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三人の刺客 13인의 자객 ★★★☆
감독 : 구도 에이이치   工藤榮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영화였습니다. 의로운 목표를 위해 몇 명의 무사들이 모여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설정도 그렇고, 많은 수의 적과 상대하기 위해 기지를 앞세운 전략을 세워 전쟁에 임하는 방식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많이 늘어집니다. 제대로 된 액션씬은 마지막에 몰려있고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의 대부분을 전략을 세우고 13인의 무사의 거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상황설정에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30여분을 장식하는 전투씬은 지루한 전반부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짙은 안개를 뚫고 크레센도로 커지는 적의 말발굽소리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액션은 사실적입니다. 폼이고 뭐고 없이 그냥 뒤엉켜 베고 찌르고 도망가고. 인상적인 라스트씬-살아남았다는 희열에 논바닥을 딩굴며 환성을 지르는 조연을 잡아낸 롱 쇼트-도 기억에 남습니다.   (2004·02·01 22:50)

아래는 팜플렛에 적힌 영화 소개

TITLE (K)  13인의 자객
 
TITLE (O)  十三人の刺客
 
DIRECTOR  구도 에이이치   工藤榮一
 
ADDITION  1963  | 125min  | 일본  | b&w  

어느 원로의 부탁으로 지방 다이묘의 암살을 부탁받은 중년의 사무라이 시마다 신사에몬은 자신의 행동에 동의하는 동료들을 모아서 거사를 꾸민다. 다이묘 일행의 참모격인 한베이도 누군가가 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낌새를 채고 그에 대비한다. 엄격한 화면구성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탁월하게 표출해내는 감독 구도 에이이치의 재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60년대 초반의 집단액션 시대극의 대표 걸작이다.


仇討崇禪寺馬場 수젠지의 결투 ★★☆
감독 : 마키노 마사히로   マキノ雅弘

서울시네마테크에서 <일본영화걸작선 Ⅰ>라는 제목으로 5,60년대 일본 액션영화들을 상영했습니다.

이 영화는 별로 재미없었습니다.

영화와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기모노를 입은 여성에게서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훤히 드러나는 목덜미라고 생각됩니다. -_- 기모노, 참 이쁜 옷이군요.  (2004·02·01 22:38)


아래는 팜플렛에 적혀 있는 영화 소개

TITLE (K)  수젠지의 결투
 
TITLE (O)  仇討崇禪寺馬場
 
DIRECTOR  마키노 마사히로   マキノ雅弘
 
ADDITION  1957  | 93min  | 일본  |  b&w  

혼다 검법의 생도인 이쿠다 덴하치로는 무술대회에서 후배격인 소자에몬에게 패배를 당한다. 패배 후 아내와 장인의 비정한 태도에 실망한 그는 집을 나섰다가 우연히 만난 소자에몬을 죽여버리고 오사카로 떠난다. 한편 소자에몬의 형이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찾아오고, 덴하치로는 소자에몬의 형과 수젠지에서 결투를 벌이기로 한다. 1920년대 후반부터 영화를 만들어온 일본영화계의 대베테랑 마키노 마사히로의 원숙미가 돋보이는 걸작.  

 

千禧蔓波 밀레니엄 맘보 ★★★
감독 : 侯孝賢
imdb

후 샤오시엔의 <해상화>를 보고 한없이 늘어지는 쇼트의 길이와 화면을 장악하고 있는 나른한 퇴폐의 기운에 질린 경험이 있어, <밀레니엄 맘보>은 나름의 각오를 하고 보러 갔습니다. <해상화>에서 손끝하나 까딱하기 싫은 듯한 무기력함을 느끼게 만들던, 움직일줄 모르는 게으른 카메라와 끝도없이 길어지는 숏의 길이가 <밀레니엄 맘보>에서도 반복됩니다. 자멸적인 무위도식으로 젊음을 스스로 갉아먹는 한심한 청춘을 묘사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방법이 아닐까요.

영화는 때로 매력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서기는 예상외로 제대로 된 연기를 하고 있지만, 역시 무지하게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2004·01·25 23:49 )

여섯 개의 시선 ★★★
감독 : 임순례, 박광수, 박찬욱
naver

여섯개의 에피소드 중 제대로 본 건 임순례의 <그녀의 무게>, 박광수의 <얼굴값>,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입니다.

<그녀의 무게>는 좀 심심한 에피소드입니다. 메시지의 전달방식이 부적절하다거나 설득력이 없다기보다 너무 정직하기 때문이지요. 딱 '인권'영화입니다. 전형적인 임순례식 주인공들도 구질구질한게 짜증나구요. 물론 이런 제 감상이 이 영화의 인권영화로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굴값>은 비난이 자자한 에피소드지요. 충분히 납득이 가는 평가입니다. 영화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애매한 메시지와 황당한 결말까지, 그런 소리 들어 싸다, 싶군요. 하지만, 느닷없는 마지막 반전에 저는 오히려 이 영화에 호감을 갖게 됩니다. 요령있게 말하는 괴담은 언제나 즐겁잖아요? 귀신역을 맡은 정애연이라는 배우도 무척 매력적이군요. 박광수의 신작 <방아쇠>에서 정우성의 상대역으로 역시 귀신역을 맡는가 봅니다.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이 영화에서 가장 호평받은 에피소드였죠. 무전취식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간 네팔 노동자 찬드라가 행려병자로 오해받아 6년 4개월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는, 어이없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마르께스의 단편 중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군요. 영화는 실제 그 사건에 관련되었던 혹은 그 대역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딱히 악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그 사람들의 변명이 구차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지 어떤 인종적 반감같은 것 때문은 아니거든요. 이주노동자가 많지 않았던 93년도의 상황에서 이런 오해는 흔한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얼굴값>만큼이나 그 메시지가 애매한 것 같아요. 찬드라의 비극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이지는 않거든요. 결국 이 에피소드는 '인권영화'라는 자장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저 에피소드가 '인권'에 관해 말하고 있다면 그건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사회가 '정신병자'를 어떻게 격리하고 그들의 의사표현을 방해하는가에 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경찰 역을 맡은 그 사람은 <올드보이>에서 사립감옥의 보스를 맡아 인상적인 깡패연기를 보여주었던, 그 배우 같군요.   (2004·01·21 13:21)

Bastard, Der 사생아 ★★☆
감독: 제나로 리겔리(Gennaro Righelli)
http://imdb.com/title/tt0387861/

하이퍼텍 나다에서 "Silent Diva"라는 이름으로 1910~1920년대 이탈리아 무성영화제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 영화는 <사생아 Der Bastard>입니다.

1900년대 초 이탈리아 영화계의 매혹적인 여배우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제가 파악한 영화제의 취지였습니다만, 오늘 본 <사생아>의 히로인 '마리아 야코비니'는 현대적 기준으로는 어글리하게 생겼습니다. 무성영화의 배우답게 과장된 몸짓과 화장으로 괴기스럽기조차 하더군요. 때문에 아들을 잃어버리고 반쯤 미친여자를 연기할 때만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현실감있게 느껴지더군요. 

버스터 키튼이나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대사는 없지만 심심하지 말라고 배경음악을 깔잖아요? 그런데 <사생아>는 무.성.영화제라는 취지에 맞추려고 그랬는지 정말 아무 소리도 안나더군요. 1910년대에도 저런 식으로 상영했을까요?

내용은 황색지스런 연애담입니다. 바람둥이의 유혹에 넘어간 순진한 처녀가 사생아를 낳았는데, 그녀를 사랑하던 어떤 잘난 청년은 그녀를 잊지 못하고... 1924년도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몇몇 장면들은 무척 자극적입니다. 불이난 여객선 갑판 위에서 우왕좌왕하는 관객을 묘사하는 장면에선 어떤 여성의 유방(!)이 두번이나 노출되지요. (분명 의도된 장면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목숨을 갖고 장난치는 설정은 요즘 영화에선 금기시 하잖아요? <바람난 가족>이나 <도베르만>이 불쾌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런 금기를 어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여 서스펜스를 조장하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중국인 부부가 아이들에게 칼을 던지는 서커스 장면과 방탕한 아빠가 어린 아들을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받는 장면이 그것이지요. 그 장면들은 무척 잔인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중국인 부부가 나옵니다. 주인공의 아들을 유괴(?)해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아이의 목숨을 갖고 서커스를 하는 잔악한 인간으로 묘사됩니다. 배우 생긴 것도 완전 '쥐'에요. 같은 황인종으로서 불쾌한 장면이었지요.

아래는 영화제 팜플렛에 나온 영화 소개글입니다.

<사생아 Der Bastard 1926, 88분18초, 35mm, 길이: 1874m>
감독: 제나로 리겔리(Gennaro Righelli)
출연: 마리아 자코비니(Maria Jacobini), 에리히 카이저 티츠(Erich Kaiser - Titz)
라틴을 사랑하는 세르지오는 마르키즈의 순진한 딸 마리아를 유혹한다. 한편 마리아의 전 구혼자 지오지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돌아온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녀가 지오지오에게 끌린건 사실이지만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파리로 도망쳐 세르지오의 보호를 받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가 바람둥이인 것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세르지오는 마음을 바꿔 마리아에게 돌아오고 둘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유람선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세르지오가 배 안에서 옛 연인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자 마리아는 괴로워한다. 갑자기 배에 불이 나고 침몰 직전에 이르고 혼란의 와중에 마리아는 아들을 잃어버린다. 구명보트에 자리가 하나밖에 남지않자 세르지오는 그의 연인을 붙잡아 마리아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나중에 마리아는 중국인 가족에게 구출된 그녀의 아들과 재회하고 그녀의 참된 사랑인 지오지오와 다시 결합한다.   (2004·01·1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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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orious 오명 ★★★☆
Directed by Alfred Hitchcock
imdb

히치콕의 이 유명한 영화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전에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낯익은 장면이 여러군데 있었거든요. 히치콕의 영화들을 무척 많이 보아서 그럴지도 모르고 아니면 이 영화의 여러 장면들이 영화교재에 빠짐없이 등장할만큼 유명하기 때문이겠지요. 게리 그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키스씬이나 포도주 창고에서의 서스펜스, 잉그리드 버그만이 남편이 커피에 독을 넣어 자신을 독살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장면의 편집, 그리고 마지막 계단씬. 맥거핀 효과와 부정한 금발 등 히치콕의 영화적 장치들이 온전히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변함없이 재미있고 몇몇 장면의 서스펜스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본질적으로 스파이물이라기보다 위기에 빠진 여자가 겪는 삼각관계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꽉짜인 플롯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숨막히는 서스펜스 장면을 빼놓곤 스파이물로는 많이 밋밋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꽊짜인 스파이물을 찾는다면 <007>을 봐야할 일이겠지요.

잉그리드 버그만의 그 몽롱한 눈빛과 흐릿한 실루엣은 그녀가 언제나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로맨틱함이 있습니다. 아, 아름다우시군요.

게리 그란트는 자꾸 하워드 혹스의 코미디 영화에서의 그가 생각나는군요. 저렇게 쿨한척 하지만, 뛰어난 코미디언이기도 하답니다. ^^   (2004·01·11 15:35)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제가 본 히치콕 영화들.

Man Who Knew Too Much, The (1934)
39 Steps, The (1935)
Sabotage (1936)
Rebecca (1940) (확실치 않은데...)
Foreign Correspondent (1940)
Lifeboat (1944)
Notorious (1946)
Rope (1948)
Strangers on a Train (1951)
Dial M for Murder (1954)
Rear Window (1954)
Man Who Knew Too Much, The (1956)
Vertigo (1958)
North by Northwest (1959)
Psycho (1960)
Birds, The (1963)
Marnie (1964)
Topaz (1969)
Frenzy (1972)
Family Plot (1976)

 

 

 

 

 



아름다우십니다, 잉그리드 버그만 여사. ㅠㅠ


전화받으면서도 쉴새없이 키스를 하고 계신 커플. 행복해하는 잉그리드 버그만 여사의 표정.


잉그리드 버그만이 몰래 빼내온 포도주 창고의 열쇠, 오른손에 있을까요, 왼손에 있을까요?


천연덕스럽게 술을 드시고 계신 히치콕 감독. 이번에도 까메오로 출연하셨습니다.


저 커피잔에 독이 들었어요. 고전적 편집 어쩌구 하며 항상 예로 드는 장면 아니던가요?

Haute tension 엑스텐션 ★★☆

Directed by Alexandre Aja

http://us.imdb.com/title/tt0338095/

프랑스제 슬래셔 무비입니다. 이 계통의 영화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화끈하고 창의적으로 '죽이는가?'하는 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외국영화로는 처음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는 등 자극적인 소문이 많았던 영화였지만, 글쎄요, 참신하거나 쇼킹한 장면이 별로 없군요. 잘린 머리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_- 정도가 기억에 남을만 합니다. 저 장면을 제외하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을만한 장면도 없었구요. 결국 자진 삭제 후 18세 등급을 받았다던데, 그나마 볼 거 없는 영화가 더 볼 거 없어졌겠습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반전도 뜬금없습니다. '사실은 말하고 있는 그 놈이 살인범이다'는 식의 반전은 최근엔 <아이덴터티>에서도 반복되었던, 숱하게 울궈먹은 방식이지요. 게다가 시침 뚝 떼고 영화 내내 마리의 정체에 대한 거짓정보를 잔뜩 흘려놓고, 영화 끝부분에 가서야 '사실은 마리가 살인마였다'고 주장한다면, 보는 관객 입장에선 어이없어지죠.

잘 만든 슬래셔 무비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옥죄는 듯한 긴장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시간 아까운 영화.   (2004·01·15 00:17 )

 

Irréversible 돌이킬수없는 ★★★
Directed by Gaspar Noé
imdb

영화 전체를 통털어 채 열 개가 안되는 롱테이크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니카 벨루치가 지하도에서 강간당하는 장면에선 롱 테이크의 효과가 빛을 발하는군요. 진저리쳐지게 잔인한 느낌은 흡사 고문이라도 받는 듯했습니다.

자극적인 스토리와 비쥬얼은 선정주의의 혐의가 짙지만, 동시에 거부하기 힘든 매력도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기분나쁜 소음과 어두침침한 붉은 조명아래 쉴새없이 흔들리틑 카메라가 잡아낸 게이바의 모습은 지옥이 따로 없더군요. 삐에르가 애꿎은 게이의 얼굴을 소화기로 말그대로 아작을 내는 장면은 보기 드물게 화끈한 고어씬이었습니다. (삐에르가 죽인 그 게이는 모니카 벨루치를 강간한 그 나쁜놈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땐 얼마나 삭제되었을까요?

누구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무척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 Le temps détruit tout '    (2004·01·09 23:54)

逃學威龍 三之 龍過鷄年 도학위룡 3 - 용과계년 ★★★
감독 : 왕정

왕정의 영화답게, 말도 안되는 줄거리에 썰렁하기 그지없는 개그, 무성의한 패러디, 엉망진창입니다. 이 말도 안되는 영화가 그나마 볼만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주성치의 공입니다.  

얼마전에 세상을 뜬 매염방이 나오는군요. <무간도>에선 무지하게 무게를 잡던 황추생, 이 영화에선 엄청 망가집니다.    (2004·01·09 00:29 )

선택 ★★★★
감독 : 홍기선
naver

45년 동안의 긴 옥살이 후 1995년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출옥한 비전향장기수 김선명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양심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45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의 김선명 할아버지는 성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돈벌어 혼자 잘먹고 잘살 생각만 하는 제 자신의 버러지같은 인생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외양은 밋밋하지만, 감동적인 영화는 형식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보다가 울었어요. ㅠㅠ


"전에는 선택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진정한 선택이란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네요...
선택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말이죠."   (
2004·01·0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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