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et 오데트 ★★★★☆
Directed by Carl Theodor Dreyer
imdb

베르히만의 실내극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한정된 공간과 인상적인 클로즈업, 또 시련에 닥친 신앙 같은 소재들 때문에 말입니다. 신앙의 문제를 다룬 영화입니다만, 이 영화의 그 투명하고 정화된 느낌은 저같은 무신론자도 감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Inger의 부활 장면은 특히 인상에 남는군요. 그녀가 되살아 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늘게 떨리는 입술 언저리의 근육을 확인한 순간 저 자신도 전율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으로는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http://imdb.com/title/tt0041154/ 에서 딸을 시집보내고 텅 빈 방에서 사과를 깍던 늙은 홀아비의 손, 로베르 브레송의 에서 무셰트가 강에 빠져 죽는 장면 등이 있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씬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군요.

올해 본 가장 멋진 영화 중 한 편이었습니다. < Vredens dag > 와 < Gertrud > 도 이 영화처럼 감동적이라면 $ 72 짜리 <칼 드레이어 DVD 박스셑>을 몹시 사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2003·11·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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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
Directed by Carl Theodor Dreyer
imdb

서울 아트시네마(아트 선재센터)에서 요즘 덴마크 감독인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회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Passion de Jeanne d'Arc, La (1928)>을 무척 재밌게 보았었지요. 그의 다른 영화를 꼭 보고 싶었기 때문에 진작부터 기대하던 회고전이었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드레이어기 만든 뱀파이어 영화라니, 무척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물론 재미있을거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헤어조그의 뱀파이어 영화도 끔찍하게 지루했던 기억이 있어서 말이죠. http://imdb.com/title/tt0079641/

매우 낯설고 음산한 영화였습니다. 뱀파이어에게 물린 그녀가 침대에 누워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는 장면은 상당히 기괴했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는 모호한 설정과 불길한 소음들... 하지만 역시 졸고 말았군요. -_-;;;   (2003·11·17 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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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블루 ★☆
Directed by Derek Jarman
imdb

이전에 본 데릭 자만의 영화는 <가든 Garden, The> http://us.imdb.com/title/tt0099634/ 가 전부였습니다. 전에 학교에서 <퀴어 영화제>를 하려고 준비하면서 상영작 중 하나로 선정하였지요. 영화적으로나  액티비스트로서의 면모로나 가장 존경받는 게이 감독인 데릭 자만의 영화를 포함시키는 것이 영화제의 품격-_-에 필수적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영화도 아닌 저 전위영화는 저같은 밍숭밍숭한 영화광이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게이 청년으로 묘사한 급진성은 흥미로왔지만 의미없는 몸짓으로 일관하는 저 난해한 영화는 제가 '즐기며 감상'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지요.

요즘 아트 선재센터에서 <데릭 자만 영화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를 몹시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었지요. 설마 <가든 Garden, The>보다 재미없으랴,도 싶었고.. 하지만 오늘 본 <블루 Blue>는 아주 학을 떼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저런 영화는 다시 못 볼겁니다.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블루 Blue>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크레딧이 올라가는 부분만 빼곤, 온통 파란 화면뿐입니다. 파랗기만 한 화면에 라디오용 드라마처럼 효과음과 함께 데릭 자만 자신의 길고 긴 독백이 흐릅니다. 이 영화의 정체를 알아차린 순간 다소간의 짜증과 함께 자신에 대한 경멸감이 느껴졌습니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심각한 철학책을 사들곤 뿌듯해하는 자신의 딜레탕트에 대해 느끼는 그런 경멸감.

저 황당한 설정 이면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 즈음 에이즈로 인해 시력을 잃게 된 데릭 자만은 때로 세상이 온통 파래보였던 것 같습니다. 에이즈 치료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그의 자기냉소적인 독백은 반쯤 희극적인만큼 뭉클한 페이소스가 느껴집니다. 음란한 가사 끝에 자기는 게이가 아니다,고 외치는 노래는 호모포비아의 세상에 대한 강한 분노가 느껴집니다. 파란 화면 이면에는 동요하는 감정과 회한과 슬픔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파랗기만 한 화면이고 보니, 저걸 6천원 들여가며 보고 있어야 되나, 심각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감독의 생애와 그가 실제 처한 극한 상황-죽음을 기다리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정보가 없이 그냥 저 영화를 접하게 된다면 저 영화는 예술가의 과도한 자의식이 만들어낸 웃기는 헤프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지 않을까요? 저처럼 딱히 데릭 자만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관객에겐 심심할대로 심심한, 관람료가 아까운 영화였습니다.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길래 잔뜩 기대했었는데, 목소리만 나오는군요. 아무래도 그녀를 보기 위해 데릭 자만의 다른 영화를 다시 보러가야겠습니다.    (2003·11·09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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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 from Heaven 파 프롬 헤븐 ★★★☆
Directed by Todd Haynes
imdb    듀나

이 영화에서 무슨 심각한 정치적 메시지를 찾으려고 정색을 하다가 이내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세트도 색감도 음악도 연기도 오버 투성이거든요. 의도된 연출일겁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고색창연한 고전 멜로 드라마 전통에 대한 오마쥬이거나 혹은 그에 대한 빈정거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oison>이나 <Safe>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감독의 의도같은 건 저 같은 범부는 도통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영화는 재밌었으니까 그걸로 만족.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토드 헤인즈가 감독하고 줄리안 무어가 출연해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게 되는 <Safe>에 대한 그 강렬한 기억 탓에 <파 프롬 헤븐>에서 미국 부르주아 계급의 위기의식같은 걸 읽어내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그런 취지의 영화였다면 이 영화의 완성도는 <Safe>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가 그렇게 휘황찬란한 찬사를 받았던 이유는 그 이상의 무엇을 이 영화가 노렸기 때문이겠죠.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줄리안 무어의 그 오버하는 연기만으로도 저는 숨막혔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바로 아줌마라는 저의 평소 지론은 줄리안 무어 여사 덕분에 확실한 힘을 얻습니다. 아, 줄리안 무어의 품에 안겨 세상을 뜨고 싶습니다. -_-   (2003·11·0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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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
감독 : 장준환
naver

무척 반가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카니발리즘, 고문쇼 등 호러영화의 전형적인 소재를 섞어 이렇게 완성도 높은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호러영화의 전형적인 코드들이 삽입된 영화가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호러영화의 저변이 충분히 확대될 수 있다는 예감을 갖게 합니다.

이 영화 다 좋은데, 마지막, 우뢰매 수준의 외계인 분장은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갑자기 UFO가 나타나 경찰들에게 괴광선을 쏘아대고 강사장이 UFO로 올라가는 이후의 장면들을 넣은 것은 거의 자멸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저런 쓸데없는 장면을 왜 넣었을까요? 앞서 애써 완성한 메시지의 무게감이 저 쓸데없는 장면들 때문에 일순간에 진부한 구호처럼 들리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결국 이 영화를 하나의 우화같은 것으로 읽혀지길 원한 것일까요? 알고보니 강사장은 외계인이었다, 정도의 암시만 줘도 되었을텐데, 굳이 "지구에는 희망이 없다"는 뻔한 대사까지 끼워넣는 짓을 왜 하냔 말입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지구에 희망이 없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텐데요. 저렇게 일일이 다 설명해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은 결국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그 신참내기 형사, 처음에는 참 눈에 거슬리는 캐릭터였습니다. 실력있는 형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설정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저 무슨 서울대 컴플렉스냔 말입니다. 하지만 그 형사를 서울대 출신으로 설정한 것은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강사장을 죽이려는 병구에게 그 서울대 형사가 말합니다. 너의 고통을 다 안다고. 바로 다음 순간, 병구는 그에게 쏘아붙입니다. "너희들이 우리 고통을 안다고? 알면서 너희들은 도대체 뭘했지?"(정확하게 이 대사는 아니었으나 대충 이런 어감의 대사를...-_-) 좋은 배경을 갖고 있으면서, 모순된 사회에 분노를 터뜨리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식을 갖고 있는 듯 연출하는 그런 사람들, 결국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어디까지 할까요? 그의 분노와 동정심은 결국 장신구처럼 자신을 꾸미기 위한 수단인 것은 아닐까요? 영화에서 그 서울대 출신의 형사가 한 일은 결국 병구에게 총을 쏴 강사장을 구한 것입니다. 그 덕택에 승진하겠지요. 가진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준 덕택에 말입니다.

여튼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2003·10·13 23:)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감독 : 이재용
naver    듀나

제가 본 < Dangerous Liaisons > 원작의 영화들 중 가장 웃기고 가장 야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흡사 이대근 주연의 토속에로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지요. 작업 도중 능청스럽게 내뱉는 의고체의 대사들은 딱히 웃어야할 장면도 아닌데도 웃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극이 종반으로 치달으면 제가 본 < Dangerous Liaisons > 원작의 영화들 중 가장 말랑말랑해지고 로맨틱해집니다. 배용준과 이미숙은 원작대로 끝까지 갈등관계를 유지하지만, 스티븐 프리어즈의  < Dangerous Liaisons > 에서 묘사되는 그 숨막힐듯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특히 실망인 부분은 밋밋한 캐릭터라이징입니다. 존 말코비치가 연기한  < Dangerous Liaisons > 의 발몽 역시 윤리적 인간형이긴 합니다. 키아누 리브스의 칼에 찔려 죽으며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 바로 전까지도 그는 Merteuil을 향한 끓는 정염과 뒤늦게 찾아온 낭만적 연애감정을 모두 끌어안고 위험한 에너지를 내뿜는 복잡한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스캔들>의 배용준은 그런 복잡함이 없는 평면적인 캐릭터지요. 전반부는 오입쟁이였지만, 후반부는 이루지못할 운명의 사랑에 빠진, '돌아온 탕아'입니다. 칼맞은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죽는 존 말코비치와 피 질질 흘리며 말등에 올라타 한양서 강화까지 님을 만나러가다가 비명횡사하는 배용준은 그 신파성에 있어 큰 차이를 보입니다.

평면적인 캐릭터라이징은 이미숙 쪽이 더 심합니다. 이미숙은 정말 좋은 느낌의 배우이지만,  < Dangerous Liaisons > 에서 글렌 클로즈가 보여준 그런 압도적인 사악함은 보여주질 못했습니다. 이건 이미숙의 잘못이라기보다 감독 이재용의 잘못 같습니다. 등장 인물들의 갈등의 원인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너무 이해하기 쉽게, 너무 뻔~하게 한정지은 것이지요.

세심하게 준비된 영화의 소품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다른 큰 볼거리는 여인네들의 나신이거나 배용준의 엉덩이겠지요.) 하여튼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줄거리 다 알고 보는 탓에 긴장감은 떨어졌지만, 유럽제 치정극이 조선시대로 이식되어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음미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동숭씨네마텍의 좌석은 아주 거지같습니다. 앞좌석 머리통에 화면 하단이 2/5는 가릴 정도거든요.

"아니, 이것이 언제 이렇게 커졌단 말입니까?"

"어허, 마음은 권인호에게 있고 몸은 조원에게 가있으면서 시집은 유대감에게 온다?"   (2003·10·13 22:17 )

 

Dangerous Liaisons 위험한 관계 ★★★★
Directed by Stephen Frears
imdb

요즘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용의 <스캔들>을 보러 가기위한 준비로, 이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Choderlos de Laclos의 소설 <Dangerous Liaisons>은 여러번 영화화되었었지요. 밀로스 포만의 <Valmont>과 Roger Kumble의 <Cruel Intentions>, 모두 저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입니다. 스티븐 프리어즈 버젼의 <Dangerous Liaisons>은 아직 안봤다고 생각해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한참 보고 있자니, 이 영화, 전에 한 번 보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세 영화 중은 나름의 장점이 있겠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 프리어즈의 이 영화를 최고로 꼽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정이 조금 다를 뿐, 인물들간의 관계와 사건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Dangerous Liaisons>의 John Malkovich과 Glenn Close의 연기는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 단연 돋보입니다. 섹시하기로 말하자면 <Valmont>의 Annette Bening이나 <Cruel Intentions>의 Sarah Michelle Gellar 쪽이 더 섹시하지만, 글렌 클로즈가 내뿜는 그 압도적인 사악함은 느낄 수 없습니다. 존 말코비치의 카리스마야 말할 필요도 없고...  "It's beyond my control."

여튼 스티븐 프리어즈의 이 영화는 <Dangerous Liaisons>을 원작으로 한 (최근의) 영화들 중 단연 최고입니다. 이재용의 <스캔들>을 포함해서 말이죠.

Roger Vadim 버전의 <Dangerous Liaisons>도 있군요. Merteuil 역이 잔 모로 랍니다. 아, 보고 싶군요... http://imdb.com/title/tt0053002/

<Valmont>에서 Valmont 역은 Colin Firth가 맡았군요. 근데 왜 <Bridget Jones's Diary>를 보았을때, 그가 왜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생각되었을까요? 나이를 먹으니...-_-;

Tourvel 역의 Michelle Pfeiffer는 미스캐스팅 같습니다. 제 생각엔 <Age of Innocence, The>나 <Fabulous Baker Boys, The>에서처럼 섹시하고 위험해보이는 것이 그녀에게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   ((2003·10·13 22:07))

 

菊次郞の夏 기쿠지로의 여름 ★★★★
감독 : 기타노 다케시 (北野武)
tojapan    office-kitano

기타노 다케시의 본업은 코미디언이었다지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코미디언다운 면모를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하고 있냐!(みんな∼やってるか!)>같은 초현실적인 코미디 영화가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힘들지 않을까 싶군요. 여튼 이 영화 <菊次郞の夏 기쿠지로의 여름>를 보면 그가 과연 코미디언이구나, 싶어집니다. 엉망으로 망가지는 장면들이나 만담을 하듯 쏟아내는 헛소리를 들어보며 말이죠.  

죽음이나 자기파괴의 욕망없이 한없이 착하게만 흘러가는 이 영화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라니 조금 낯설군요. 그의 또다른 착한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조차 결국엔 주인공 남자애가 죽었더랬는데 말입니다.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인데, 엄마와의 재회가 있은 후 영화는 아직 40여분이나 남았습니다. 할 얘기는 다 한 거같은데 남은 시간동안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걸까, 궁금했습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다다오의 여름방학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는 아저씨들의 분투기였습니다. 온갖 재롱을 다 떨지요. 특히 문어아저씨가 귀여웠습니다. 다다오는 정말 행복했을거에요.

저글링을 하던 그 여배우, 무척 매력적이던데... 기쿠지로의 부인으로 나오는 키시모토 가요코(岸本加世子)가 <하나비>의 병든 아내이자 <비밀>의 엄마이고, <데릴사위 2003>의 그 우락부락한 여형사였다니, 믿을 수 없군요.

여튼 보고나면 무척 행복해지는 로드무비였습니다.   (2003·10·01 12:42 )

BROTHER 브라더 ★★★☆
감독 :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naver    tojapan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중 가장 잔인하군요. 잘린 손가락이 세 개, 할복, 지 머리에 총 쏘는 놈, 그의 영화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는 영화일 것입니다. 한 50명은 죽었지 싶습니다.

무슨 영화제 수상 같은 것은 전혀 염두에 안두고, 영화주간지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깨에 힘을 쭉 빼고 만든 영화일 것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다케시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입니다. 대중적이라면 이상할까요? 여튼 야쿠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좋아할만한 영화입니다. 가장 잔인한 순간에 비트 다케시가 일그러트리듯 비트는 미소는 거의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삶과 죽음을 초탈한 듯 자멸로 돌진하는 미친놈들의 폭력행위들은 묘한 비장감마저 줍니다.

하지만 <하나비>나 <소나티네> <키즈 리턴>같은 그의 영화에 감동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상당히 실망일 것입니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지 배를 가르는 오오스기 렌이나 야마모토(비트 다케시 분) 패거리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지 머리에 총을 쏘는 그 의리있는 똘마니 같은 캐릭터가 조장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다케시의 이전 영화가 보여주었던 죽음에 대한 그 쿨~한 냉담과는 전혀 다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장면들을 그냥 웃자고 넣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거 다케시에게 실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70년대 의협깡패물도 아니고 말이죠.

이 영화의 가장 난해한 장면은 그 모든 소동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Omar Epps가, 야마모타가 남겨준 가방안에 들어 있는 돈을 발견하고 뭐라고 궁시렁궁시렁 욕을 했다가 웃었다나 혼자 지랄을 하는, 그 낯뜨거운 롱 테이크입니다. 이 씬에 대해서는 imdb의 user들도 하나같이 저주를 퍼붓더군요. 도대체 저 장면은 왜 넣었을까요? 바로 앞 장면, 그러니까 야마모토가 수십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 있는 장면에서 끝났다면, 나름대로 비장미도 느껴지는 근사한 결말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렇게 심각한 척 감상적으로 끝나는 장면이 기타노 다케시의 체질에 안맞았던 것일까요? 하지만 기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쿨~한 척 하면서도 때로 무지하게 감상적인 경우가 종종 있었잖습니까?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나 <하나비>의 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브라더>를 그 감상적인 장면에서 끝내는 것에 다케시가 크게 반감을 가졌을 것같지도 않은데...

여튼 이 영화는 무척 매력적인 야쿠자 영화입니다. 죽음과 대면하는 저 냉담한 반응과 부조리한 미소라는, 다케시 영화의 인장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좀 아니다 싶은 장면들도 발견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다케시는 정말 다케시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003·09·29 23:27)

 

영매 ★★★★
감독 박기복
naver

대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동기중에 피부가 무척 험한 녀석이 있었습니다. 뽀드락지 같은 것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고, 그 뽀드락지가 터진 자리는 마치 운석이 떨어진 구덩이처럼 뚜렷한 흉터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온갖 피부연고를 뒤집어쓴 피부는 검은듯 붉었으며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듯한 피부는 보고 있노라면 좀 속이 불편해집니다. 이후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제가 제대한 후 다시 만난 그 친구의 피부는 거의 정상인의 것과 다름이 없을만큼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1학년 때는 이 녀석,  자신의 피부에 대해 무척 많은 걱정을 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인가 기숙사 제 방에 그 친구와 다른 여자 동기 한 명이 놀러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녀석의 피부병이 화제로 올랐습니다. 당연히 그 녀석은 온갖 치료를 다 받아보았으나 상태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답니다. 그 이야기에 좀 안타까와진 저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굿'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라고 말했지요. 저는 진지하게 말했고 사실 진지했습니다. 제 동기들의 어이없어하는 표정과 쏟아진 핀잔은 쉽게 짐작이 가시죠? 저는 과학기술의 첨단을 걷고 있는 공과대학의 학생이었지만, 가까운 친척분 중에 무당이 계셨기 때문에, 무당이 매개하는 무속의 세계 또한 퍽이나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굿'이라는 방법이 어떤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 사례-인과관계는 불분명하더라도-를 여럿 알고 있었습니다. 무속신앙은 제가 보내온 유년,청소년기의 여러 기억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었던 것입니다.

동기녀석들의 핀잔 이후, 딱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저는 무속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을 의식적으로 배척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아주 공대생다운 방식으로 무속신앙을 이해하려고 작정한 것이었지요. 무속신앙은 전근대사회의 무지를 드러내는 가장 전형적인 예이고, 아직도 그런 풍습이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욱 철저히 근대화-과학화,합리화-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당들이 보여주는 빙의현상은 일종의 환각상태일 뿐이며, 근거없는 협박으로 무지한 사람의 돈을 욹어먹는 행위는 사기나 다름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이퍼텍 나다에서 <영매>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만, 도통 관심이 가질 않았습니다. TV에서 여름만 되면 방영하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괴담같은 것들과 다를바가 뭐 있으랴, 싶었거든요. 지난 목요일, 볼만한 영화가 한 편이라도 있었으면, <영매>를 보러가지 않았을거에요.

게다가, 짐짓 객관적인 듯 포장하지만 결국엔 뻔한 의도가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변영주의 <숨결> 마지막 씬, 위안부로 끌려간 후 고향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평생을 마쳐야했던, 어느 한많은 인생을 산 할머니가 나오지요. 카메라는 그 할머니의 늙을대로 늙어버린 나신을 천천히 훑으며, 관객들이 그 깊은 주름과 어두운 살빛에서 역사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해온 폭력을 기억하라고 강요합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지만, 너무 노골적이죠. 그 장면의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세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함에서 문득 감독의 끓는 분노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다큐멘터리라면 감독은 어디까지나 냉철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분노는 관객인 제가 느끼도록 해야하는데 말이죠.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는 더 심하죠. 차라리 화를 내고 말일이지, 이 인간은 계속 빈정대다가 애꿎은 사람 하나 앉혀놓고 온갖 오버된 감정을 쏟아냅니다. 차라리 <의지의 승리>같은 프로파겐다 영화가 더 진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영매>도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감독은 세습무 혹은 강신무 개개인의 고단한 일생을 감상적으로 포장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만한 연세를 드신 분들 중에 사연없는 인생을 사신 분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영화 초반 15분 여를 장식하는 포항 풍어제는 분명 이 다큐멘터리의 민속지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지만,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과 비교해보면 일관성이 없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 이후는 <이것이 인생이다>의 극장판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신무 박미정이 비명횡사한 아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벌인 굿 장면에서 전 몇년만에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와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어린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굿'이라는 형식을 통해 '삶'을 위로하는 방식에 대한 감동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 강신무는 단지 환각에 취해 있었을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굿판이 절정에 이르고 강신무가 죽은 아들의 행세를 하며 슬퍼하는 어미와 가족을 달래는 순간이 되면, 그 '빙의'현상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장소에 있던 그 누구도 그 강신무에 죽은 아들의 혼이 들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그런 믿음의 단계를 통해 그들은 응어리진 한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과 슬픔에서 그들을 끌어내고 다시 삶의 의지를 복둗어주고자 하는, 선의에 찬 간절한 희망인 것이지요.

무당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사람들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굿과 무당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들을 보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위안을 받으며 삶의 의지를 되찾습니다. 과학이라는, 편협하고 완고한 세계관으론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좋은 책이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만들 듯이, 좋은 영화도 그러합니다. 교육적인 효과에 있어서나 감동의 깊이에 있어서나 정말 좋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2003·09·2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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