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い殺意 붉은 살의 ★★★☆
감독 : 이마무라 쇼헤이 (今村昌平)
imdb

제가 본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의 여배우들은 대부분 아름다웠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나라야마 부시코>에 나왔던 바이쇼 미츠코의 풍만한 육체는 얼마나 황홀하던가요! <우나기>와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시미즈 미사는 또 어떻구요. <간장 선생>이 바다에서 갓 건져낸 아소 쿠미코의 젖은 엉덩이는 또 얼마나 탐스럽던가요? <돼지와 군함>에는 요염한 육체의 매춘부들이 떼거지로 등장하지요. <일본 곤충기>의 그 막나가는 모녀들이 거칠고 가혹한 현실의 도전에 저항하는 무기도 바로 그녀들의 풍만한 육체와 요염한 얼굴이었지요. 그녀들의 삶의 방식이 매춘이거나 첩살이라 할지라도 그녀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카우보이 비밥>에서 페이의 대사였던가요? 그런 척박한 시대에 "여자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위대"한 거지요.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의 원천은 이렇듯 그녀들의 아름다운 육체로 환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성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은 실제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입니다. 게다가 이마무라 쇼헤이는 영화의 섹스씬을 여성의 성에 대한 폭력행사로 해석하기 힘들만큼 동물적으로 묘사하지요. 그녀들의 욕망은 그놈들의 욕망만큼이나 맹목적이고 적극적이어서, 여성의 성이 일방적으로 착취된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의 여성들이 하나같이 아름답다보니, 여성의 적자생존의 순위가 숫컷의 욕망에 따라 결정되어온, '욕망의 객체'로서의 여성史가 그의 영화에 반복되는 듯 해, 불쾌감을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다코을 연기한 하루가와 마스미는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의 주인공치곤 너무 못생겼군요. 극중 남편이 몇번이고 놀리는 것처럼 너무 뚱뚱해요. 그런데도 사다코는 쇼헤이 영화의 어느 여성보다 영악하게 삶을 꾸려나갑니다. 그녀의 어눌함과 모자람이 남편을 속이기 위한 노련한 연기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지요. 그녀는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끼며 자살을 시도(?)할만큼 민감한 윤리의식의 소유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불륜의 대해 천역덕스럽게 거짓을 말할만큼 뻔뻔하기도 합니다. 이 이율배반은 한 가지 코드로 자연스럽게 설명되지요. 달려오는 기차에 차마 몸을 던지지 못하는 그 우스꽝스런 장면에서 잘 드러나는, 그녀의 삶의 의지! 그녀는 강간범과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변명을 자신에게 질리도록 해대지만 그건 자신의 욕망에 그럴듯한 허울을 씌우기 위한 합리화일 뿐이지요. 그녀가 그날 밤 창문을 열어놓은 이유도, 그 철저한 자기합리화 덕에 그녀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자신의 성욕 때문이란 걸 우린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불륜의 대상과 유일한 목격자가 모두 죽어버리는 결말에 이르르면 가장 이색적인 타입-추한 육체와 둔한 두뇌-의 팜므 파탈을 발견한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맹목적인 욕망과 너저분한 변명을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녀와 얼마나 다르다고?


한국영상자료원 시사실의 좌석은 정말 최악입니다. 앞에 앉은 사람 머리통에 화면의 1/4는 가려지더군요. 결국 일어선 채로 보았습니다.    (2004·06·10 23:33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