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 The 반지의 제왕 ★★★☆
Directed by Peter Jackson
imdb

노바리님이던가가 이 영화 무슨 성에서의 전투씬을 캐네스 브레너의 <헨리 5세>에서의 전투씬에 버금가는 명장면이라 하셨더랬다. 굉장한 장면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수만의 개체들이 엉켜 베고 자빠지고 울부짓는 장면은 우선 그 압도적인 스케일 덕에 어떤 장엄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런 규모의 전투씬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일년을 기다린 수고로움에충분히 값한다. 하지만 그게 다다. 1편 때의 판단유보가 2편을 보고나선 확신으로 바뀌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조바심내며 기대했던 걸.작.의 등장은 <반지의 제왕>에 대해선 물건너간 바램이다. 덩치 큰 활극일 뿐이다.

톨킨의 원작을 읽지 않았다. 판타지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거창한 찬사에 주눅들지 말고 피터 잭슨의 영화만으로 평가해본다면, 대단할 게 없다. 대마왕의 손에서 니나를 구하기 위해 버섯돌이와 고군분투하는 <이상한 나라의 폴>의 공간이, 프로도와 간달프 패거리가 갖은 고생을 하는 <반지의 제왕>의 공간과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지 (양적 차이가 있다는 건 자명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아무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해도 절대악, 인간의 나약한 의지, 악의 대리인, 봉건적 세계관, 영웅사관 같은 코드들은 유치하거나 진부해보일 뿐이다. 주요인물들 중 누구도 죽지 않는 2편에선 하다못해 비장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웅본색>주윤발의 총질을 연상케하는 일당백의 내공은 일말의 리얼리티는 고사하고 보는 사람 어이없게 만들기 일쑤다. 하다못해 간달프의 백마까지 개폼잡기에 가담한다. 그 백마가 오버질하는 음악에 맞춰 등장하는 슬로우모션에선 주성치의 <도성>이 연상되더라. 웃자고 만든장면은 아닐텐데.

저런 흰소린 집어치우자. 시체 수천 구가 나뒹굴어도 내장 하나 보여주지 않는 피터 잭슨은 더이상 왕년의 고어제왕이 아니라는 실망 때문에 공연한 시비를 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어이없는 장면도 분명 있다. 사우론을 추종하는 어떤 종족이 코끼리 몇마리를 이끌고 진군하는 걸 어떤 기마병들이 습격하는 장면이 있었다. 인간이나 요정이나 하나같이 백인뿐인 <반지의 제왕>의 세계에서 유독 그 악의 무리만이 아랍인의 형상이다. 저런 부시적인 상상력이 피터 잭슨 자신의 것인지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던 톨킨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같은 톨킨'안'매니아에겐 개수작으로 보일 뿐이다.

대사있는 유색인종이 하나도 안나와도 난 우디 알렌의 팬이다. 유치뽕짝이래도 열라 재밌기 때문에 내년에도 <반지의 제왕>을 볼 것이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피터 잭슨의 영화이고 톨킨의 작품이라면 이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2003·01·14 2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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