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Metal Jacket 풀 메탈 자켓 ★★★
Directed by Stanley Kub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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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들이 훈련소에서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전반부가 실제 전장에 나가 베트콩과 총질을 하는 후반부보다 더 무섭습니다. 뭐가 무서울까요? 멀쩡한 인간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살의를 심습니다. 조국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고양된 집단의식을 주입합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일상화된 폭력으로 젊은 것들을 훈육하고 목적한바대로 그들은 점차 전투적인 쇼비니스트가 되어 전장에 피를 뿌리고 싶어합니다. 가장 무서운 부분은, 이런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 먹혀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인텔리쯤 되는 조커나 고문관 Pyle이나 인종과 계급을 초월해서 동일한 인간형으로 변합니다. 신체에 대한 훈육은 그만큼 결정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 예비역은 좀 심드렁해집니다. 시시한거지요. 이 영화의 신병들이 겪는 갈굼은 논산훈련소에서 몸소 겪었던 경험과 비교하여 그 정도가 심하다고 말하기 힘듧니다. Pyle이 킥킥대고 쪼개다가 교관에게 귀싸대기 두 대 맞고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깨닫곤 표정이 싹 바뀔때, 그걸 지켜보는 예비역은 여전히 웃고 있는 판국이죠. 까짓 귀싸대기 두 대 갖고 쫄기는. 전장에 곧 끌려갈 해병들의 훈련이 저 모양인데 전시상황이 아닐 때의 신병들의 훈련은 얼마나 널널할까, 가소로와집니다.

전반부의 훈련 장면에서 어떤 살벌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감독의 의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좀 빈정대고 있는 거 같거든요.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과정의 그 비인간화를 고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비합리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짓거리가 애국이니 조국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소를 보내는 거지요. 그러니 내무검사 시간의 살풍경한 모습도,  일순간 바보들의 어설픈 몸짓을 보여주는 코미디 같아 보입니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위에 두는 전체주의적 망상을 비아냥대기에는 실제 전장은 적절한 장소가 아닌 듯 하고, 때문에 이 영화의 후반부는 지루합니다. 뭐하자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 영화에 묘사되는 베트남 시가전은 어떤 광기도 처절함도 느껴지지 않는 심심한 곳입니다. 특히 총에 맞는 장면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슬로모션은 웃으라는건지 슬퍼하라는건지 종잡을수가 없군요.

등장하는 베트남 사람에 대한 이 영화에 묘사도 다소 불쾌한 점이 있습니다. 달랑 다섯 명 뿐인데, 두 명은 창녀고 한 명은 포주, 다른 한 명은 무술의 달인(?)인 소매치기, 그리고 가녀린 소녀 베트콩입니다. 이 영화에는 창녀를 상대로 화대를 교섭하는 장면이 두 번, 꽤 비중있게 나오는데, 이것도 뭐하자는 장면인지 모르겠군요. 다른 영화에서 태국이나 뭐 그 비슷한 국가들이 등장인물들의 성적배설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차라리 베트남 사람들을 묘사하지 말 일이지... 수색대원을 몇 명이나 죽임에 빠뜨린 그 저격수가 가녀린 소녀라는 설정도 진부하거나 뜬금없습니다. 그 장면 하나 만으로 베트남전의 성격이 드러난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런걸 의도한 거라면 너무 안이하거나 비겁한 태도입니다. 총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그 소녀 저격수가 미군에게 제발 자신을 쏴죽여달라고 부탁합니다. 차마 눈앞의 소녀를 죽이지 못해 다들 주저하고 있는데, 주인공 Joker가 총으로 쏴 죽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들은 넌 잔인한 놈이다, 비난조로 말하는군요. 이 장면이 도대체 뭘 의도한 걸까요? 미군은 웬만해선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헛소문을 강화하기 위한 장면일까요? 미군들은 전투병 여자 하나 죽일 때도 저렇게 인간적인 고뇌에 쌓였었다는 걸까요? 전장에 나가 있던 실제 미군들은 영화속의 그들처럼 여자 베트콩을 죽이는데 망설였을까요? 감독의 의도였든 아니든 말도 안되는 장면이고 사실을 호도하는 장면이지요.

Pyle이 자살하는 장면까지만 영화로 만들었다면, 런닝타임이 좀 짧기는 해도, 훌륭한 코미디가 될 수 있었을텐데요...

Pyle역을 맡은 Vincent D'Onofrio은 <Happy Accidents>에서 Marisa Tomei의 상대역으로 나온 그 배우인가봅니다.   (2003·12·14 21:27 )

 

ダウン トゥ ヘル 다운 투 헬 ★★★
Directed by 北村龍平 (기타무라 류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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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무라 류헤이의 영화는 아직 국내에 정식 개봉한 것이 없지요. <VERSUS>가 작년인가 재작년에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했었고, 올해 부천영화제에선 <VERSUS>의 시나리오를 썼던 야마구치 유다이(山口雄大)가 감독을 하고 기타무라 류헤이가 제작을 맡았던 <지옥갑자원(地獄甲子園)>이 상영했었습니다. 핏빛 가득한 황당하고 스피디한 액션으로 관객을 열광시키는 이 감독은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일본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하네요. 헐리웃에서도 자꾸 오란다고 하고.

<ダウン トゥ ヘル>은 95년에 제작비 30만엔으로 10일 만에 찍은 40여분 길이의 중편(?) 영화입니다. 첨부한 그림 파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마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것 같아요. 이유없이 사람을 납치하여 깊은 산속에 풀어놓고 인간사냥을 하는 4명의 악당이, 되살아난 한 희생자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간단한 스토리는 <VERSUS>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지요. <VERSUS>의 액션은 홍콩 무협영화의 정교함은 없지만 대신 화끈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큼 스피디하고 파워풀했지요. 게다가 보란듯이 잡고 있는 똥폼까지, 첨부터 끝까지 무지하게 신나는 영화였습니다. <ダウン トゥ ヘル>은 저예산 영화답게 저렴한(!) 액션과 조잡한 분장으로 일관하지만, 그런 한계들은 그야말로 온몸을 던지는 배우들의 액션과 현란한 카메라 웤으로 어느정도 커버됩니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는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다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한정된 제작비와 시간으로 만든 영화임을 감안하면 놀랍다,는 감탄이 드는 영화입니다. 로드리게즈의 <엘 마리아치>가 연상되는 영화이지요.

인디영화이니까 고어씬이 좀 더 화끈할만도 한데 기대치에 약간 못미치는군요. 내장을 꺼내 질질 끌고 가는 정도에서 끝나지요. 그런 장면들도 고어영화 특유의 그 끈적끈적한 질감이 없어 좀 아쉽습니다. <VERSUS>는 칼든 <데스페라도>에 <데드 얼라이브>를 섞어놓은 듯 고어장면이 넘쳤었는데요.

기타무라 류헤이, 2003년에만 4편의 영화를 찍었군요. <아즈미(あずみ)>의 액션씬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우에토 아야(上戶彩)을 칼부림은 거의 리듬체조 수준의 사뿐함이었지요. 감독, 능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요? 베르수스같은 황당하고 화끈한 액션을 다시 볼 수 있길 바래봅니다.   (2003·12·11 14:37)

Mystic River 미스틱 리버 ★★★★
Directed by Clint East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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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입니다. 좋아하는 감독을 나열해본다면 11번째나 12번째 쯤 될까요? ^^;;; 미이케 다카시처럼 몸서리치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영화들은 되도록 찾아보고 있고 또 그때마다 항상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나이와 관계있습니다. 그는 1930년생이고 우리나이론 74인가요? 숀 코너리와 동갑이지요. 하지만 두 배우가 연기하는 영화속 캐릭터들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숀 코너리가 < Entrapment > 에서 자기보다 39살이 작은 캐서린 제타 존스와 사랑을 나누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젊음을 과시하는 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 Bridges of Madison County, The > 에서 비를 흠뻑 맞아 빈약한 모발이 머리에 착 감긴 안스러운 몰골을 드러내며 자신의 늙음은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노인네인거지요.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늙음에는 어떤 궁상맞음이나 회환이나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에게 늙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대신 늙음과 함께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으며, 육체의 노쇠와 관계없이 여전히 안에서 숨쉬고 있는 삶에 대한 끈기, 근성, 열정 같은 것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 Space Cowboys > 의 네 노인네들처럼 자신감있고 능동적인 노인네 캐릭터를 본 적 있습니까? 숀 코너리가 영원히 지속되는-물론 언제까지고 지속될리는 없는-젊음의 이미지로 그의 늙음을 극복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인생이 선사한 경험과 지혜로 빛을 발하며 그 나름의 방식으로 늙음을 극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면 정말이지 노인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할만한 일은 아닌가보다, 안심하게 됩니다.

멋진 노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는 배우로서보다는 감독으로서의 그의 이력에 더욱 잘 드러납니다. 어떤 분들은 그를 마카로니 웨스턴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는 90년대 들어 왕성한 창작력으로 끊임없이 양질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뛰어난 감독입니다. < White Hunter, Black Heart (1990) 추악한 사냥꾼 > , < Unforgiven (1992) > , < Perfect World, A (1993) > , < 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1997) > , < Space Cowboys (2000) > 같은 영화들을 감독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요.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 Mystic River > 도 충실한 장르영화입니다. 지루하지 않지요. 특히 이 영화는 영화의 종반까지 살인범의 정체를 알 수 없는-물론 주의깊은 관객이라면 영화 초반부의 그 결정적인 단서로 범인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잘짜여진 시나리오를 갖고 있습니다. 어릴적 성폭행의 기억이 한 남자와 그의 친구를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Sean Penn, Tim Robbins에 Kevin Bacon까지 화려한 캐스팅이군요. 특히 숀 펜과 팀 로빈스의 연기는 아카데미 상쯤을 기대해 볼 수 있을 좋은 연기입니다. < You Can Count on Me (2000) > 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Laura Linney도 조역으로 나와주셔서 기뻤습니다.

영화 중간에 Tim Robbins이 TV로 보던 그 뱀파이어 영화는 존 카펜터의 < Vampires > 더군요. 하고 많은 뱀파이어 영화 중에 왜 하필 저 영화였을까요?

코엑스 15관에서 상영중입니다. 관객수나 지명도 등으로 미루어보아 곧 내리지 않을까 싶군요. 혹 아카데미 상이라도 받으면 재개봉할지도 모르겠지만...

제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정말 과장안하고 말해 2분에 한번꼴로 코를 후비더군요. 영화 중반 이후로는 자는지 좀 덜 후볐지만. 내 참 더러워서. 거기다 담배에 절은 그 역한 숨결까지... 여러분들, 담배 피지마세요. 싫어요.   (2003·12·07 12:33)

Magdalene Sisters, The 막달레나 자매들 ★★☆
Directed by Peter Mu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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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선 64년부터인가, 약 3만명의 여성들이 '막달레나 자매들'라고 불리는 카톨릭 감호시설에 갇혀 노동력을 착취당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세 등장인물들처럼 강간의 희생자였거나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의혹을 받거나 미혼모로서, 종교나 가부장적 윤리관에 의해 타락하고 죄지었다고 분류되던 여성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막달레나 자매들'이라는 시설은 96년까지 그 마지막 시설이 존재했었다고 하는군요.

아시다시피 굉장히 호평받은 영화입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선 황금사자상을 받았구요. '씨네21'의 평을 빌자면 '보는 이의 가슴에 격랑을 일으키는, 매우 선동적인 영화'라나요? 하지만 저는 지루했습니다. 격랑이라니, 졸릴 따름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억압받고 있는 개인이 시련끝에 자유를 찾는다는 스토리는, 아주 엉망으로 영화화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쇼생크 탈출>처럼 말이죠. 더군다나 그 피해자가 '여성'이라면 의식있는 남녀관객들을 곱절로 분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억압받고 착취당해온 여성의 수난사, 그 한많은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런 소재가 얼마나 현재성을 갖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컨대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는, 종군위안부라는 잊혀진 과거에 주의를 환기시켰고, 또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난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의미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막달레나 자매들>은 어떠한가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종교라는 미명하에 합리화된 아일랜드의 상황과, 유교에 뿌리를 둔 가부장적 여성관이 여성 억압의 근거였던 우리나라의 상황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막달레나 자매들>의 여성들이 겪게 되는 억압과 고난들에 페미니즘적인 연대의식을 갖고 함께 분노하기엔, 한국의 남자관객으로서 뭔가 접합점이 부족하지요. 분노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자유'라는 보편적인 명제가 짓밟히고 있기 때문이지,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분노해야할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슨이 오랜 고생끝에 찾은 자유에 관객들이 감동했다면, 그건 그가 남자이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막달레나 자매들>의 등장인물들이 그곳에 갇히게 된 이유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선 거의 죄악으로 여겨지지 않는 성질의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오랜 시간 갇혀있었다니, 그 불합리가 관객을 분노하게 만들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사실 그런 분노는 소모적이고 자극적이기만 할 뿐, 페미니스트들에게 건강한 목표의식을 심어주는데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미 성취한 목표이지요. 이 영화의 상황에 분노할 수 있는 건, 오늘날 여성이 요구되는 윤리적 규범들은 이전 시대의 그 불합리의 틀을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할테니까요. 이 영화의 방법론을 조금 더 극단으로 밀고 가보면, 예컨대, 혼자사는 여자나 이혼한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부쳤던 중세시대의 광기를 예를 들어, 현대의 미혼모나 이혼녀에 대한 있지도 않은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을 분노하는 것과 같은 오버질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더이상의 개선의 여지가 없을만큼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처럼 현재로선 있을법하지 않은 과거의 비극을 들추어 괜히 분노를 터뜨릴 일은 아니지요.

'막달레나 자매들'에 감금된 여성들의 일상은 병영에 갇힌 군바리들의 일상과 흡사하더군요. '막달레나 자매들'쪽은 '무기한'이기 때문에 물론 더 비참하달 수도 있겠지만, 노동의 강도나 심리적 억압은 대한민국의 국군장병아저씨들 쪽이 더 할 것입니다. 인간 이하로 취급받으며 느껴야했던 모멸감, 거기다 군화발에 졸라 얻어터지기라도 하면, 참 미안한 말이지만, '막달레나 자매들'에서의 일상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마가렛이 실수로 잠겨지지 않은 문을 통해 바라본 외부 세게, 푸른 벌판에 왠지 햇살도 좋을 것 같던 그 아름다운 광경은, 군대있을 때 사격하러 가느라 군장을 매고 지나가던 그 논두렁길에서 바라보던 풍경을 연상시키더군요. 그 순간 마가렛의 그 설렘을, 대한민국의 예비역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3·12·06 22:47)


  1. 과객 2013.07.22 19:05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지나칠수 없는 글이군요. 제 보기엔 위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닙니다. 주인공이 억악받는 여성들이라 하여, 페미니즘 선동 영화쯤으로 치부하기엔 논점이 어긋난듯 하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분노는, 감히 신의 이름을 빌어 같은 인간을 착취,체벌하는 종교인들의 안하무인 때문이었습니다. 님도 언급하신 "인간의 자유"라는 보편적 명제가 짓밟히는 실상을 감독도 "분노하라"고 외치는 듯 보이는데, 그렇게 안보이셨나보네요. 지루하게 보셨다면 개인감상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현재성이 없다는 단언은 지나친 오만 혹은 무관심의 산물 같군요. 미혼모, 강간피해여성 등에 대한 사회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 보십니까? 감금,착취만 아닐 뿐이지, 영화 속 수녀들이 서슴치 않고 내뱉는 "쓰레기" "죄악"같은 단어를 머리 속에, 얼굴에 그린채 그 여성들을 대하는게 실상일텐데요. 우리나라 미혼모 수용소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노숙자 보호소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끔찍한 실체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 영화를 논하매 여성, 남성 운운하는것도 우습지만, 말나온 김에 군대 얘기는 섣불리 마십쇼. 님의 글을 읽는 여성들이 공감할 수 없을 뿐더러, 원성 사기 딱입니다. 외려 님이 막달레나 시스터즈에 남성을 대입하고 이해하시는게 더 쉬울 듯 합니다.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자, 무식하고 못생겨서 취직못하는 남자, 얼굴값하니 죄악의 씨가 다분하다는 이유로 끌려온 남자들이 어느 암자에 갇혔다 칩시다. 죄도 아닌 죄로, 고기먹는 땡중들에게 무기한 폭력과 무시를 받으며 살고 있다면, 남성인 당신은 공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80년대 전씨가 자행한 삼청교육대를 떠올리며... 이만. (2006.09.11 22:24:51)

  2. Cocteau Ozu 2013.07.22 19:06 신고

    글쎄요... 본 지 너무 오래되서 기억도 잘 안나는 영화입니다만... 이 영화에 페미니즘 어쩌구의 감투를 씌운 건 제가 아니라 언론, 찌라시 등등 이었고, 저의 모자란 소견으로는 '현재성'없는 사안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을 자극하는 영화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미혼모나 강간피해여성들에 대해 적어도 지금은 이 영화에서와 같은 부당한 대우가 가해지고 있지는 않고 있으며 설령 누군가가 그런 부당한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인 강간피해여성이나 미혼모가 이 영화에서처럼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을 만큼의 '상식'이 보편화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장애인이나 노숙자에 대한 사회적 폭력을 다룬 영화였다면, 저 역시 그런 사회적 폭력같은 게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고 '동의'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서처럼 심드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의 짧은 지식 탓에 실상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오늘날의 여성들이 강간, 미혼모 등의 이유로 박해받고 있지는 않고 있는 데도, 굳이 사회적 몰상식이 횡행하던 옛일을 들추어 해묵은 분노를 조장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 못갖는 남자, 못생겨서 취직못하는 남자 등을 암자에 가둬놓고 고기먹는 땡중이 폭력을 행사하는 영화가 있다면, 글쎄요, 분노하기 보다 실소를 터뜨리겠죠. 그런 일이 벌어질리 없으니까 말이에요.
    군대 얘기는... 글쎄요... 이 글은 영화를 본 제 개인적인 감상이고, 남들 못지않게 고생한 예비역으로서, 훈련병 시절 담장 너머 훔쳐본 바깥 세상의 모습에 관한 애틋한 기억이 영화 속 한 장면과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되었더랬습니다. 그런 개인적인 기억까지 자기검열해야 할만큼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군요, 삼청교육대도 아닌데 말이죠. (2006.09.11 23:51:35)

 

 

Full Metal 極道 풀 메탈 야쿠자 ★★★
directed by 三池崇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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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입니다. 이 사람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가 끝날 즈음엔 그의 영화만큼 제 자신도 정신이 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몇년 전 부천영화제에서 본 <비지터 Q>는 제가 지금껏 본 수천편의 영화들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였습니다. 그의 최근작 <極道恐怖大劇場 牛頭 극도공포대극장 우두>는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작이었구요. 여튼 저는 미이케 다카시 빠돌이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본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들은, 그의 영화들 중에 완성도가 높은 것들이었습니다. 엄청난 다작의 감독이니까 개중에는 분명 완성도 떨어지는 영화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제나 당나귀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그의 영화들은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갖춘, 그의 대표작 쯤 되는 영화들이었지요. 뭐 언젠간 한 번 보게 될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덜 떨어진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말입니다. 지금까지 본 그의 영화 중 가장 엉망이었습니다, 이 영화.

하지만, 이렇게 엉망으로 대충대충 만들어도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는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혹은 로보캅의 치졸한 아류임을 숨기지 않는 대신, 사지절단과 여성학대와 난무하는 정액과 만화보다 과장된 액션 등은,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마지막 씬의 그 고추내놓기-_-도, 물론 그냥 재미로 넣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장면이겠지만,  여튼 썩 인상적이었습니다. 차마 눈뜨고 보기도 무안한 유치찬란한 자세로 총탄을 막아내는 설정도, 물론 공감하긴 힘들지만, 미이케 다카시 식의 유머감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미이케 다카시는 가장 엉망으로 만들어도 이 정도는 만듭니다. 좋아하지 않을래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감독입니다.

* 極道 란, 야쿠자들이 자신들을 점잖게 부르는 말이라는군요. 조폭들이 자신을 건달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2003·12·03 01:46 )

 

올드 보이 ★★★☆
감독 :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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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에 감정이입이 엄청 잘 되는 저는, 영화속 캐릭터가 너무 싫어 그 영화 자체가 싫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라는 캐릭터가 너무 맘에 안들어서 그 영화까지 싫어졌지요. 이런 상황은 달리 생각해보면 그 영화의 캐릭터라이징이 그만큼 성공적이라는 얘기도 될 수 있으니까 오히려 그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일 수 도 있습니다. 박찬욱의 다섯번째 영화 <올드 보이>도 그런 영화입니다. 유지태가 맡은 '이우진'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짜증나서 이 영화 자체가 짜증나는 형국입니다.

이우진이 불쌍하십니까? 제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박찬욱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는 일방적인 피해자나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올드 보이>의 이우진은 일방적인 가해자이고 오대수(최민식)는 일방적인 피해자입니다. 이우진의 분노가 향해야 할 진정한 대상은 금기된 사랑에 빠지고 만 자신의 운명이거나,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갈 용기가 없어 자신의 누이의 자살을 방조한 그 자신의 나약함입니다. 저는 심지어 우진이 그의 누이를 진정 사랑했을까도 의심스럽습니다. 자신의 주체못할 욕정이 동생이자 자식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을 돕다니, 그게 사랑일까요?

오대수는 그가 치른 감금과 잔인한 복수에 걸맞게 큰 잘못을 저지렀을까요?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지만 그런 결과가 생긴 가장 큰 책임은 아무데서나 애정행위를 하던 두 남매의 무분별함과 그 결과를 책임지지 못할 만큼 뜨뜻미지근한 그들의 사랑에 있습니다. 그런 치명적인 결과는 오대수가 의도한 바가 전혀 아니었으며 기껏해야 '실수'일 뿐입니다. 이우진의 비열한 책임회피는 오대수와 그 최면술사와의 관계와 뚜렷한 대비를 이룹니다. 그 최면술사는 오대수의 또다른 원수임에 분명합니다.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오대수를 그의 친딸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 최면술사와 다시 대면한 마지막 씬에서 최면술사에게 아무런 억하심정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게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는 장면이었습니다만,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 그 최면술사에게 복수를 행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윤리관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 최면술사는 분명 자기가 본 것을 친한 친구에게 말한 오대수보다 더 나쁜 의도-그것이 돈이든 뭐든간에-를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잖아요? 그렇지만 오대수는 그녀에게 복수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설정 중 하나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부녀지간이라는 것을 미도가 결국 알게 되었다면 오대수는 그녀에게 복수했을까요? 감독이 어떤 의도로 오대수의 복수심이 그 최면술사를 벗어나도록 설정했는지 이해가지 않습니다만, 여튼 바로 그 지점에서 오대수와 이우진의 차이가 분명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쏟아지는 극찬들을 전혀 이해못할 것도 없지만, 그런 극찬들은 이 영화 자체처럼 오버인것 같습니다. 침이 마르게 칭찬해대는 최민식의 연기도 사실 굉장히 오버로 일관하고 있는 듯합니다. 유지태의 그 뻣뻣한 연기는 말할 것도 없구요. 영화의 설정에도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이우진이 극중에서 직접 말하듯이 '아무리 최면술에 대한 감도?가 뛰어나다고 해도 최면만으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무척 어거지 같습니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게 만들고 싶지만 개연성있는 방식을 구성해 내기 힘드니까 저런 얼토당토않은 설정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이한 태도지요. 또 미도의 정체에 대한 반전을 준비하면서 그녀의 정체에 대해 감독이 거짓된 정보를 흘린 것은 이 영화를 일종의 미스테리로 취급하는데 있어 가장 치명적인 결점이 됩니다. 관객이 미도가 딸이라는 사실을 반.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앞서 어떤 아줌마가 '딸이 외국으로 입양된지 오래되서 한국말을 거의 잊었다'는 식으로 거짓을 말하게 하면 안됩니다. 앞에선 아니래놓고 뒤에 가선 실은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사기일 뿐이죠.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의 그 강렬한 인상은 일정 부분 잔인한 비주얼에 힘입었습니다. 경동맥에서 분수처럼 치솟는 핏줄기와 끊어지는 아킬레스 건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영화는 <복수의 나의 것> 못지 않게 잔인한 설정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걸 충분히 시각화하지 않습니다. 오대수가 혀를 자르는 장면처럼 말입니다. 전작의 흥행실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까요? 여튼 박찬욱 영화인데 왜 저 정도밖에 보여주지 않지? 실망스러웠습니다.

여튼 이 영화가 감독의 취향대로 B급의 감수성으로 무장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충무로 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시도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영화자체는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안되는 부분도 있고 안이한 설정도 보입니다. 뭣보다 <복수는 나의 것> 전체를 휘감던 그 처절함, 죄없는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운명의 잔임함 같은 것들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우진의 짓거리는 정말 삶이 무료해서 - '이젠 무슨 낙으로 살지'- 저지른 것처럼 느껴지고, 오대수가 그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해 느끼는 슬픔은 그 어처구니없는 설정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타겟을 잘못 설정한 치졸한 복수로 잔인한 운명에 저항하는 처절함을 묘사하는데 더욱 솔직하거나 혹은 더욱 제 취향에 맞으려면 이런 결말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우진은 미도에게 오대수가 아버지임을 밝힌 후 오대수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복수의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그렇듯이 성공한 복수에 만족해하며 다시 자신의 삶을 추스립니다. 부잣집 아들로서의 행복한 삶을 말이죠. 미도는 반쯤 미쳐서 그 최면술사를 살해하고 뭐 가능하다면 이우진에게도...   (2003·11·26 12:28)

Kill Bill: Vol. 1 킬 빌 ★★★☆
Directed by Quentin Tarantino
imdb

타란티노의 6년만의 영화라니, 어찌 설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의 영화를 무지하게 즐긴다거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타란티노가 이번에는 얼마나 새로운 해석 혹은 스타일을 보여줄지 기대되지 않는 영화팬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 홍콩의 6,70년대 쌈질영화에서 영감받은 영화라니! 굉장히 흥미로운 시도잖아요?

결론을 말하자면, 재미는 있습니다만, 그다지 새롭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복수를 위해 점점 더 어려운 상대와 싸우는 저런 전형적인 구조는 장르 자체가 어떤 재미의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장 클로드 반담이 킥 복서로 나오는 그의 초기 영화들도 굉장히 재밌게 봤거든요. 치고받고 싸우는 것을 보고 싶어 저 영화를 찾는다면 썩 만족입니다. Copperhead와 싸우는 첫번째 액션씬은 정말 실감나지요. 무슨 술집에서 88명의 암살단(?)과 싸우는 장면도 나름대로 스타일리쉬하고 멋졌습니다.

하지만 타란티노 영화니까 기대하던 어떤 새로움같은 건 찾아보기 힘드네요. 옛날 스타일대로 함 만들어봤다, 혹은 그런 장르에 대한 타란티노의 애정을 확인해봤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특히 저처럼 저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닌 관객은 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이러저러한 오마주나 인용씬을 찾아내기 힘드니까 타란티노같은 쌈질영화광만큼 저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스크리너로 미리 봤을 땐 심의에 잘릴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극장에선 몇 장면 잘랐더군요.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치는 장면인 것 같은데, 씨발, 어떤 개새끼가 아직도 영화에다 저딴 가위질을 하는지 열불터지는군요.

물론, 내년에 <Kill Bill: Vol. 2>하면 다시 보러갈겁니다.

우마 써먼은 정말 말도안되게 늘씬하더군요. 쿠리야마 치아키는 <주온2>에도 나왔다는군요. 기억안나는데...-_- Sofie 역을 맡은 Julie Dreyfus, 아, 이쁘지 않습니까? -_-; 원래 일본어를 잘한다는군요.   92003·11·23 14:25 )

 

御法度 고핫토 ★★★☆
감 독 :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tojapan    imdb    naver

환상적인 캐스팅이란 이런 거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 중 하나인 아사노 타다노부가 나오고, 비트 다케시가 그 기괴한 느낌의 미소 (혹은 입씰룩임)을 보여줍니다. 꽃미남 다케다 신지가 귀여운 얼굴로 화면을 휘젓고 다니고 재일교포 감독 최양일까지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처음보는 배우입니다만 마츠다 류헤이라는 배우는 정말 묘한 매력을 갖고 있군요. 가슴팍의 여린 근육을 보는 순간 저도 조금 설레였습니다.-_-;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는 <감각의 제국>,<열정의 제국>, <교사형(絞死刑)> 정도를 보았습니다. 그의 좌파성향을 드러내는 초기작들을 별로 보지 못해 그의 영화를 '봤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군요. 여튼 자멸적인 광기어린 성애를 다른 그의 영화들은 소재가 소재니만큼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고핫토>는 <감각의 제국>만큼 노골적이진 않지만, 한 미소년을 두고 벌어지는 정념들과 긴장감은 때로는 아찔하기도 하고 실소를 자아낼만큼 유쾌하기도 했습니다.

칸노가 신선조의 규율을 어긴 어떤 사람을 참수하는 장면은 역겹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저항하기 힘든 아름다움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어떤 격식과 (무사도)정신을 강조하는 사무라이들의 저 변태취향은 충분히 어이없고, 또 이차대전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도 저런 미화된 죽음의 의식에 뿌리를 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형식 혹은 질서의 정치한 아름다움은 저를 감동시키는 뭔가가 있습니다. 물론 죽음이 삶을 지배하는 듯한 불길한 느낌도 듭니다만...

영화랑 관계없는 얘기입니다만, 일본 사람중엔 외우기 힘든 이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시마 나기사도 외우는데 애먹은 이름입니다. 오시마 나기사 인지, 오시마 니기사 인지, 나기사 오시마인지... 또 다른 이름으로는 <금각사>를 쓴 미시마 유키오. 미시미 유키오 인지, 마시미 유키오인지... 이 두 이름을 조합해보면... 미시마 나기사, 오시마 유키오, 나기사 유키오,...    (2003·11·23 13:59 )

 

Gertrud 게르트루드 ★★☆
Directed by Carl Theodor Dreyer
imdb

드레이어의 대표작 중 하나라는군요. 하지만 제겐 드레이어의 공익광고용 단편영화만큼이나 재미없었습니다.

움직임도 별로 없이 롱 테이크로 찍어대는 카메라는 잠자기 딱 안성맞춤입니다. 배우들의 동선도 매우 제한되어 있어 졸지 않고 보는데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별로 인내력이 없었구요.-_-

영화제 팜플렛을 보고 저의 오해와는 달리 드레이어가 진보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을만한 소재를 갖고도 이 영화는 한정없이 진부해집니다. 전직 오페라 가수인 게르트루드는 곧 장관이 되는 남편에게 "자신이 일보다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젊고 잘생긴 피아니스트와 연애질을 합니다. 제가 졸고 있는 사이에 게르트루드를 사랑하는 어떤 남자가 그녀에게 파리로 도망가자고 꼬드긴 것 같은데,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구군요. 또 그녀에게는 이전에 "사랑과 일은 원수다" 라는 낙서를 남겼다고 어떤 시인과도 헤어진 전력이 있는데, 그 시인이 오랜 외국생활과 작품활동으로 매우 성공해서 이제 막 그녀를 찾아와 해묵은 연애감정을 드러냅니다. 같이 도망가자구요. 결국 게르투르드는 지금의 애인인 그 젊은 피아니스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다 버리고 파리로 떠나버립니다. 시간은 흘러 그녀는 할머니가 되었고 자신을 사랑해왔지만 그녀가 결코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친구로만 지낸 한 노인네를 앉혀놓고 자신의 젊었을적 사랑질을 회고합니다. 사랑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결론은 절대적인 사랑은 분명 있고 사랑이 전부다, 라는 거지요.

플롯만 들어봐도 아주 재미없을 거 같죠? 실제 봐도 무척 재미없습니다. 게르트루드는 첫사랑에 실패하고 육체적 쾌락에 빠졌다고 고백하지만 영화 전편을 거쳐 성적 암시의 장치는 찾아볼 수가 없고 물론 성적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있었다면 졸지는 않았을텐데요.

여튼 저러고 의자에 퍼대고 앉아 이남자 저남자에게 진실한 사랑에 관해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별로 이쁘지도 않은 여배우를 지켜보는 것은 곤욕에 가까왔습니다. 드레이어의 영화라는 프리미엄이 없었다면 중간에 나왔을거에요.   (2003·11·23 13:53 )

 

 

De nåede færgen 그들은 간신히 페리에 탔다 ★★★
Directed by Carl Theodor Dreyer
imdb

드레이어의 단편영화 7편을 보고 왔습니다.

좋은 엄마들 Modrehjaelpen | Good Mothers | 1942 | 12min.
마을의 교회 Landsbykirken | The Danish Village Church | 1947 | 14min.
암과의 투쟁 Kampen Mod Kraeften | The Struggle Against Cancer | 1947 | 11min.
그들은 간신히 페리에 탔다 De Naede Faergen | They Caught The Ferry | 1948 | 12min.
토발센 Thorvaldsen | 1949 | 10min.
스토스트렘 다리 Storstromsbroen | The Bridge of Storstrom | 1950 | 7min.
성 속의 성 Et Slot I Et Slot | Castle Within a Castle | 1954 | 9min.

기억나는 것은 <De nåede færgen 그들은 간신히 페리에 탔다> 뿐이군요. 다른 영화들은 공익광고 혹은 홍보영화 같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암과의 투쟁>은 '암인지 의심되면 지체없이 의사를 찾아가 방사선 치료를 받아라'는 내용을 몹시도 고지식하게 그려내어 거의 코믹할 정도였습니다. 흡사 몇년째 영화를 찍지 못하고 대신 이런 홍보 영화를 찍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냉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다른 영화와는 달리 <De nåede færgen>는 영화감독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찍은 영화였습니다. 정해진 시간내에 페리를 타야하는 어떤 오토바이 폭주족(?) 연인이 과속으로 도로를 질주합니다. 12분의 런닝 타임중 오토바이 질주씬이 3/5는 될 것 같습니다.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할 것 없는 아찔한 순간들의 연속. 결말을 알고 나면 이 단편영화의 제목은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잔인한 유머감각이군요.  (2003·11·2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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