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세 나오미는 과대평가된 감독이다,라는 저의 생각은 바로 이 영화 때문에 갖게 되었습니다. 쓸데없이 길기만 한 이 영화는 뭘 해도 느릿느릿입니다. 그런 긴 호흡이 어떤 상황에선 미학적 효과같은 것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과잉된 작가의식을 드러내는 게으른 표시일 뿐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진부하거나 작위적이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구요. 도대체 무슨 맥락으로 도자기 굽는 가마를 뽀개버렸나요? 시도때도 없이 끼어드는 감상적인 멜로디는 딱 7,80년대 작부영화를 연상시킵니다. (카와세 나오미가 음악도 직접 맡았다는군요.) 카와세 나오미가 촬영도 직접 했다는데, 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장면에서 핸드헬드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배우가 일순 카메라를 의식해 카메라를 힐끗 쳐다보는 장면도 나와요. (이런 어설픈 실수는 <사라소주>에서도 반복됩니다.)

한마디로 어설프고 설익은 아마추어같은 영화에요. 저는 물론 이런 수준의 영화도 못 만들테지만, 이런 감독에게까지 찬사를 바칠만큼, 평론가들은 심심한가요?

<캬카라바아>라는 짧은 다큐멘터리도 같이 보았는데, 이건 보다가 한 반쯤 자버리는 바람에 (코까지 골며!) 뭐라 할 말이 없군요. 자기연민과 자기애가 낯뜨거웠다는 정도?

.



호타루 火垂 / Hotaru

000 | 164min | Color | 드라마 | 주연 * 나카무라 유코, 나가사와 토시야

2001 부에노스 아이레스 독립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2000 로카르노영화제 C.I.C.A.E.상 수상 / 국제비평가상 수상


감성적이고 숫기 없는 스트립 클럽 댄서 아야코. 그녀는 어린 시절 자살한 엄마에 대한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우연한 사건으로 도자기 공인 다이지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다이지의 존재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아야코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를 떠날 결심을 하고…
 

 

캬카라바아 きゃからばあ / Kya Ka Ra Ba A

2001 | 50min | Color | 다큐멘터리 | 출연 * 가와세 나오미

가와세 나오미는 1999년 9월 5일, 아버지의 부고를 듣게 된다. 9년 전인 스물 두 살이 되어서야 다섯 살 때 자신을 떠났던 아버지와 17년 만에 조우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기 위해 애쓴다.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에게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겨보고, 엄마를 찾아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가와세 나오미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문신을 몸에 새기며 아버지를 떠나 보내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른다.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카와세 나오미 河瀬直美 회고전>의 영화들을 보려고 하이퍼텍나다에 갔다 왔습니다. 오늘 네 편 봤구요(한편은 50분의 상영시간 중 반은 졸았습니다.), 패키지로 산 영화표 때문에 두 편을 더 봐야 합니다.

카와세 나오미는,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성일이 무지하게 찬사를 보내던 감독이었던지라 나름 기대하고 갔는데... 반쯤 실망이군요. 오늘 네 편 본 소감은, 과대평가된 감독이라는 점입니다.

수자쿠는 오늘 본 네 편 중 가장 맘에 든 영화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집착, 정적인 화면구성, 뜬금없이 삽입된 아름다운 자연풍광, 심심하기 그지없는 내러티브... 등은 야스지로 이후의 일본영화에서 수도없이 보았던 방법론이고 주제이지요. 그런 맥락을 감수하고 보아도 꽤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힘들지만,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제법 감동적이기도 하구요. 뭣보다 딸내미로 나온 오노 마치코는 정신없이 귀엽습니다. <너를 보내는 숲>에도 주연으로 나오나 봐요. 꼭 보러가야지. 감정을 드러내는 섬세한 몸짓같은 것도, 성차별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여성적인 섬세함이 느껴집니다. 다시 보러 가려고 합니다, 이 영화. 오늘 본 영화 중 유일하게 맘에 드는 영화였습니다.


수자쿠 萌の朱雀 / Suzaku

1997 | 95min | Color | 드라마 | 주연 * 시바타 코타로, 오노 마치코

1997 칸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1997 로테르담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
1998 마이니치 필름 콩쿠르 최우수 촬영상 수상

타하라 코조는 어머니와 아내, 조카인 에이스케, 딸 미치루와 함께 나라현 남부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어려워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타하라의 아내는 조카 에이스케가 일하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에이스케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미치루는 엄마와 에이스케의 사이를 질투하는데…




일본의 신성, 가와세 나오미 河瀨直美

가와세 나오미는 너무 일찍 부모와 헤어졌다. 먼저 떠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가와세가 세살 때 바람이 나서 그녀 곁을 떠났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새로운 삶을 찾아서 그녀 곁을 떠났다. 가와세는 외할머니 곁에 남았다. 어린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걱정한 외할머니는 그녀의 딸로 외손녀를 입양시켰다. 그러나 여기는 도쿄가 아니다. 나라현의 이 작은 동네에서 가와세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자란 아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안다. 아마 어린 가와세도 그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친구가 없었으며, 친구들도 가와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혼자 그렇게 십대를 통과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8mm카메라로 관심을 옮겼다. 무얼 찍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벌써 스물세살. 가와세는 외할머니에게 불현듯 물어보았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요. 외할머니는 화가 나서 대답했다. 니 애비는 딸 생각할 사람이 아냐, 그러니 찾을 생각도 하지 말거라. 그것이 가와세의 여덟 번째 8mm영화 <따뜻한 포옹>의 시작이었다. 가와세는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아무도 그녀에게 영화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처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실수를 하고야 만다. 종종 초점이 안 맞고, 녹음은 대부분 잘못되어서 잡음과 뒤섞여 있으며, 삼각대가 없어서 시종일관 화면이 흔들린다. 이 영화는 연출, 촬영, 편집, 녹음, 음악을 그녀 혼자서 했다. 그 말은 그녀에게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와세는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앨범 속의 사진을 꺼내들고, 거기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혼자서 불러본다. 그런 다음 그 사진을 찍은 장소를 찾아 나라에서 머나먼 고베까지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여행한다. 그리고 기어이 사진 속의 그 장소에 가서 카메라를 세우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서서 영화를 찍었다. 가와세는 중얼거린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는 왜 슬픈 거지. 푸른 하늘, 힘겹게 자라는 양파 뿌리, 바람에 흔들리는 안테나, 흩날리는 민들레 꽃씨, 잠자리의 날개.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한다. 야마시로 기노요부입니까? 저는 가와세 나오미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의 딸입니다.

이 영화는 그 이듬해 야마가타영화제에 출품되었다. 40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실수투성이의 8mm영화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일본 다큐멘터리의 전설적인 존재인 오가와 신스케의 촬영감독이었던) 다무라 마사키가 이 소녀의 진심을 보았다. 그는 이제 막 스물네살이 된 소녀를 위해서 프로듀서를 소개하고, 스탭을 꾸리고, 그리고 그 자신이 카메라를 잡았다. 가와세는 이 팀을 이끌고 외할머니의 고향 니시요시노의 산속 작은 마을에 들어가 그 기억을 찾아간다. 딸을 떠나보내고, 그 딸의 딸을 키우면서 살아간 외할머니와 그 마을의 이웃을 이해하려는 저 필사적인 노력은 아무런 미동도 안 하는 카메라의 기나긴 롱테이크 화면 앞에서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가와세의 맹세이다. 그녀의 (열다섯 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 35mm 장편영화 <수자쿠>는 1997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그녀 나이 스물일곱살 때 일이다. 이것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최연소 수상이다.

사실상 그녀의 영화는 수줍은 고백이고, 가슴 저미는 하소연이며, 슬픈 질문이다. 오직 일본에만 있는 사소설(私小說)의 전통 속에서 사적(私的) 영화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불가사의한, 난처한, 기이한, 불편한, 하지만 결국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야마는 그 진심의 영화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아니, 점점 더 깊이를 얻어갔다. 가와세는 느리지만, 점점 세상을 감싸안을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가족에게서 마을 사람들을 껴안기까지 거의 십년이 걸렸다(<따뜻한 포옹>에서 <사라소주>까지, 그리고 내 생각으로 <사라소주>는 2003년 칸 경쟁작 중에서 가장 좋은 영화 중 한편이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자기를 버린 세상을 용서하고, 그 세상의 너비만큼 그녀는 성장할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당신을 기다릴 수 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hermes59@hanmail.net   (2008.04.22)


 

 

'movie >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沙羅双樹 사라소주 ★★★  (0) 2013.07.23
火垂 호타루 ★★☆  (0) 2013.07.23
萌の朱雀 수자쿠 ★★★☆  (0) 2013.07.23
Blood Diamond 블러드 다이아몬드 ★★★☆  (0) 2013.07.23
히어로 Hero ★★★☆  (0) 2013.07.23
2007년 Cocteau 의 Best Movies  (0) 2013.07.23

Blood Diamond 블러드 다이아몬드 ★★★☆
Director:Edward Zwick

이 영화를 보고도 이러저런 명목/속셈으로 다이아몬드를 갖고/주고 싶어하는 년놈들이 있다면, 그 년놈들은 좋게 말해 물신 앞에 정신을 놓아버린 자본주의의 광신자이고, 좀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자본의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이 아니라 단순한 여흥을 위해 벌어지는 살육을 방관만하는 잔인한 포식자일 뿐입니다. 이런 야만이 지금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건 '실용'이라는 시대정신에 포획된 우리들 대부분이 바로 그 광신자이고 포식자라는 점이구요.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저에게 최소한의 양심과 자본의 유혹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언젠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도 돈보다 공동체의 유대 같은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평탄한 세상살이를 해오면서 무슨 더러운 꼴을 보았다고 이렇게 속속들이 속물이 되어버렸을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의 정신은 온전합니까?

나름의 균형을 유지한 고발정신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인 이 영화는, 영화사적 가치 같은 걸 떠나서 모두들 봐줘야할 영화입니다. 돈지랄에 미친 세상속에서 나 하나만이라도 제정신 유지할 수 있도록.

제니퍼 코넬리는 옷 다 걸치고 있어도 몹시 섹시하시군요. 디카프리오는... 쟤 저렇게 멋있어질 동안 난 뭐하고 있었나?  (2008.04.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