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dget Jones's Diary 브리짓 존스의 일기 ★★★☆
Sharon Maguire 2001
imdb naver
[ 딴지일보 온라인 검열우원에 지원하기 위한 revised version입니다.]
이 영화에 대중적 성공을 가져다 준 가장 큰 장점은 브리짓 존스(Renee Zellweger 분)라는 평범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도 아니고 연봉 수 억대의 커리어 우먼도 아니다. 뱃살은 두꺼워지고 남자친구도 없이 새해를 맞아야 하는, 알콜 중독이 임박한 노처녀다. 영화는 ‘진실한 사랑’을 얻기 위한 그녀의 볼쌍사납고 어이없는 실수담을 연달아 보여주며, 신화적 미모의 선남선녀들의 낭만적인 로맨스를 그리는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와 유쾌함을 이끌어낸다. 르네 젤위거는 그녀의 이전 어느 영화에서보다 매력적이다. 두둑한 살집이 붙은 엉덩이를 카메라에 들이대며 자빠지고, 구질구질한 방구석에서 술에 취해 '30대 노래'에 맞추어 립싱크를 하며 청승을 떠는 등, 온갖 스타일 구기는 연기를 하면서도! 꼴불견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가엽기도 하고 ‘진실한 사랑’을 향한 그녀의 처절함(마크(Colin Firth 분)를 쫓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웃기다기보다 비참했다.)이 어딘지 공감이 가기도 해서 브리짓 존스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거다. 정해진 수순에 따라 진부한 결말에 이르긴 하지만 매우 재미있고 유쾌한 코미디임에 틀림없다.
원작 소설의 광범위한 여성팬층을 생각해 볼 때, 이 영화에 대한 여성관객들의 호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현실감있는 캐릭터의 좌충우돌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할 수 있었다며 이 영화에 대한 만족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신데렐라 이야기에 기원한 헐리웃제 로맨틱 코미디와는 격이 다른 깊이를 갖고 있는 영화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결국 이 영화 역시 무기력하고 정서발육부진인 여성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헛소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주장하는 진실한 사랑은 브리짓처럼 살이 쪘든지 실수투성이든지 골초든지에 상관없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란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이런 정의에 감동하는 것은 키스에 잠이 깨어 백마탄 왕자의 신부가 되었다는 어느 억세게 운좋은 여자의 결혼성공담에 감동하는 것만큼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두 가지 재수좋은 경우는 전적으로 남자에 의해 주어지는 호의나 관대함 때문이지, 체중관리나 능력없음 등에 관한 콤플렉스 극복이라는, 그녀 자신의 자기긍정의 결과가 아니다. 브리짓과 그녀의 어머니야 운이 좋아서 그런 남자를 만났지만, 그런 남자를 만나 ‘진실한 사랑’을 이루게 될 것을 기대하느니 차라리 눈에 띄는 개구리마다 키쓰를 하며 팔자 고쳐줄 변신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편이 더욱 현명한 처사같다. 어떤 눈병난 남자가 있어 자기조차 자신이 싫은 그런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설상가상 이 영화는 ‘진실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남자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 ‘사랑에 눈멀어 맹목적일 것’ 말고도 더 있다고 말한다. 다니엘(Hugh Grant 분)은 그 미덕을 갖추지 못해 브리짓에게 차였다. 전력이 수상하긴 하지만 다니엘도 마크만큼이나 브리짓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브리짓은 다니엘 대신 마크를 선택한다. 이런 설정은 브리짓을 속이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은 다니엘의 바람기에 대한 단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남자의 바람기를 참지못하는 브리짓의 강박증은 마크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그녀는 ‘질투심에 주먹다짐'(여성을 감동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로맨스의 클리쉐)까지 했던 마크를 처음엔 차버렸지만, 나중에 마크의 이혼에 관한 누명-마크가 다니엘의 신부와 불륜을 저질렀다는-이 벗겨진 후에는 그를 사랑하기로 맘먹는다. 이 영화의 결말대로라면 브리짓이 (혹은 이 영화에 공감하는 여성관객들이) 생각하는 진실한 사랑이란, 콤플렉스 덩어리의 한심한 여성을 조건없이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방종하지 않을 것, 적어도 그녀랑 사귀는 동안에는 어디서 오입질하지 말 것(거 참 힘들군.)도 전제로 한다. 그런 조건은 도덕적으로 타당한 요구일지도 모르지만, 양손에 두 한심남(그 중 한명과는 잠자리도 같이 하면서)을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는 주제에 참 바라는 것도 많으시다 싶다.
이러저러한 사소한 시빗거리 이외에도 이 영화의 대리만족이 차라리 기만에 가깝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사실 내러티브 바깥에 있다. 요컨대 당신이 이 영화에서 느끼는 현실감은 착각일 뿐이다. 르네 젤위거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캐릭터의 매력이 이 영화의 비현실적인 설정에 개연성(저렇게 망가져도 이쁜 여자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을 부여하는 것일 뿐, 극장 밖 당신 인생은 다르다. 현실속의 보통 여성이 브리짓과 비슷한 꼬라지를 하고 있으면서도 인권 변호사와 잘나가는 편집장같은 두 개의 호박을 한꺼번에 만져볼 가능성은 분명 매우 희박하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툭하면 술에 취해 질질 짜기나 하는 의지박약에, 자신에 대해 맘에 드는 점이 별로 없는 자신감 부재에, 심지어 남자 한 번 꼬셔보겠다고 빤쓰인지 치마인지 구별도 안되는 걸 입고 다니는 이 얼빠진 여자한테 ‘진실한 사랑’의 가능성이 한꺼번에 두 개나 생긴다는 것은, 글쎄... 나 같은 평범한 남성에게는 매우 해괴한 케이스로 생각된다.
하기사 신데렐라가 정상적인 정신상태의 여성에게 콧방귀 이상을 유발하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의 억지와 기만도 결코 혐오스럽다거나 위험한 수위의 것은 아니다. 에로영화를 보는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가 잘빠진 여배우와 적절한 내러티브에 의해 강화되는 것처럼,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여자들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도 현실감있는 개연성에 의해 강화되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이 영화 매우 재미있다. 특히 르네 젤위거 팬은 꼭 보시라. 이 배우는 뭘 해도 이쁘시다. (200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