지닌 여성에게 호의를 보냈으며, 가령 <오차즈케의 맛>의 다에코처럼 그런 미덕을 지니지 못한 현대적인 여성은 비난어린 시선으로 묘사합니다.

물론 반동적인 여성관 때문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비난하는 것은 편협하거나 부당한 처사겠지요. 하지만 오즈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플롯에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전장에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궁핍한 삶을 살던 도키코는 아들이 갑작스레 장염에 걸리자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단 한번 매춘을 합니다. 뒤늦게 돌아온 남편에게 이 멍청한 도키코는 그 사실을 숨김없이 고백하고, 이 사실에 분개한 남편은 도키코를 집요하게 구박합니다. 심지어 우발적이긴 했지만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리기까지 해요. 도키코는 죽을 죄를 지었다며 내내 질질 짜구요, 볶아먹든 삶아먹든 니 맘대로 처분해달라며, 아내와 어머니의 도리를 지켜내지 못한 자신을 학대합니다. 남편의 개지랄도 다 받아들이구요. 화 한번을 안내요. 불가항력이었다는 변명도 않고.

가장 가관인 장면은 도키코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후 쩔뚝거리며 힘겹게 윗층으로 올라가는, 그 새디스틱한 씬입니다. 고난에 찬 여성의 일생을 미학적으로 승화한 봉건적 여성관의 감독들을 우린 숱하게 보아왔지요. 라스 폰 트리에 같은 작자들요. 오즈의 저 장면도 라스 폰 트리에 영화의 한 장면 못지않게 불쾌한데, 도키코가 겪게 되는 저 물리적 시련이 (당대의 윤리의식에 따라 규정되고 Ozu가 반복하고 있는) '죄값'에 대한 '회개'와 '응징'의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친구인 류 치슈와의 대화에서 아내를 이성적으로는 용서하겠는데 감정적(?)으로는 용서가 안된다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냥은 용서할 수 없었던 거지요. 자신의 실수로 부상을 입은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용서가 된 것입니다. 차라리 아내에게 직접적인 폭행을 가했다면 그 솔직한 반응에 공감(?)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쩔뚝거리며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는 아내를 조금도 부축하지 않고 퍼대고 앉아 있는 남편의 모습은 죄없는 범죄자를 가혹하게 심판하는 율사의 모습처럼 냉정하고 비열해보였습니다.

<피안화>에서 어머니를 연기한 다나카 기누요가 도키코 역을 맡아 답답하기 그지없는 여인상을 연기합니다.   

단 한 번도 웃을 일 없는, 어두운 영화였어요.   (2004·06·06 23:31)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바람 속의 암탉 風の中の牝鷄
A Hen in the Wind
1948년, 83분, 흑백, 영어자막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에 나간 남편 슈이치는 돌아오지 않고 소식도 없다. 남편 없이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던 도키코는 아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판다. 그러던 중 슈이치가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남편에게 매춘 사실을 고백하는데..
미조구치 겐지의 <밤의 여인들>에서 창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인기 여배우 다나카 기누요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 전작인 <셋방살이의 기록>이 도시 인정물의 연장선상의 희극적인 작품이었다면, <바람속의 암탉>은 패전 후의 생활고와 가혹한 현실을 다룬 작품으로 가족간의 갈등을 주로 다루었던 오즈의 작품 세계에서 전후 일본사회에서 겪는 여성의 수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전후 일본의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묘사로 동시대의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작품이지만, 오즈의 후기 영화미학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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戶田家の兄妹 도다가의 형제 자매들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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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별로 재미없습니다. 오즈 영화의 큰 장점 중 하나인 '풍부한 유머'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거물 기업인이었던 도다씨가 죽으며 많은 부채를 남기자 자식들은 아버지의 유물을 팔아 빚을 갚고 노모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막내딸을 천덕꾸러기처럼 괄시(?)한다는, 눈물없인 볼 수 없는-_- 슬픈 이야기입니다.

오즈 영화의 특징적인 양식들이 구체화되던 시기의 영화인지라 오즈팬으로서는 흥미로울 수도 있겠지만, 영화 자체는 그의 이후 영화만큼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써놓으면 이거, 무지 실례겠지요, 감독한테.^^; 다행히도 이 영화의 마지막 15분간은 코미디 그 자체입니다. 네번째 아들로 출연한 사부리 신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무척 매력적인 배우입니다. 야박한 형,누나들에게 통쾌한 비난을 퍼붓고 천역덕스럽게 남은 밥을 챙겨먹거나, 터무니없이 쑥스러워하며 바닷가 백사장 쪽으로 도망가는 그의 모습은 청승떠는 앞부분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될만큼 유쾌했습니다.

류 치슈의 젊었을 적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참 볼품없게 생겼군요. ^^  (2004·06·0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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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도다가의 형제 자매들 戶田家の兄妹
The Brothers and Sisters of the Toda Family
1941년, 105분, 흑백, 영어자막
한 가족의 몰락과 재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 흥행과 작품성에서 모두 성공한 초기작으로 장면간의 전환 또는 휴지부로 기능하는 여백 쇼트의 사용,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카메라 등 가장 오즈적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후기 작품들의 양식과 내러티브 형태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숙녀는 무엇을 잊었는가>(1937)로부터 많은 양식을 차용하며 전작들에 비해 훨씬 긴 (재)설정화면을 유지하면서 롱 쇼트로 인물을 프레임화하고 있다. 경제계의 거물이었던 도다씨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둘째 아들 쇼지로는 중국 천진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남은 도다 부인과 막내 딸 세츠코는 귀찮은 존재로 외면당한 채 형제들 집을 전전하다 결국 처분조차 힘든 바닷가의 낡은 집으로 옮겨간다. 도다씨의 기일을 지내기 위해 천진에서 돌아온 쇼지로는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형제들의 태도에 대해 분통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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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日和 가을 햇살 ★★★★

Posted 2013.07.22 11:14

秋日和 가을 햇살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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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영화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 영화는 그의 영화 <늦봄>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홀아비를 두고 차마 결혼하지 못하는 딸이 홀어미를 두고 차마 결혼하지 못하는 딸의 이야기로 바뀌었지요. 재밌게도 <늦봄>에서 딸로 나왔던 하라 세츠코가 이 영화에선 홀어미를 연기합니다. (이것 역시 오즈의 영화이니 새삼스러울 것 없습니다만...)  전 하라 세츠코를 흑백영화를 통해서만 보아왔고 그 영화들 속에서 그녀는 항상 젊었거든요.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마흔이었던 그녀는 컬러영화라 그런지 노화의 흔적이 역력한,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저를 조금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놀람은 실망이나 허망함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카메라 앞에 앉아만 계셔도 저는 그만 감동해버리고 마는, 감동적인 우아함이었어요. 마흔의 여성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녀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전 이 영화에 별 4개를 줄 수 있습니다. ^^;

<늦봄> 이후 오즈의 영화에선 카메라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더군요. 조금 신경쓰며 확인해보았습니다만,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어요. 먼저 자리잡고 '앉은 채'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 앞으로 등장인물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면들은 확실히 홍상수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홍상수는 그에게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브레송과 오즈 야스지로 등을 언급하더군요.)

이 영화는 무척 웃깁니다. 세 중년남들의 '지저분한' 대화는 여느 코미디못지 않게 즐거웠습니다. '맨솔레담' 어쩌구 하는 장면에선 그야말로 박장대소. 하지만, 친구의 미망인과 그녀의 과년한 영애에 대한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그 지저분한 대화는 그냥 웃어넘기기엔 불쾌한 구석이 있었어요. 그런 대사를 영화속에 집어넣은 오즈 야스지로와 노다 고고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오즈 영화의 인물들은 하다못해 부부끼리도 껴안지 않는 엄격한 격식과 정중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저 지저분한 대사들이 더욱 천박하게 느껴졌습니다.

akibiyori1sss.gif<늦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시집간 딸의 방에서 사과를 깎던 늙은 애비의 손을 잡아낸, 마지막 장면이었지요. 이 영화에선 비슷한 설정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래요. 이불 '한' 채만이 깔린 어두운 방에서 쓸쓸히 앉아있는 하라 세츠코의 뒷모습을 보여준 후 카메라는 어두침침한 아파트-하라 세츠코가 사는-의 복도를 보여줍니다. 그 쓸쓸함이란... 저의 어머니가 생각나 잠깐 코가 시큰했습니다.

오즈는 여섯 편의 컬러 영화를 찍었습니다. 전 그 색감이 참 맘에 들어요.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약간 바랜 화면은 따뜻한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세트로 세워둔 듯한 벽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흘러가는 게 보이면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쓰는 감독의 섬세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패전 후 꽤 시간이 흐른 후 만들어진 영화지만 이 영화에도 이차대전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습니다. 직접 참전했던 남자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방공호 같은 곳으로 피신해야 했던 아내와 딸의 입을 통해서 말이죠. 이렇듯 전쟁은 가해국이든 피해국이든간에 개인의 삶에 큰 위협이고 상처입니다.

하라 세츠코의 딸 역을 맡은 츠카사 요코도 무척 우아하고 아름다운 배우였어요.

오즈 영화의 배우들은 온천 얘기만 나오면 '슈젠지'를 거론하는군요. 거기 온천이 그렇게 좋은가요?

류 치슈는 없어도 상관없을 미미한 역으로 등장합니다. 류 치슈를 등장시키려고 억지로 만든 배역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4·05·3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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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가을 햇살 秋日和
Late Autumn
1960년, 129분, 컬러, 영어자막
돈 사토미의 소설을 기초로 오즈와 노다 고고가 각색한 작품으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낸 풍속 희극이자 풍부한 유머와 오즈적 에로스가 느껴지는 품격있는 작품.
<가을 햇살>에서의 가을이라는 계절은 부모들의 세대를 일컫는 말로 결혼이라는 주제와 혼자된 부모를 두고 떠나기를 망설이는 딸의 관계를 역시 중심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초로의 친구들은 친한 친구의 미망인 아키코의 딸 아야코의 혼인을 돕기 위해 나선다. 하지만 그녀의 딸은 혼자 살게 될 어머니를 걱정해 결혼을 망설인다. 결국 친구들은 그녀와 어머니 모두를 결혼시키기로 계획하고, 그들 중 평소 미망인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히라야마는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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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春 이른 봄 ★★★★

Posted 2013.07.22 11:14
早春 이른 봄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http://imdb.com/title/tt0049784/

전에 본 적이 있는 영화입니다. 두 번째 본 것이지요. 티켓을 예매하기 전 간략한 시놉시스들을 다 읽었는데도 봤던 영화라는 것을 기억못한 거지요. 제 둔한 기억력 때문이라기보다 아시디시피 오즈의 영화가 워낙 그 얘기가 그 얘기인지라...

이 영화는 앞서 본 <お茶漬の味 오차즈케의 맛 >처럼 부부생활의 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お茶漬の味 오차즈케의 맛 >의 부부보다 젊고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지지요. 잘생긴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든요. 남편과 '금붕어'로 불리는 직장동료가 술을 마시다 키스를 하는 장면은 나름대로 쇼킹했습니다. 오즈 영화에 키스 장면이라니요! 영화사의 압력(?)이었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남녀가 키스를 하자 곧바로 돌아가는 선풍기를 응시해버리는-패닝이 아니라 컷으로 장면전환을 하지요-  카메라는 그런 장면에 민망해하는 오즈 자신의 시선처럼 느껴져, 뭐랄까, 귀여운 느낌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쇼킹한 장면은 또 나와요. 그렇게 하룻밤의 외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내를 살짝 안습니다. '섹스하다'의 완곡한 표현으로서 '안았다'가 아니라 포옹을 하지요. 이것 또한 오즈 영화에선 이례적인 장면이지요. 그의 영화의 인물들은 부부일지라도 엄격한 격식 같은 것을 지키며 서로의 몸에 손을 댄다든지 하지 않거든요. <오차즈케의 맛>에서 부부가 먹을 것을 챙겨 부엌에서 나올 때 아내가 남편의 옷자락에 살짝 손을 대는 장면은, 그래서 무척 다정하게 느껴졌던 거구요. 아내를 포옹하는 심리는 무엇이었을까요? 못다 채운 정욕? 아니면 미안해서? 그런 사소한 몸짓 하나로도 참 많은 감정이 표현될 수 있는 건 오즈 영화의 '절제'라는 맥락 덕분이겠지요.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 요란한 설정과 많은 대사는 사실 낭비일 수도 있는가 봅니다.

오즈는 완벽주의적인 통제력으로 영화공간을 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하다못해 소품으로 등장하는 술병의 라벨까지 일정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옥의 티 같은 장면이 몇 번 보이는군요. 가령 '728호' 사무실에서 나와 다른 사무실로 이동했는데 그 사무실도 '728호'였고, 마작인가 대작(對酌)인가 하는 테이블 밑에 놓여있던 모기향의 위치가 컷 전환후 바뀌어 있기도 했습니다. 저게 사실은 옥의 티같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연출이었을까요?

위기에 빠진 부부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닙니다. 샐러리맨의 애환과 그런 고단한 삶 자체에 대한 허무감을 묘사하는 데 영화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전 장관이었던 "일본 제일의 샐러리맨"의 초라한 말로에 관한 얘기를 하며 삶의 허망함을 얘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달관이라기보다 체념으로 보이더군요. 그 쓸쓸함. 오즈의 영화가 묘하게 슬픈 건 저런 쓸쓸함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부부의 어린 아들이 몇 년 전에 죽었구요, 죽음이 임박한 병석에 누워있는 남편의 동료도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다음날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남편은 놀라울만큼 무덤덤하게 그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죽음은 저렇게 삶의 한 구석에 자연스레 깃들어있으니 별스럽게 슬퍼할만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에도 역시 이차대전의 기억이 스며있습니다. 남편이 참전전우회에 참석하여 술에 취해 군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거든요.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 장면은 아니었겠지만, 한국 관객으로선 아무래도 좀 불편합니다, 저런 장면.

오즈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풍부한 유머로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특히 "엄마, 속바지 내려갔어요."의 엉뚱한 타이밍은 정말 기가 막혔어요!

남편을 유혹하는 그 매력적인 아가씨의 별명은 '금붕어'입니다. 버리지도 먹지도 못할, 처치곤란의 아가씨라나요.

일본인들은 참 편리한 사람들이에요. 헤어질 땐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어색함같은 걸 느끼지 않으며 '석별의 정'을 부르고 "한 번 더 부를까요?"라고 누가 제의하면 또 다 같이 합창하고...  (2004·05·31 12:56 )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이른 봄 早春
Early Spring
1956년, 144분, 흑백, 영어자막
결혼 8년째를 맞아 부부생활에 권태를 느끼던 회사원 스기야마 쇼지는 어느 날 샐러리맨들의 하이킹 모임에 갔다가 타이피스트로 일하는 아름답고 쾌활한 가네코 지요와 사랑에 빠진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아내 마사코는 집을 나가는데..
‘결혼’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이른 봄>은 오즈가 주로 다루었던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아닌 결혼한 부부의 헤어짐과 재결합을 다룬 작품이다. 이제까지 오즈가 주로 다루었던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이 작품은 메이저 영화사인 쇼치쿠의 의견을 수렴해 관객 취향에 부합하는 일부 성적 문제가 가미된 멜로드라마로 탄생되었지만 여전히 오즈적 영화 스타일은 고수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일본적인 감독으로 평가받는 오즈는 이 작품에서도 일본문화 속에 깊이 존재하는 인생의 순환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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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9)

 

お茶漬の味 오차즈케의 맛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imdb

이 영화는 오즈 영화치곤 카메라의 움직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봤자 슬금슬금 트랙킹 하는 정도지만. 남편에게 화가난 다에코가 집을 나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열차씬에서 보여주는 철교의 그 기하학적인 골격도 무척 이채롭습니다. 오즈의 영화에 삽입되는 풍경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빨래나 날아오르는 풍선처럼 대체로 서정적이고 정적인데 반해, 의도적으로 오래 삽입된 저 철교 장면은 묘한 긴장감과 불길함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도 그래요. 다에코를 연기한 코구레 미치요는 뭔가 오즈답지 않은 사건을 터뜨릴 것만 같은, 퇴폐적이고 표독스럽기까지 한 캐릭터였거든요. 요란한 꽃무늬로 장식한 그녀의 방도 불안감을 느끼게 할만큼 폐쇄적인 공간이었구요. 다다미 위에 무릎꿇고 앉아있는 대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다에코는 그런 포즈만으로도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불쾌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런 불쾌감은 오즈 자신의 시선이었는지도 몰라요. 오즈는 상류계급출신의 이 현대적인 여성이 남편의 그 소박하고 성실한 품성에 감화받고 매료되는 설정을 통해, 세태 변화에 대한 그 자신의 반감을 피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사과하며 평소 안 차려보던 '밥상'을 준비하는 다에코의 눈빛은 얼마나 나긋나긋하던가요.

영화는 부부생활의 위기의 원인을 대체로 부인 다에코의 성격상 결함에서 찾는 듯 하지만, 한편으론 자식이 없다는 점 역시 그 원인인 듯 합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이른 봄>의 젊은 부부 역시 자식이 없거든요. 오즈의 영화에서 어린 자식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만, 안정되고 평화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선 자식의 존재는 필수적이라고 오즈는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두 부부가 화해한 후 야식을 챙기는 부엌씬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부엌 이곳저곳에서 밥이며 반찬 등을 찾아내며 즐거워하는 부부의 모습은 보는 저까지 흐뭇하게 만들만큼 행복해보였습니다. 된장에서 꺼낸 오이지(?)를 씻는 아내의 옷자락을 잡아주는 남편의 배려는 아, 감동이었어요.

남편은 "부부는 오차즈케의 맛이다"라고 말합니다. 오차즈케라... 그건 어떤 맛인가요? " '오차즈케'라 해서 우메보시(매실 장아찌 일종)를 얹은 밥에 일본식 녹차인 '오 차'를 붓고 고추냉이(와사비)를 첨가해 말아먹는다. 와사비의 톡 쏘는 맛과 오차의 맛이 입맛을 자극한다."

과묵한 사무라이의 풍채를 지닌 사부리 신도 류 치슈만큼이나 오즈의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군요. 그 무뚝뚝한 얼굴로 실없는 소리를 해대면 무척 즐거워집니다. 이 영화에선 류 치슈가 꾀재재하게 해가지고 파친코 사장쯤으로 나오는데  그 장난스런 표정이 무척 재밌었구요.   (2004·05·31 12:55)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오차즈케의 맛 お茶漬の味
The Flavor of Green Tea Over Rice
1952년, 116분, 흑백, 영어자막
<초여름>에 이어 오즈의 명콤비였던 노다 고고와 함께 완성한 전쟁 귀환 1호작. 완만한 템포의 유지를 위해 인물들의 이동을 보여주는 전환 쇼트의 사용, 구성의 유쾌함, 정밀하고 추상에 가까운 화면 구성에 종속시킨 카메라 움직임 등 오즈의 특징적인 영화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착실하고 검소하며 일밖에 모르는 남편 모키치 사타케를 바보 취급하는 다에코는 유한부인들과 함께 온천을 놀러 다니는 등 결혼 생활의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조카 세츠코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봉건적인 중매결혼을 거부하고 자유분방한 회사원 노보루와 모키치와 어울린다. 다에코는 세츠코의 반항적인 모습에서 모키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와 다툰 뒤 집을 나와 친정으로 향한다. 이때 회사로부터 우루과이로 출장가라는 명령을 받은 모키치는 다에코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한 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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麥秋 초여름 ★★★★

Posted 2013.07.22 11:12

(2006.06.29)

맥추.jpg

麥秋 초여름 ★★★★
감독 :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1903~1963)
ozuyasujiro.com

아... 죄송합니다만 본지 며칠 지나버려서 이 영화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는군요. 제 안좋은 머리도 머리지만 오즈의 영화는 비슷비슷한 소재와 한결같은 영화형식으로 유명하죠. 그날처럼 그의 영화를 하루 세 개 정도 보고나면 어떤 장면이 어느 영화의 것이었는지 막 뒤죽박죽이 되어버립니다. 이 영화에는 아빠(류 치슈)가 장난감 기차레일을 사다주지 않아 화가난 두 어린 아들이 집을 나가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하이요>에도  아빠(류 치슈)가 TV를 사주지 않아 화가 난 두 아들이 집을 나가버리구요. 둘 다 아빠한테 한 대씩 쥐어박히고 나서 였어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발견한 곳도 똑같이 역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과년한 딸아이 시집보내기'같은 소재는 4번인가 반복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영화도 그런 내용입니다.) 사건의 반복 뿐만 아니라 나오는 배우들도 거의 일정해요. <동경이야기>에서 아버지(류 치슈), 어머니,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하라 세츠코)로 나왔던 배우들이 이 영화에선 아들, 어머니, 이웃집 여자, 딸로 나오는 식입니다. 제목은 또 얼마나 대충대충 지었나요. <늦봄>, <이른 봄>, <초여름>, <가을햇살>, ...

harasetuko.jpg오즈의 영화에는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동경이야기>에서 노모가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에 "쏘~까."를 반복하는 아들의 체념은 그 어떤 통곡과 눈물보다도 더 절절한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에도 전장에서 죽은 아들에 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는 노모가 있습니다. 카메라는 눈시울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 후 뜬금없이 바람에 나부끼는 풍항계같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뜬금없이 삽입되는 풍경씬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 장면은 마치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마는, 그런 느낌입니다. 극중 인물들과 같이 울어주는 영화. 위로받는 느낌입니다.

하라 세츠코 얘기를 빼먹을 수 없지요. 하라 세츠코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하나입니다. 오즈의 영화에 많이 출연하기도 했구요. 서구적인 마스크에 키도 상당히 커보입니다. 오즈의 영화에선 착한 며느리, 다정한 딸 등으로 출연합니다만, 이차대전 때는 파시즘 선전 영화등에도 곧잘 등장했다고 하는군요. 여튼간에 사정없이 우아한 배우입니다.  (2004·05·31 12:53)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초여름 麥秋
Early Summer
1951년, 124분, 흑백, 영어자막
혼기에 찬 노리코는 조건이 좋은 혼처를 거부하고 부모, 형제와의 상의 없이 오빠의 친구이자 아이 딸린 홀아비 켄이치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갑작스런 노리코의 태도에 가족들은 당황하는데... 오즈의 대다수 영화들이 산업화와 서구화에 따른 가정의 해체에 관한 것이듯 이 작품도 딸의 결혼으로 대가족이 해체된다는 기본 골격을 따라 몇 개의 에피소드로 연결 된 홈 드라마이다. “스토리 자체보다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 ‘윤회’라든가 ‘무상’이라든가 하는 것을 묘사하고 싶었다”는 오즈의 언급처럼 이 작품에서 스토리나 플롯이 중요한 기능을 하지 않음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플롯이 인위적 상황을 만들고 사실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파악한 오즈는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런 표현과 자연의 리듬에 집착함으로서 인물들 또한 자서전적 연기를 창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상적인 삶에 대한 세심한 탐구, 이야기의 과감한 생략, 시공간의 독특한 사용, 계속해서 변하는 행동의 리듬을 통해 오즈 특유의 소시민적 관점이 투영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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