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u douce, La 부드러운 살결 ★★★☆
Directed by François Truffaut
imdb    naver

제 취향이 워낙 저렴한지라 누벨 바그 같은 거랑 별로 안 친한 탓에 트뤼포 영화도 달랑 4편 밖에 안 봤거든요.  <day for night>도 아직 안 봤어요.

그런데도 '프랑소와 트뤼포 컬렉션 Vol.1'라는 5장짜리 박스셑을 산 건, 처음 출시했을 때 9만원 가까이 하던 물건이 지금에 와서는 4만원도 안 한다,더라는 횡재스런 사태에 눈이 먼 탓이었습니다. 박스셑, 꽤 뽀대나게 생겼네요. 알토미디어의 홈페이지에 보니까 Vol. 2 도 출시된다던데, 그 물건도 한 반년쯤 기다렸다가 가격이 내려가면 또 사야겠습니다. 여튼 가격 대비 최고 만족이네요. 서플도 빵빵하고.

68혁명 같은 건, 세대도 다른 데다가 정서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지금은) 공감이고 동경이고 없습니다. 구닥다리 영화는 즐겨 보는 편이지만, 뭔가 알듯말듯 혁명의 냄새를 풍기는 68년 즈음의 프랑스 영화들은 한마디로 저로서는 감당이 안 되었거든요. 가령 고다르의 <메이드 인 USA>는 거의 뇌를 마비시킨 상태에서 볼 수 밖에 없었어요.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도 단지 놈팽이의 섹스모험담 정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았구요.

그런 맥락에서 트뤼포의 영화라고 하면, 또 졸라 심각한 소리를 심각하게 하는 졸린 영화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지금까지 본 트뤼포의 영화들은 '쉬워보이는' 영화들이었거든요. <피아니스트를 쏴라>, <400번의 구타>, <줄 앤 짐>, 그리고 <부드러운 살결>. 평론가들의 씨부림이야 어쨌든지간에, 적어도 이 영화들은 말초적인 수준의 재미를 느끼며 볼 수 있는 '쉬워보이는' 영화들이었습니다. 로메르의 영화가 그렇듯 말이죠. 근데도 전 왜 지레 겁을 먹고 보지 않았던 걸까요?

<부드러운 살결>은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적 명성과 전문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지식인이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억누를 수 없는 열정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지요. 당장에 생각나는 건 (이명세의 영화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지독한 사랑>인데, <부드러운 살결>은 <지독한 사랑>에서와 같은 애절함이랄까 간절함이 없군요. '불륜'의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고민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사회적인 부와 평판을 저버릴 것인가/버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일텐데, <부드러운 살결>의 피에르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적 평판에 흠집이 생길까 두려워 애인이 추행 비슷한 걸 당해도 그냥 쳐다만 볼 뿐이고, 아내에겐 끝끝내 사실을 고백하지 않는데다, 아내가 홧김에 내뱉은 "이혼해."라는 소리에  얼씨구나 하며 집을 나서는 종류의 인간입니다. '불륜'을 일종의 위기인 동시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열정 같은 걸로 해석하는 <지독한 사랑>이 당사자들의 안타깝고 불안한 감정을 감상적으로 묘사한 반면, <부드러운 살결>은 불륜을 매개로 부르주와 혹은 지식인 계급의 허위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인 듯 합니다. 때문에 애틋하다기 보다 그냥 추할 뿐이에요, <부드러운 살결>의 불륜은.

애틋함이 없는 대신 <부드러운 살결>의 불륜을 추동하는 것은 9할이 성욕처럼 보입니다. '베드씬 찍는 것은 끔찍하다'는 트뤼포의 말답게 베드씬은 한 컷도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는 꽤 에로틱한 분위기에요. 오프닝 크레딧을 비롯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페티쉬 때문일까요? 남자의 부인이 흐트러진 침대를 친구에게 보여주는 장면까지 등장하고 나면 <부드러운 살결>의 인물들이, 또 현실세계의 사람들이 상대에게 집착하고 쉽사리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잘 알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대사였던가요? 남자와 여자의 섹스는 접착제 같은 거라서 ...

<부드러운 살결>이 남부러울 것 없는 중년 남자의 섹스 스캔들이라는 심심한 이야기로만 기억되지 않은 건 역시 쇼킹한 결말 때문이겠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 프랑카의 얼굴에 살짝 나타나는 애매한 미소는 뭐 뻔하다면 뻔한 장면이지만, 꽤 인상적입니다. DVD에는 그 마지막 장면에 대해 트뤼포의 코멘터리(?)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주인공 역의 프랑소와 돌리악,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선 뭐 저렇게 생긴 여자가 주인공이야, 싶었는데, 자꾸 볼수록 매력적이군요. 볼륨은 부족하지만 몸매 또한 예술이구요. 허허...

기술적으로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후시녹음의 그 어색한 느낌은 때로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때때로 등장하는 감상적인 멜로디도 영화의 분위기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구요.

아... 글을 쓰다보니 <지독한 사랑>이 다시 보고 싶군요. 집에 비디오 테입 사다 놓은 거 있는데, 담번에 집에 내려가면 VTR로 다시 한 번 봐야겠네요. VTR이라니, 100년만인 거 같습니다.   (2006/06/27 01: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