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보이 ★★★☆
감독 : 박찬욱
naver

영화 내용에 감정이입이 엄청 잘 되는 저는, 영화속 캐릭터가 너무 싫어 그 영화 자체가 싫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라는 캐릭터가 너무 맘에 안들어서 그 영화까지 싫어졌지요. 이런 상황은 달리 생각해보면 그 영화의 캐릭터라이징이 그만큼 성공적이라는 얘기도 될 수 있으니까 오히려 그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일 수 도 있습니다. 박찬욱의 다섯번째 영화 <올드 보이>도 그런 영화입니다. 유지태가 맡은 '이우진'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짜증나서 이 영화 자체가 짜증나는 형국입니다.

이우진이 불쌍하십니까? 제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박찬욱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는 일방적인 피해자나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올드 보이>의 이우진은 일방적인 가해자이고 오대수(최민식)는 일방적인 피해자입니다. 이우진의 분노가 향해야 할 진정한 대상은 금기된 사랑에 빠지고 만 자신의 운명이거나,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갈 용기가 없어 자신의 누이의 자살을 방조한 그 자신의 나약함입니다. 저는 심지어 우진이 그의 누이를 진정 사랑했을까도 의심스럽습니다. 자신의 주체못할 욕정이 동생이자 자식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을 돕다니, 그게 사랑일까요?

오대수는 그가 치른 감금과 잔인한 복수에 걸맞게 큰 잘못을 저지렀을까요?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지만 그런 결과가 생긴 가장 큰 책임은 아무데서나 애정행위를 하던 두 남매의 무분별함과 그 결과를 책임지지 못할 만큼 뜨뜻미지근한 그들의 사랑에 있습니다. 그런 치명적인 결과는 오대수가 의도한 바가 전혀 아니었으며 기껏해야 '실수'일 뿐입니다. 이우진의 비열한 책임회피는 오대수와 그 최면술사와의 관계와 뚜렷한 대비를 이룹니다. 그 최면술사는 오대수의 또다른 원수임에 분명합니다.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오대수를 그의 친딸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 최면술사와 다시 대면한 마지막 씬에서 최면술사에게 아무런 억하심정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게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는 장면이었습니다만,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 그 최면술사에게 복수를 행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윤리관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 최면술사는 분명 자기가 본 것을 친한 친구에게 말한 오대수보다 더 나쁜 의도-그것이 돈이든 뭐든간에-를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잖아요? 그렇지만 오대수는 그녀에게 복수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설정 중 하나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부녀지간이라는 것을 미도가 결국 알게 되었다면 오대수는 그녀에게 복수했을까요? 감독이 어떤 의도로 오대수의 복수심이 그 최면술사를 벗어나도록 설정했는지 이해가지 않습니다만, 여튼 바로 그 지점에서 오대수와 이우진의 차이가 분명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쏟아지는 극찬들을 전혀 이해못할 것도 없지만, 그런 극찬들은 이 영화 자체처럼 오버인것 같습니다. 침이 마르게 칭찬해대는 최민식의 연기도 사실 굉장히 오버로 일관하고 있는 듯합니다. 유지태의 그 뻣뻣한 연기는 말할 것도 없구요. 영화의 설정에도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이우진이 극중에서 직접 말하듯이 '아무리 최면술에 대한 감도?가 뛰어나다고 해도 최면만으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무척 어거지 같습니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게 만들고 싶지만 개연성있는 방식을 구성해 내기 힘드니까 저런 얼토당토않은 설정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이한 태도지요. 또 미도의 정체에 대한 반전을 준비하면서 그녀의 정체에 대해 감독이 거짓된 정보를 흘린 것은 이 영화를 일종의 미스테리로 취급하는데 있어 가장 치명적인 결점이 됩니다. 관객이 미도가 딸이라는 사실을 반.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앞서 어떤 아줌마가 '딸이 외국으로 입양된지 오래되서 한국말을 거의 잊었다'는 식으로 거짓을 말하게 하면 안됩니다. 앞에선 아니래놓고 뒤에 가선 실은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사기일 뿐이죠.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의 그 강렬한 인상은 일정 부분 잔인한 비주얼에 힘입었습니다. 경동맥에서 분수처럼 치솟는 핏줄기와 끊어지는 아킬레스 건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영화는 <복수의 나의 것> 못지 않게 잔인한 설정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걸 충분히 시각화하지 않습니다. 오대수가 혀를 자르는 장면처럼 말입니다. 전작의 흥행실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까요? 여튼 박찬욱 영화인데 왜 저 정도밖에 보여주지 않지? 실망스러웠습니다.

여튼 이 영화가 감독의 취향대로 B급의 감수성으로 무장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충무로 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시도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영화자체는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안되는 부분도 있고 안이한 설정도 보입니다. 뭣보다 <복수는 나의 것> 전체를 휘감던 그 처절함, 죄없는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운명의 잔임함 같은 것들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우진의 짓거리는 정말 삶이 무료해서 - '이젠 무슨 낙으로 살지'- 저지른 것처럼 느껴지고, 오대수가 그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해 느끼는 슬픔은 그 어처구니없는 설정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타겟을 잘못 설정한 치졸한 복수로 잔인한 운명에 저항하는 처절함을 묘사하는데 더욱 솔직하거나 혹은 더욱 제 취향에 맞으려면 이런 결말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우진은 미도에게 오대수가 아버지임을 밝힌 후 오대수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복수의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그렇듯이 성공한 복수에 만족해하며 다시 자신의 삶을 추스립니다. 부잣집 아들로서의 행복한 삶을 말이죠. 미도는 반쯤 미쳐서 그 최면술사를 살해하고 뭐 가능하다면 이우진에게도...   (2003·11·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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