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wling for Columbine 볼링 포 콜럼바인 ★★★

Directed by Michael Moore
imdb    듀나

이 영화가 친절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정신나간 나라'라는 미국관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머릿속에 갖고 있었다. 히스테릭한 패닉과 전체주의적 애국주의에 휩쌓여 최소한의 이성마저 상실하기 전에도, 미국이라는 깡패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다른나라에 저지르고 다니는 일들은 미국을 미친나라로 규정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미국은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쇼킹했는지 모르겠지만, 군수산업과 미디어, 정치권에 의해 확대재생산되는 공포, 피로 점철된 미국사, 미국이 약소국에 저지르는 학살 같은 건 무척 익숙한 얘기다. 적어도 미국의 핵전쟁 협박에 그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극동의 힙없는 나라의 국민들에겐 말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단지 최소한의 관심만으로도 진작에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거나 대중매체가 조장하는 환상에 놀아나 속아왔던 사람들에게 미국이라는 사회의 광기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는 점일 것이다.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자기모순'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한편 이 영화는 때때로 억지스런 연출로 다큐로서의 진정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특히 찰튼 헤스턴의 집 현관에 총기사고로 죽은 6살난 여자아이의 사진을 놔두고 오는 장면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진부했다. 마치 이라크에서 교전중에 죽은 자식의 사진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미국 엄마를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방법론 아닌가? 프로파겐다를 전파하는 보다 세련된 방식이 없지 않을텐데, 뭣때문에 그런 노골적인 방식으로 총기애호가에 대한 총기비애호가의 분노를 증폭시키거나 조장하려 한 것일까? 심증만으로 무리해서 말한다면 마이클 무어는 자신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인지 신랄한 척하는 코미디의 광대인지 헷갈리는 듯하다.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의 맨텔러티와 그에 미친 사회의 영향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희생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 눈엔) 과장되어 보이는 위로의 말을 던지는 감독의 자기과시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WGA은 이 영화에 다큐멘터리에 대해선 처음으로 각본상을 주었다고 한다. 다큐가 각본상이라니, 뭔가 수상한 조합 아닌가?

무엇보다 눈에 거슬리거나 한심해보이는 건 찰튼 헤스턴을 몰아부치는 마지막 장면이다. 찰튼 헤스턴은 총이 있어야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단지 멍청할 뿐인 백인일지도 모른다. 마틴 루터 킹과 행진을 같이 하며 민권운동가로도 활동했다던 그를, 6살 여아의 총기사고 직후 그 도시에서 총기소유찬성 집회를 열만큼 파렴치한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차라리 비열에 가까운 횡포다. 그는 정말 그런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는지 나중에야 알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이클 무어가 좀 더 용기가 있었거나 보다 정직하게 (효과적으로가 아니라) 총기를 둘러싼 미국인의 광기를 고발하고 싶었으면, 찰튼 헤스턴이 아니라 로키드 마틴사의 회장이나 총기소유억제를 적극 반대하는 정치가나 하다못해 거대 미디어 그룹 임원과의 인터뷰로 영화를 끝마쳤어야 했다. 마이클 무어의 방법론은 '위험한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확대재생산한다며 그 자신이 비난해마지 않는 < COPS > 라는 TV 프로그램 제작자와 다를 바 없다. 8백억달러를 횡령한 거물보다 80달러 소매치기를 검거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편이 더 제작가능성이 있으며 TV쇼로서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그 TV제작자처럼, 마이클 무어는 왕년의 인기스타를 닥달하는 편이 이름도 몇번 들어본 적없는 세계 최대 무기제작 그룹의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편보다 훨씬 현실성있고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나보다. 하긴 마이클 무어의 전작 < Roger and Me > 에서 하소연한대로 거대 그룹의 회장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었을테다. 하지만 이건 파병을 찬성하는 자유시민연합 소속 戰前세대에게 당신이 도대체 인간이냐며 몸싸움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정작 따져야할 곳이 아니라 손쉬운 상대니까 붙잡고 늘어지겠다는 시도는 고작 멍청할 뿐이라는 잘못에 대해선 가혹하다 할만한 처사일 뿐만 아니라 거의 무의미하다. 게다가 마이클 무어가 찰튼 헤스턴을 타겟으로 삼은 건 단지 컨택이 쉽기 때문 이상의 영악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마쵸한 이미지의 노쇠한 백인 영화배우라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여러모로 갖추고 있지 않은가?

뭐 어쨌거나 좋다. 미국은 정신나간 나라,라는 고백을 미국인 입으로 듣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누가 물어오면 나는 한동안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
2003·05·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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