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 of the Dead 랜드 오브 데드 ★★★
Directed by George A. Rom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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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진공에 실린 글입니다. ]

< Day of the Dead 시체들의 날 > 에서 충분히 예상된 바이지만, 드디어 좀비들은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가 가능해지고 감정도 갖게 됩니다. 변함없이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이 정도로 진화했으면, 이제 인류의 멸망은 시간문제입니다. 인류가 멸망하면 좀비들은 뭘 먹고 살게 될까요? 좀비들이 조금 더 진화해서 '희소성의 원칙'을 깨우치게 된다면, 그래서 인류가 지구에 저질렀던 자멸적 자원 남용을 하지 않는다면, 오래오래 생존해 나갈 수 있겠지요. 인간을 사육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좀비의 수도 통제하고, 먹이를 조금 먹다 버리는 식의 낭비를 조절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하드고어버전의 <매트릭스>가 되겠군요.

좀비영화의 지존답게 조지 로메로의 좀비 시리즈 네번째 편은, 변함없이 신랄한 비판정신과 화끈한 고어씬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사회가 저렇게 쫄땅 망해버렸는데도 돈이 위력을 발휘할까, 싶은게 설정상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나름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라 생각하면 못 받아들일 것도 없지요. 뭣보다 조지 로메로님의 영화인데, 그런 설정이 단순히 구색맞추기용은 아닌게 분명하잖아요. 불경한 의혹은 금물. 허허... 요새야 고어씬이 널리고 널렸지만, <랜드 오브 데드>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신나는 고어씬도 다량 선보이고 있습니다. 예전-이라봐야 2,3년 전이지만-이라면 꿈도 못 꿀 갖가지 찢어발기고 뜯어먹고 어쩌고 하는 장면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군요.

하지만 썩 재밌는 영화이긴 하지만 시리즈의 前편들과 비교하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뭣보다 인간애에 충실한 주인공은 영 적응하기 힘들군요. 어린딸이 어미의 살을 뜯어먹던 1편의 과격함과 비정함은 사라지고, 타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정의의 사도이 등장합니다. 조지 로메로님이 나이를 드셔서 그런 걸까요, 1800만 달러의 제작비 회수의 압력 때문이었을까요? 여튼 이 무슨 영화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어설픈 휴머니즘 혹은 헐리우드식 영웅만들기란 말입니까?

물론 <레지던트 이블>같은 것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감독 이름에 대한 기대에 비해선 좀 실망스런 영화였습니다.   (2005·11·15 00:07)

ワイルド・フラワーズ 와일드 플라워즈 ★★★☆

jmdb    naver

마땅히 볼 영화가 없어서 고른 영화였는데, 무척 재밌었습니다.

여자프로레스링이란 건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 여자프로레스링이 얼마나 인기가 시들해졌는지, 그런 내막은 알 수 없습니다만, 여튼 영화는 한물간 어떤 것의 가치를 지키며 열심히 땀을 흘리는 인간들의 이야기,라는 성실하지만 심심한 얘기로 시작됩니다. 스포츠 영화의 클리쉐도 서슴지 않고 있구요. 어쨌거나 재밌으니까 그걸로 됐다...

아... 저렇게 이쁘고 '강한' 언니들이 저렇게 귀여운 옷을 입고 몸사리지 않고 열심히 경기를 핟다면, 나라도 팬이 될텐데... 여튼 매력만빵의 강하고 이쁜 언니들이 주루룩 나옵니다. 위 사진 속 오른쪽 언니, 복근이 장난이 아닌데 얼굴은 귀여워요. 아... 앞으로 제 이상형은 강하고 날씬한 여자.

드라마에서 재수없는 엘리트로 등장하던 오카다 요시노리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이거, dvd로 안 나오려나... 일본여자프로레스링 팬, 꽤 생길거 같은데...  (2005·11·14 23:51)



와일드 플라워즈 (Wild Flowers)      

감독 : 고마츠 타카시 / 2004 / 127분 / 칼라
프로듀서 : 에노모토 노리오
원작 : EN
각본 : EN
촬영 : 사카에 마사아키 
음악 : 엔도 코지 
제작 : 「와일드 플라워즈」제작위원회
배급 : 도쿄 테아토르, 자나도
출연 : 오카다 요시노리, 이시카와 미즈호, 스즈키 미키, 다카하타 쥰코, 마로 아카지 
 

시놉시스

80년대 피아 필름페스티벌에 입선하고 그 상금으로 만든 16mm작품 『버스』가 일반에 공개된 고마츠 타카시. 극장용 영화로 진출한 90년대에 만들어 온 프로그램 픽쳐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 망하기 일보직전의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 죽은 사장의 유언으로,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사장자리를 물려받은 레지던트 의사인 아들 신이치(오카다 요시노리)가 남겨진 여자 프로레슬러들과 함께 단체의 존속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고 있다.  

美加マドカ:指を濡らす女 스트립댄서, 손가락을 적시는 여자 ★★
j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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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가 주최한 제2회 일본영화제 상영작 중 하나입니다.

제목은 정말 잘 짓죠. 로망포르노. 가령 <도레미파시도, 소녀의 피가 끓는다> 제목만 봐도 영화고 보고 싶어 피가 끓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면 언제나 실망. 뭔가 대단한 예술적 비젼이라도 갖고 있는 듯, 어이없게 소개되는 바람에 잔뜩 긴장/기대를 하고 보지만, 결국 그저 골때리는 에로영화였던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로망포르노.

<스트립댄서...>의 초반부도 <고도를 기다리며>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인물들이 알듯말듯한 소리를 지껄여대지만,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소리였어요. 기냥 불굴의 꼴림과 스트립퍼다운 정서불안에 내뱉는 헛소리들.

영화의 거지같은 완성도와 별개로, 도에 지나치는 영아학대는 무척 불쾌했습니다. 틈만 나면 섹스해대는 것들 옆에 아기를 눕혀둔 것도 기분나쁜데, 심지어 아기의 목을 조르거나 울부짓는 아이를 마구 흔드는 장면도 나옵니다. 저런 것들은 감옥에 가둬야 되는건데, 나쁜 새끼들.

여튼 거지같은 영화.  (2005·11·14 23:44 )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스트립댄서 손가락을 적시는 여자      

감독 : 구마시로 타츠미 / 1984 / 89분 / 칼라
프로듀서 : 미우라 아키라
원작 : 요시카와 료
각본 : 사이토 히로시, 구마시로 타츠미
촬영 : 노다 요시오
음악 : 이시마 히데키, 시노하라 노부히코
제작 : 닛카츠
배급 : 닛카츠
출연 : 미카 마도카, 나이토 타카시, 시미즈 키리코, 아소 우사기, 히로타 유키오


시놉시스

닛카츠 로망포르노를 그 탄생부터 이끌어 온 귀재 구마시로 타츠미의 원숙기 작품. 당시 실제 스트립 댄서로서 인기를 얻고 있던 미카 마도카를 주연으로 발탁, 영화의 타이틀에도 그 무대명이 반영되어 있다. 미카 마도카의 역할은 실제와 마찬가지로 스트립 댄서로, 두사람의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를 연기하고 있다. 순회공연이 많은 미남 연극배우인 연인과 그의 부재중에 그녀를 대신 돌보아 주는 친구로 그녀의 열렬한 팬인 남자. 육체성과 정신성의 틈새에서 미묘한 진폭이 생겨난다.


ハウルの動く城 하울의 움직이는 성 ★★★☆
감독 : 宮崎駿
naver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에서 내러티브는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지 않지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역시 마찬기지입니다만, 후반부에 가면 정도가 심해지는군요. 하울이 '괴물'이 되어버린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은데, 그 환상적인 분위기와는 별개로, 무슨 사연인지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좀 불친절한 설명이 아닌가 싶어요.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환경보호이나 반전처럼, 현실적 맥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해왔고 나름의 설득력도 있었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경우에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군요.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되는 폭격씬 등은 사람이 죽거나 하는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습니다만, 충분히 공포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 수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셜리만이라는 마법사나 국왕에 대한 묘사는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군요. 하긴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절대악이 등장한 경우도 거의 없긴 하군요. 하지만 전쟁은 나쁜 것이지만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설정은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지요. <하울...>의 전쟁이, 그리고 현실속의 전쟁이, 가령 <모노노케 히메>에서 광산촌의 인간과 산의 여러 신들 사이처럼 나름의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호한 메시지 대신 <하울...>은 연령이나 외모, 그밖의 여러 역경을 극복하고 이루어지는 낭만적 사랑을 완성하기에 열을 올립니다. 전쟁이라는 절멸적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연인의 안위에만 목을 매는 괴물-할머니, 이 이상한 커플의 사랑은 일견 감동적인 면도 없진 않지만,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습니다. 전쟁은 단지 사랑의 완성을 방해하는 역경일 뿐, 어떤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지 않고 있습니다. <하울>에서 반전의 메시지를 찾는다는 행위 자체가 겸연쩍어질 정도.

사랑에 목매는 캐릭터다보니 <하울>의 소피는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 중 가장 평면적입니다. 하야오의 히로인답게 의지가 강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하울'을 구원해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야오의 히로인에게 기대하는 바는 문명사적 비젼을 가진 메시아 쯤이지 않았던가요?

여튼, <하울>은, 뭐라 평가내리기 힘든 <붉은 돼지>나 <마녀배달부 키키>를 제외하곤, 가장 실망인 애니메이션입니다. 하야오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겠지만요.   (2005·11·14 23:06)

http://imdb.com/title/tt0338013/

[ 제가 쓴 기사가 무비스트에 실렸습니다. 아... 이 영화, 벌써 두 번째 울궈먹고 있네요. 변변치 않은 글이라, 경희 기자님한테 미안... 아래 글은 송고한 원본이고, 무비스트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글 중 앞부분은 경희 기자님이 덧붙이신 거랍니다.]

애인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과 심하게 다툰 후 조엘(짐 캐리 분)은 그녀가 '라 쿠나'라는 회사가 제공하는 ‘기억삭제’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수면 중 뇌에 자극을 주어 특정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억삭제’를 통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전부 지워버린 거지요. 조엘도 홧김에 동일한 치료를 받기로 하지만 ‘기억삭제’가 클레멘타인과의 씁쓸한 기억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까지 삭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그녀와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꿈’ 속에서 동분서주하는데...

자아(self)는 기억입니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자아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버리게 되고, 기억이 조작된다면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자아로 변하게 되지요. 때문에 ‘잃어버린 기억’은 <토탈 리콜>처럼 철학적 무게감을 갖는 SF나, <메멘토>처럼 기억 상실 이전의 진실을 찾아가는 스릴러에서 즐겨 이용되는 소재입니다. 로맨스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불의의 교통사고 혹은 그에 버금가는 뇌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옛사랑을 기억 못하는 슬픈 사연들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질리도록 보아왔습니다. 코미디의 감각이 아니라면 정색을 한 로맨스에 사용하기엔 민망할 만큼 진부한 클리쉐지요.

이렇듯 닳고 닳은 설정을 반복하면서도 <이터널 선샤인>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 중 하나는 ‘기억상실’ 이후의 소동이 아니라, 그 이전의 과정, 즉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억상실 이‘후’의 영화에서 옛사랑은, 직소퍼즐의 피스 하나처럼, 과거라는 전체의 기억을 짜 맞추기 위한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기억상실 이‘전’의 영화에서 지금 사라져버리고 있는 목전의 사랑은 전존재를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지상의 목표입니다. ‘기억과 함께 옛사랑을 잃어버렸지만 결국 되찾았다’는 동일한 과정이, 전자에서 추적과 성취의 드라마로 묘사된다면, 후자에서는 상실과 회한 끝에 뒤늦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으로 묘사되지요. 전자가 추리극이라면 후자는 심리극인 셈입니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쓸쓸하고 안타까운 정조가 느껴지는 이유도, 소중하지만 지켜낼 수 없는, (사라져버린 기억이 아니라) 지금 사라져가는 기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과거의 사랑이라면, 다른 영화나 드라마가 그러하듯, 흔히 새로운 사랑으로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 기억상실 후의 그/그녀는 과거와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의 사랑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설령 과거의 연인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해도 그건 우연의 결과일 뿐, 이전 사랑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은 ‘선택적 기억삭제술’이라는 가상의 기술을 통해,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옛사랑에 대한 기억만 잃어버렸다는 설정을 가능케 합니다. 영화에서 ‘기억삭제’ 치료를 성공적으로 받은 세 명의 연인들은 다시 동일한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게 되구요. 모든 상황이 사랑이 시작되기 이전으로 되돌려졌는데도, 동일한 사람들이 동일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설정은, ‘진정한 사랑은 운명으로 맺어지므로 어떤 역경이 있어도 영원히 지속된다’는, 낭만적 애정관을 피력합니다. 동양적 전통에서라면 <은행나무침대>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처럼 ‘환생’의 형태로 제시될 수도 있겠지요.

사랑의 운명성/영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터널 선샤인>은 여러 ‘한계 사례’를 시험합니다. 가령 패트릭(일라이저 우드 분)은 조엘이 사용한 언어와 선물을 클레멘타인에게 그대로 반복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얻는 데 실패하지요. 기억삭제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무의식속에 남겨져 있던 그녀의 ‘속삭임’은 조엘과 클레멘타인을 다시 재회하게 만들구요. 이쯤 되면, 사랑이란 동일한 과정이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는 결정론적 과정이 아니라, 운명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예정론적 과정이며, 과학의 힘으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신비로운 결합이라는, 지독히 낭만적인 애정관과 조우하게 됩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이런 낭만적 성격은, 각본가와 감독의 이력에 비추어 보면 다소 의외입니다. 인간의 정체성과 인식론에 관한 지적이고 난해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찰리 카프먼과 CF와 뮤직비디오 신에서 테크니션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미셸 곤드리의 조합이 생산할 거라 예상한 로맨스로서는 너무 낭만적입니다. 성격도 취향도 전혀 다른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계속되는’ 사랑에 순순히 납득할만한 나이브한 관객도 그다지 없을 거에요. 가령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친한 친구라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게 뻔한 그들의 재결합을 말릴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반쯤은 시대착오적인 지나친 낭만성에도 불구하고,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헤어짐과 재결합이 관객에게 깊은 정서적 공명을 일으키는 것은, 사랑의 영속성과 절대성을 믿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심리에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터널 선샤인>이 해외의 관객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겠지요.

낭만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터널 선샤인>는 어쩔 수 없이 찰리 카프먼과 미셸 곤드리의 색깔이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우선 뇌와 자아에 대한 관심부터가 그러하거니와 역전된 시간구조 역시 흥미롭습니다. 영화의 태반이 꿈속에서 진행되는 탓에 CG를 최대한 배제하였지만 영화는 때로 기괴할만큼 무척 환상적입니다. 전혀 다른 배우인 듯,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는 짐 캐리와 불안정하고 즉흥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매력적인 클레멘타인을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언제나처럼 훌륭합니다.

국내개봉이 늦춰지며 많은 영화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이터널 선샤인>은 오랜 기다림에 충분히 값하는 뛰어난 영화입니다. 쓸쓸하고 안타깝고 기괴하고 환상적이며 동시에 코끝 찡해지는, 이 모든 게 가능한 영화, 드물죠. 지금의 사랑에 희열을 느끼려는 관객이나, 과거의 사랑의 반추하려는 관객, 각본가나 감독에 관심을 갖고 극장을 찾는 관객 모두 만족할 만한 영화입니다.   (2005·11·09 21:34)

Cidade de Deus 시티 오브 갓 ★★★☆
Directed by Fernando Meirelles & Kátia L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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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있을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전 대단한 걸작쯤 된다고 찬사를 받는 '깡패영화'들, 그게 왜 걸작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대부>만 해도 그래요. 마피아와 정치권 뭐 그딴 밀월을 들춰낸 '고발'적 성격이 있었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뭐 그거 모르는 사람 있나.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만 해도 그래요. 그냥 동네 양아치새끼들이 여차저차해서 돈숨기고 정치가 되고 그딴 얘기일 뿐이잖아요? 그 영화들의 어느 부분이 대단한 걸까,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소문이 자자했던 <시티 오브 갓>도 그렇습니다. 깡패새끼들이 좀 더 저연령화되고 좀 더 강도높은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 이외의 무슨 의미가 있는 영화일까요? 이 영화가 브라질의 부실한 치안상태 같은 것을 고발하고 있다는 '고발'적 성격을 고려해도 의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배경은 6,70년대입니다. '시티 오브 갓(빈민촌 이름입니다)'은 지금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잡지 등을 통해서 본 감독의 설명이지만, 어쨌든 과거의 이야기지요. '고발'의 대상인 경악할만한 치안상태도 액션활극의 배경으로만 등장한다는 의혹을 접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정치적 불공정성을 성토했던 <맨 온 더 파이어>와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어차피 별 의미없는 총쌈질일 뿐인데, 자국민이 묘사하든 미국놈이 묘사하든 뭔 차이 있나요?

가장 어이없는 건 '베니'에 대한 묘사입니다. 소위 '건달'이지요. 씨발, 마약팔고 총싸대면 다 쓰레기지 무슨 얼어죽을 건달이냔 말이에요. '베니'가 총맞아 죽자, 영역권 다툼으로 베니 패거리와 맞서고 있던 상대편 깡패새끼들의 두목은 "가장 멋진 건달을 죽였다"쯤의 조까는 소리를 해댑니다. 이거 뭐 <친구>에서 장동건 죽을 때 나오던 웅장음악같은 짓거리군요.

뭐, 액션영화로서 재밌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열살도 안된 것들이, 가마솥을 피해 도망가는 닭을 잡겠다고 총을 쏴대는 정신나간 영화, 애가 애를 쏘아 죽이는 금기없는 영화, 재밌지 않을 턱이 없지요.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대단한 영화, 아니에요. 제발 '시네마 누보'같은 택도 없는 소리 운운하며 '없는 의미' 만들어 내지 말아주세요.    (2005·11·09 21:31)

幻の光 환상의 빛 ★★★☆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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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편 보지 않았지만,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본 영화는 역시 <아무도 모른다>였죠.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세계적 거장이 고작 4편 밖에 장편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은 의외랄까요... 하나같이 재밌는 영화였지만, 제 경우 역시 베스트는 <死後 원더풀 라이프>. 음... 그래서 뭐 어쩌라구...

진작부터 봐야지봐야지 하며 2년여를 뻐팅겨온(?) 그의 장편 데뷔작 <幻の光 환상의 빛>을 지난주에야 보았습니다. 갑자기 '봐야겠다' 맘먹게 된 건, 뒤늦게나마 이 영화에 아사노 타다노부씨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되어서죠. 아, 아사나 타다노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에요. 타다노부가 저한테 결혼하자고 하면 결혼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_-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난하지만 금슬좋은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3개월된 아들도 있구요. 다른날과 변함없던 어느 평온한 날 오후,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남편은 비가 올 것 같아서 잠깐 들렀다면서 우산을 챙겨가지곤 집을 나섭니다. 배웅하는 아내를 뒤돌아보지도 않고-그렇다고 도망간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고, 그냥 무심하게-걸어갑니다. 그리곤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죠. 실의에 빠져 몇 개월을 보낸 아내는, 동네 아주머니의 소개로 선을 보고 재혼을 합니다. 어느 시골 어촌마을에서 신혼생활을 하게 된 그녀는 곧 그 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다시금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아사노 타다노부의 얼굴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카메라에 등을 돌리고 있는 장면도 자주 나오구요, 영화 초반에 자살해 버립니다. 실루엣도 희미하고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 속에서 그의 존재감은 전혀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젠 완전히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생각나는 그런 옛사랑 같은 게 있지 않나요? 알고 보니, 난 그/그녀의 기억을 단 한 번도 잊고 살았던 적이 없다는 걸 갑자기 깨닫고, 이 질긴 집착에 섬뜩해지는 느낌...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유없이 죽은 남편의 기억은 애틋하다기보다 떠나지 않고 항상 주위을 떠도는 망령처럼 섬뜩한 느낌입니다. 쉽게 찾아온 마음의 평화와 육체의 행복-놀랍게도 섹스씬 비슷한 것도 나옵니다. 그 씬에서 아내는 새남편의 육체에 만족해 하고 있구요-의 순간에도, 이 행복이 죽은 남편의 기억 때문에 언제든지 깨어져 버릴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죽음'이 남겨진 자에게 지우는 무게감과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하는 남겨진 자의 과제라는 묵직한 주제를, <환상의 빛>은 심심할만큼 평온하고 단순한 이야기에 담아 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삶의 한 국면으로서의 죽음을 <도쿄 이야기>에서처럼 '달관' 정도로 받아들인다기 보다, 삶에서 맞닥뜨린,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어떤 '신비'나 수수께기처럼 '포기'하고 마는 듯한 인상이긴 하지만요. 감독의 나이도 적고 하니까 그 정도만으로도 납득할만하지 않나요? 뭐랄까, 성장영화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죠.

고정된 카메라나 뜬금없이 삽입되는 자연의 풍광 등이 오즈 야스지로를 연상케 한다면, 롱 테이크은 후 샤오시엔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술적 야망이 큰 영화이고, 동시대의 다른 일본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뛰어난 데뷔작이라는 건 알겠지만, 뭐랄까요, 재능있는 모범생의 착실한 답안같다고나 할까요? 재밌는 영화고 명성에 값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뭔가 데뷔작다운 임팩트가 부족하군요. 전 역시 <사후>나 <아무도 모른다> 쪽이 더 맘에 듭니다.

미국판 DVD 커버아트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군요.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센스일까요?   (2005·10·09 12:13)


Heaven's Gate 천국의 문 ★★★☆
Directed by Michael Ci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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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포럼에서 열린 <70년대 미국영화 특선> 중 한 편으로 보았습니다. <스트로 독>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는데, 벌써 끝나버렸군요.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제작사를 파산위기로 몰아간) '재난'영화이자, 소위 '저주받은 걸작'의 대표적인 예처럼 말하여지는 영화죠. 글쎄요... 그렇게 홀랑 망해버릴 만큼 엉망인 영화는 아니지만, 꼬라지를 보라죠, 안 망하게 생겼나. 게다가 이런 영화에 무관심했던 당시 대중들의 천박한 취향을 한탄할만큼 어마어마한 걸작도 아닌 거 같구요.

영화는 배경은 1890년대 와이오밍주. 적법한 절차에 따라 토지를 구매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몰려던 이민자들과 거대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거대 농장의 농장주들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농장주는 자신의 가축을 훔쳤다는 등의 사소한 죄질의 이민자 150여명을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으로부터 얻어내고 50여명의 용병을 고용해 이주민 마을을 습격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네요. Ella Watson(이자벨 위뻬르 분)와 Nathan D. Champion(크리스토퍼 워큰 분)도 실존인물이라고 하구요.

마이클 치미노가 무엇을 노리고 이 영화를 만들었나 하는 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입니다. 웨스턴이란 장르를 탈신화하면서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미국식 정의의 야만성과 부도덕성 같은 것도 비판하려는 거겠지요. 이런 식의 접근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퍽 흥미롭게 읽힙니다. 자기 소를 훔쳐갔다고 사람에게 총을 쏘아대는 농장주 계급, 더 나가, 자본논리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오늘날도 변함없거니와, 이 영화에서 그러한 것처럼, 그런 비인간적인 논리가 정의라느니 법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강제되고 있잖아요. 심지어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도 말이죠.

웨스턴 장르와 미국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들려주고 있지만, 역시 문제는 이 빌어먹을 상영시간이겠지요. 219분(어제 본 건 오리지널 컷이었어요.)이라니, 다른 영화 2편의 길이는 족히 되잖아요. 제가 본 가장 긴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로 222분이었고, 
장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가 220분짜리였군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도 201분이었습니다. 수십만의 병사가 칼부림하는 영화도 아니고, 고작(?)  2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총질해대는 영화인데도 3시간 40분이라니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그 3시간 40분을 뭔가로 충실히 채워놓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가령 영화 도입부 30분 정도 계속되는 하버드대 졸업식 씬은, 고작 '세상은 질서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니까 급작스런 변화는 필요없다'는 반어적인 연설을 위해 할당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지요. 나름의 스펙터클함도 있지만, 마지막 전쟁씬만으로도 일반적인 영화 전체 러닝타임의 반 정도는 될 길이구요. 보고 있으면 '편집 좀!'이라는 말을 내뱉고 싶어 답답해질 지경이에요.

그렇다고 이 영화가 초지일관 자아도취에 시간낭비만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등장하는 이주민들의 댄스 장면이라든가, 엘라와 James Averill(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분)의 한가로운 피크닉 장면 같은 것들은 평화로운 마을, 다가오는 위험 같은 설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좀 더 빠른 템포로 진행될 수도 있었겠지만, 4시간 육박 영화니까, 라는 식으로 느긋한 자세로 본다면 꽤 서정적인 장면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살육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이주민들의 절망과 절규를 잡아낸 그 긴 씨퀀스는 <천국의 문> 의 긴 상영시간 덕분에 더 정서적 파급력을 갖는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작비가 4천만 달러 정도 들었다던데(이 영화는 198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과연 그 정도 들었겠구나, 싶은 장면들이 종종 나옵니다. 제임스가 마을에 되돌아 왔을 때 맞닥뜨리는 이주민의 행렬과 소란스런 역마을의 방대한 세트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엘라 역이 이자벨 위뻬르라고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나 오종의 <8 여인들>에 나온 여배우지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우시지만, 홀랑 벗고 깡총깡총 뛰어다니시는 27살의 위뻬르 여사는 무척 귀여우신데다가 졸라게 섹시하십니다. 지금의 삐쩍고른 체형과는 달리 상당한 글래머라 보는 내내 긴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워큰의 카리스마는 80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더군요. 벽지랍시고 신문지를 발라놓고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무척 귀여웠습니다만... 주인공 중 한 명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유명한 컨트리 가수기도 하죠. 저는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 Billy the Kid>나 <가르시아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같은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근엔 <블레이드> 시리즈에서 웨슬리 스나입스의 조력자 할아버지로 출연했었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연기한 제임스 역은 처음엔 존 웨인이 물랑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 재수없는 마쵸가 안하게 되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 제프 브리지스도 조역으로 나오구요. 그리고... 미키 루크가 아주 작은 비중의 배역으로 출연합니다. 이 영화 찍을 당시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을 거에요. <보디 히트>나 <럼블 피쉬> 찍기 전이었거든요. 뽀얀 피부에 촉촉한 눈망울의 24살 적 미키 루크를 보고 있자니 無常함에 가슴이 아려오는군요.

이자벨 위뻬르, 화는 나지만 전혀 미워할 수도 없는, 곤란하게 매력적인 캐릭터 엘라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제임스와 챔피온 두 사람을 모두 사랑할 뿐만 아니라, 창녀로서도 열심히 일하고 계시죠. 제임스가 엘라가 챔피온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내자, I never cheated on you. I always made Nate pay.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합니다. 저걸 그냥 확...

이주민 마을의 댄스 파티나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건물의 벽에 'Heaven's Gate'라고 적혀있더군요. 그래서 제목이 Heaven's Gate일까요...?   (2005·10·09 09:55 )

Blood Work 블러드 워크 ★★★☆
Directed by Clint Eastwood
imdb    naver 

단 한번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은 감독이 있습니까? 제 경우, 히치콕의 <토파즈>는 그 정치적 불공정함에 불쾌감이 일었던 황당한 첩보물이었고, 우디 알렌의 <애니씽 엘쓰>도 시시할 뿐인 영화였으며, 코엔 형제마저 <레이디 킬러>같은 썰렁한 영화로 실망시켰드랬죠. 심지어 프랭크 카프라마저 <잃어버린 지평선>같은, 저에게는 무척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었구요. 아, 물론 제게 재미없었다고 그 영화들이 실패작이라는 얘긴 아닙니다만...

아직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감독이 있다면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 입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근작들은 날이 갈수록 굉장해져서 보고 있는 동안 전율이랄까, 가슴이 먹먹해지고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해괴한 증상까지 나타나게 하고 있어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 올해 최고작이었습니다.

<블러드 워크>는 봐야지 봐야지 벼르고만 있다가 여태 안보고 있던 영화였는데, 역시 안 봤던게 실수였어요. 이 재밌는 걸 왜 여태...

웨스턴과 경찰물 같은 장르 영화에 수십년간 얼굴을 내밀어온 이력답게 <블러드 워크>도 익숙한 장르적 규칙에 기댄,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입니다. 다음 작품인 <미스틱 리버>와 비교하자면, 뭐랄까요, 무게감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노인네다운 느긋한 시선으로 '이런 영화쯤이야 간단히 만들 수 있다'는 듯한 느낌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만, 어디 가겠습니까, 대가의 솜씨가. 천연덕스럽게 인물을 줌인으로 클로즈업하는 숏같은 건 어딘지 그가 출연한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더군요.

이 영화에서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신체적 노쇠함을 숨기지 않으며 다시 한 번 '노인네'의 영화임을 드러냅니다. 가령 연쇄살인범을 쫓아가다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켜 쫓아가기를 포기하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연출하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뭔가 섹.시.합니다. 멜로영화였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후에는 본 기억이 없는 베드씬(?)도 등장하는군요. (<블러드 워크> 찍을 당시 73세였습니다.) 근데 노인네의 그 섹시함이 어쩌자고 제게 먹히는 거 있죠.(아, 저는 남자입니다만...-_-) 식스팩 복근과 생물학적 연령 뿐만 아니라 양심에서 들려오는 윤리적 요청을 무시하지 않는 인간미와 오랜 경험과 천부적 재능으로 쌓아올린 전문분야에서의 업적에서도 '섹시함'이 솟아날 수 있다는, 아, 이건 정말 노인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를 하는군요. 이쯤되면 '나이먹음'을 단순히 '인정'하고 그 생물학적 한계를 감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늙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어떤 심오한 통찰력 같은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한 자신만만함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정말이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렇게 멋있게 늙는 거라면 늙어도 괜찮아.' 그런 기분이 들고 마는군요.

여튼, 이 영화, 당연히 재밌습니다. 제발이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아버지, 만수무강해주세요.  (2005·09·17 00:41)

Blood Work.jpg
73살이라지만, 여전히 각잡힌 저 갑빠 좀 보세요. 캡쳐한 사진에는 안 나옵니다만 뱃살도 거의 없습니다. 오, 섹시 섹시.

The Apartment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
Directed by Billy Wilder
imdb    naver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것 역시 재밌군요. 유명한 영화가 유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글쎄요... '모텔'이 즐비해서 대딩이나 아줌마아저씨나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그닥 현실감이 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여튼 이 영화의 주인공 박스터는 직장 상사들에게 자신의 아파트를 대실(!)해 주는 댓가로 고속승진을 합니다. 그러다 사장의 정부를 사랑하게 되구요...

아... 쓰기 귀찮군요.

여튼간에 셜리 맥클레인 Shirley MacLaine, 아... 귀여워요.

피어스 브로스넌 급의 느끼함을 선사하고 있는 프레드 맥머레이 Fred MacMurray는 빌리 와일더의 다른 영화 <이중배상>의 그 배우군요. 음.. 그런가보죠? 예나지금이나 여자들은 저렇게 키가 훌쩍 크고 돈 잘벌고 느끼한 남자를 좋아하나 봅니다. 아, 와타시또 젠젠 찌가우. -_-

재밌는 대사도 많군요.


Fran Kubelik: When you're in love with a married man you shouldn't wear mascara.


Fran Kubelik: What's a tennis racket doing in the kitchen?
C.C. Baxter: Tennis racket? Oh, I remember, I was cooking myself an Italian dinner.
[Fran looks confused]
C.C. Baxter: I use it to strain the spaghetti.    (2005·09·10 00:05 )


 

 

 


애매한 표정을 짓고 계신 맥클레인 여사.


왼쪽에 웃고 계신 분이 맥클레인 여사입니다.


아, 맥클레인 여사가 왜 귀엽다고 생각되었는지 이유를 알겠어요. 그렇습니다. 저는 로리콤이었던 것이에요. -_-;


'아, 그랬던 거구나. 박스터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였어'라는 걸 깨닫고 행복해하는 표정, 약 0.3초후엔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데, 아, 제 캡쳐능력이 미숙한 관계로 그걸 잡아내지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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