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enous 블러드 솔져 ★★★☆
Directed by Antonia Bird
imdb

imdb는 이 영화에 대해 Comedy / Western / Drama / Horror / ... 라고 장르를 구분해놓았습니다. 카니발리즘을 다루는, 기본적으로 호러 영화입니다만 동시에 블랙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썩 잘 만든 호러영화. 여기저기서 상도 꽤 받았군요. 호러팬들 사이에선 나름대로 호평받고 있는 영화랍니다.

이 영화는 성적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여자가 한 명 나오는데 인디언 족 중년의 아줌마거든요. 이런 호러 영화도 퍽 드물죠. 보통 호러 영화에선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비슷한 본질의 본능인 듯 묘사하잖아요. 거기다 이 영화처럼 '인육을 먹는다'는 설정까지 덧붙이면, 즉, 야하고 무섭고 먹.는. 설정의 영화라면 그 영화에 등장할만한 장면들이 바로 연상됩니다. 말하자면...<팔선반점의 인육만두>나 <카니발 홀로코스트>정도...-_-; 하지만 이 영화는 오로지 '먹는다'는 행위로만 영화를 풀어갑니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인육을 먹으면 그 사람의 힘까지도 먹는 사람에게 전이된다는군요. 많이 먹으면 많이 먹을수록 강해진다는 겁니다. 헤헤... 과연 그럴려나...-_-;

가이 피어스는 전혀 표정이 바뀌지 않는 뻣뻣한 얼굴입니다. 보톡스를 맞았나... 반면  로버트 칼라일의 미친놈 연기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좋은 배우군요. 압권은 아이브스 대령의 정체가 밝혀지는, 동굴 입구 씬. David Arquette도 나오는데, 카메오도 아닌 것이 몇 장면 안나오는군요. Jeremy Davies는 <Secretary>에 나왔던 그 배우군요. 눈여겨 봐둬야할 배우입니다. <Dogville>에도 나오는군요.  (2003·09·24 13:20 )

 

Secretary 세크리터리 ★★★☆
Directed by Steven Shainberg
imdb   
도대체 개봉명을 <비서> 대신 <세크리터리>라고 갖다 붙인 의도가 무엇일까요? 영어가 좋아 아주 미치겠는 사람인가 봅니다. 속물임을 드러내는 방법도 가지가지군요.

매저키스트와 새디스트의 사랑을 다룬 영화라길래 무척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별로 다를 바가 없군요. 원래 다를 바가 없는 건지, 아니면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을 다룬 코믹 멜러물이라는 장르의 규칙에 함몰되버린 건지, 잘 모르겠군요.

두 연인의 奇行이 무척 흥미롭긴 합니다만 뭔가 공허한 느낌입니다. 야생동물의 생태를 보여주는 TV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이상한 행동들을 하니까 재밌기는 합니다만, 왜 맞아야 행복해지는지, 혹은 왜 학대해야 흥분을 느끼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군요. 감정적으로 이 괴상한 연인들에게 공감할 수도 없구요.

할러웨이가 에드워드에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보이는 씬은 아주 진부한 느낌입니다. 만약 이 영화의 두 연인이 매저키스트와 새디스트가 아니라 게이 혹은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라며 저렇듯 눈물겨운 시위(?)를 하고, 이에 감명받은 연인이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물론 그런 장면은 정치적으로 무척 올바른 장면이겠지만, 조악한 선전영화를 보는 듯 진부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소재의 '별남'만을 강조했을 뿐 결국 뻔한 멜로물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좀 더 막가보지, 아쉽군요.

Maggie Gyllenhaal이라는 배우, 저 꾸부정한 어깨, 자꾸 보니 무척 사랑스럽군요.   (2003·09·18 23:43 )

Legally Blonde 2: Red, White & Blonde 금발이 너무해 2 ★★★
Directed by Charles Herman-Wurmfeld
imdb

전에 이 영화의 1편도 보았습니다. '금발은 멍청하다'는 속설을 뒤집으며 '사실 일부 금발은 멍청하지 않다'며 수줍은 주장을 했더랬죠, 1편은. 그런데 2편에서는 숫제 '금발의 삶의 방식이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군요. 물론 이 영화를 보는 그 누구도 그런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금발이 바꾼 세상은 바뀌기 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금발이 지키려는 것은 기껏해야 애완견의 생명일 뿐이니까요. 애완견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아랍의 이교도들에게 대포를 쏘아대는 자신의 국가에 침묵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 금발의 윤리관 안에선 양립가능한가 봅니다.

몇몇 장면들- 특히 엘이 키우는 강아지가 '게이'임이 밝혀지는 장면-은 무척 웃기지만, 웃고나도 찝찝한 기분이군요.  

감독은 - '이브의 아름다운 유혹'이던가 어쩐가 하는 레즈비언 영화를 만들었던 그 감독입니다.  (2003·09·18 23:35 )

 

Jeepers Creepers 지퍼스 크리퍼스 ★★★☆
Directed by Victor Salva
imdb    naver

잘 만든 호러 영화라는 평이 많군요.

처음 30여분, 그러니까 Darry가 그 교회의 지하실에서 수백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 장면까지, 이 영화는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제가 본 호러 영화 중에 가장 뛰어난 도입부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요. 살인마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은 구토라도 할 듯 불안하게 만듭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가 시꺼먼 트럭으로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추격씬도 긴장감 넘치는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살인마가 잘라낸 목을 손에 들고 시체의 혀를 뽑아먹는-_-; 씬도 충분히 기괴하고 역겹고 무서웠구요.

이 영화에는 저렇게 빛나는 장면과 실소를 자아내는 어설픈 장면들이 뒤섞여 있어, 코폴라가 제작했다지만, 매끈하다기보다 거칠고 덜 다듬어진 모습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난데없이 발휘되는 남매애는 어이없습니다. 그 흑인 영매의 예언이 이 영화에서 한 역할이 무엇인지도 애매하구요. 저예산 영화임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조악한 분장도 눈에 거슬립니다. 또 후반부 경찰씬 이후는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져 다소 지루해집니다.  

그러나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굉장히 무섭고 재밌는 공포영화입니다. 중반부까지 이 영화는 '최고'입니다. 미주에서 <Jeepers Creepers 2>가 개봉했다는데 기대되는군요.  

어딘지 낯익은 장면 혹은 설정들이 눈에 띄는군요. 조지 로메르의 <Night of the Living Dead>, 히치콕의 <Family Business>,<Birds>, 스필버그의 <Duel>...   (2003·09·09 09:02 )


呪怨2 주온2 ★★☆
감 독 : 시미즈 다카시(淸水崇)
naver

요즘 저를 가장 열광시키는 공포영화는 바로 <주온>입니다. 영화라면 요즘엔 집에서 동영상으로 떼우는 저는 <주온1>에 이어 <주온2>도 극장에 가서 보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개봉 당일날 말이죠. 그만큼 기대를 했습니다.

<주온2>가 저의 기대치에 만족을 했느냐면, 글쎄요... 이 영화는 <주온1>이 그랬던 것처럼, 비디오용 영화가 극장용 영화로 '확대'되어 만들어졌다는 출신상의 유래가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비디오판 <주온>은 불친절한 영화였습니다. 설명이 부족했지요. 저게 귀신이라는 건 알겠는데 저 사람들이 왜 갑자기 여기서 죽어나가는 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극장용 <주온>은 설명을 해줍니다. 특히 <주온2>는 주온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저 저주의 정체를 알 수 있도록 시시콜콜 설명을 해주지요. 또 각 에피소드들에 스토리를 강화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요령있게 해주는 괴담처럼 이야기의 아귀가 짝 들어맞습니다. 특히 12시 27분이 되면 벽에서 울리는 정체모를 쿵쿵거림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그렇습니다. 그 덕분에 극장판 <주온2>는 보다 이해하기 쉽고 몰입하기 쉬운 영화가 되었습니다. VTR을 통해 몇몇 호러무비 매니아에게 소비되려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여러 종류의 관객들을 만족시키려면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설명조'가 이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과 기괴함을 없애버렸습니다. 비디오판 <주온>의 공포를 즐기는 데에는 설명이 필요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애매모호함이 더욱 공포를 가중키셨지요. 가장 일상적인 공간과 상황이 순식간에 공포의 공간과 상황으로 바뀝니다. 창밖으론 눈부신 햇빛이 넘쳐나는데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에 공포감을 느끼던 과외선생은-_-; 기어이 벽장을 열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의해 벽장안의 어둠속으로 끌려갑니다. 이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저주의 순간들이 점차 그 집에 둘러싼 원한의 고리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거 굉장한 공포영화구나, 싶어졌지요. 스토리가 없어도 그 공포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각 에피소드들이 어떤 스토리로 공포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명과 음향과 적절한 타이밍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 장면은 만들어질 수 있고 비디오판 <주온>은 그것을 잘 활용했지요.

시리즈물이라는 한계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저주받은 집이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공포의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걸 극복하려고 극장판에선 저주의 영역이 그 집 밖으로 확장되었습니다만, 결국엔 동일한 아줌마 귀신과 아이 귀신이 나올 수 밖에 없지요. 고다츠 밑에서 빠꼼히 들여다보고있는 아이 귀신의 모습은 낯익어서 정겹기까지 합니다. 세번쯤 클로즈업되는 엄마귀신의 얼굴도 저로선 별로 무섭지 않더군요, 하도 봐와서.

아마도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그 여고생에 관한 에피소드일 것입니다. 전편을 통해 반복하는 '시공간 뒤틀기'가 가장 난해한 모습으로 나타나거든요. 하지만 이 에피소드 역시 감독의 야심은 드러날지언정 무섭지는 않더군요.

한마디로 이 영화는 질립니다. 똑같은 것이라 '지겹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래도 '무섭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비디오판 2편과 극장판 2편 중에서 극장판 <주온2>는 가장 안무섭습니다. 스즈키 코지의 <링>처럼 뭔가 획기적인 스케일의 확장을 이뤄낼 재간이 없다면 이쯤에서 그만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온3>는 주온 시리즈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영화가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003·09·04 22:41)

 

 

Identity 아이덴티티 ★★★☆
directed by James Mangold
imdb    naver 

imdb에 누군가가 이 영화에 대해 "좋은 영화는 큰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comment를 달아놓았더군요. 존 쿠색이나 레이 리오타 같은 좋은 배우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들의 개런티가 탄탄한 시나리오와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다는 이 영화의 전략을 바꿀만큼 많은 액수는 아닐거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어딘지 낯익은 소재들이 눈에 띕니다. 희생자에게서 발견되는 방 열쇠들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서 힌트를 얻었음이 분명하고, 존 쿠색이 자신의 정체를 거울을 통해 알게 되는 장면은 팡 브라더스의 <The eye>를 연상하게 만들더군요. 사라지는 시체나 정체가 의심스런 경찰같은 소재는 이 장르에서 거의 클리쉐처럼 사용되는 것들이지요. 결정적으로 이 모든 소동들이 결국 등장인물들 중 한 명의 정신분열의 결과일 뿐이라는 설정은, 하도 닳고 달아서 거의 배신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낯익은 소재들을 주물럭거려 만들어낸 이 영화는 무척 새로운 느낌입니다. 일종의 맥거핀인데, 영화는 종반부에 치달을 때까지 연속된 살인과 기이한 현상들이 어떤 초자연적인 의지에 의해 일어나고 있음을 넌지시 암시합니다. 한 인물의 사소한 행동의 결과가 연쇄반응을 일으켜 결국 10명의 등장인물을 외딴 모텔에 모이게 되는, 그 인상적인 도입부부터가 그러하지요. 모든 인물들의 생일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장면에 이르르면, 이젠 어디서 어떤 괴물 혹은 유령이 튀어나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이함이 조성됩니다. 이제 이 영화는 오컬트의 세계로 뛰어들 작정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판 20여분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이 괴담의 정체가 실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개인적으론 영화 막판에 가서 "결국 다 얘가 미쳐서 그랬던거다"라는 식으로 해명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장화,홍련>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 그런 해명이 상상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증거를 잔뜩 보여줍니다. 복잡하게 꼬이긴 했지만 듣고 보면 충분히 납득가능한 설명-10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자라는 사실-을 정교하게 늘어놓는 솜씨를 보고 있자니 결국 '내가 졌다'라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감독 혹은 시나라오 작가의 능숙한 솜씨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결말은 충분히 예측가능할만큼, 다중인격자를 다룬 영화의 전형적인 결말이었지만, 이 영화를 본 어느 누가 마지막 씬 이전에 그런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검색해보니 <Girl, Interrupted>(처음 만난 자유,던가, 그런 이름으로 출시되었습니다.)을 만든 감독이군요. 이 감독의 다음 영화가 무척 기대된다,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 영화, 상당히 잘 만든 호러 스릴러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 개봉은 못할 것 같지만...   (2003·08·24 00:24)

28 Days Later... 28일 후 ★★★☆
Directed by Danny Boyle
imdb    듀나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지요. 전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대니 보일이 만든 최고의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최근 영화 <인질>이나 <비치>보다는 훨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근사한 '좀비'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좀비'영화라고 구분짓는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 부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좀비'가 '걸어다니는 시체'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infected들은 좀비가 아니지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뿐이지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니까요. 좀비의 생태학도 이들에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비감염자를 공격하는 이유는 좀비 특유의 '허기'가 아닙니다. 그들을 감염시킨 바이러스의 원천이었던 원숭이에게 실험용으로 주입된 '공격성' 때문입니다. 또 아무때나 돌아다니는 전통적인 좀비와 달리 이 infected들은 이상스럽게도 낮엔 자고 주로 밤에 돌아다닙니다. 만약 이 infected들을 좀비로 분류할 수 있다면 역대 최강의 좀비군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느릿느릿 걸어다녀 발만 빠르다면 대충 피할 수 있을 것같은 전통적인 좀비와 달리, 이 infected들은 정상인에 버금가는 운동력을 보여줍니다. 저렇게 빨리 뛰어다니는데다가 숫자까지 많고보니, 어떻게 배겨낼 수 있겠습니까?

이 영화를 '좀비영화'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는,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공포는 좀비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 발빠른 infected들은 충분히 공포스러운 존재이지만, 세 명의 주요인물 Jim, Selena, Hannah가 처하게 되는 가장 큰 공포는 좀비들이 아니라 비감염자들에 의해 조장됩니다. Henry소령이 말한 것처럼,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의 세상은 인간(좀비가 아니라)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역사시대 이래 지속되어온 인간 세상의 룰이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일 뿐입니다. 막강한 야수가 호시탐탐 원시인을 노렸던 석기시대와 다를 바가 없는 거지요. 이 영화의 재현된 석기시대에서 총과 조직이라는 파워를 지닌 일군의 군인들은 역시 석기시대의 원시인들처럼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고 계획합니다. 결국 지뢰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견고한 요새는 야만과 원시성 앞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자신의 '암컷'을 지키려는 Jim의 압도적이고 원시적인 분노앞에 자동소총은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고보면 이 영화가 뭔가 심각한 주제를 말하려나보다,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Jim 일행이 대형할인매장에서 물건을 카트안에 쓸어담는 장면에서, 감독은 자본주의의 규칙을 위반하는 대리만족을 관객들이 느끼도록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지 로메로의 에서 좀비가 되고도 쇼핑이라도 하듯 백화점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을 통해 자본주의를 풍자하던 그런 예리함이 부족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감독의 조국인 영국에 대한 혐오와 절망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국가 자체의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후 외부(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영국이 바다로 격리된 탓에 바이러스의 전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다른 국가)로부터의 지원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할 만큼 영국에 염증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공포감' 관점에선 썩 만족스런 영화는 아닙니다. 인육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아닌 저 감염자들은 조만간 굶어죽을 것이라는 점이 영화의 진행과 함께 점점 뚜렷해지고, 남은 문제는 감염자들이 다 죽을 때까지 견뎌내는 것 뿐입니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 시리즈나 최근의 <레지던트 이블>처럼, 세상이 이전상태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는 절망감이 이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지요. 디지털 카메라의 낯선 질감은 감염자들의 얼굴을 무척 사실감있게 느끼게 하지만, 감염자들이 비감염자를 공격하는 장면에서는 사지절단이나 내장적출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대신 카메라는 버드 아이 뷰의 위치로 물러나버려 좀 심심해집니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마지막에 이 잔인한 현실에서도 꽃피는 '사랑'이라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기껏 이렇게 끝낼 생각이었더란말이냐, 잔뜩 기대하고 있던 호러팬들을 실망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밌습니다. 좀비영화임을 앞세워 호러팬을 유혹함과 동시에 여러 층위의 의미로 해석가능한 내러티브, 그리고 사랑의 완성과 해피엔딩이라는 상업적으로 안전한 결말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영악한 영화입니다.  (2003·08·22 18:02 )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
directed by 봉만대
naver

여균동의 <미인>과 비교해보면 이 에로영화가 갖춘 장점들을 쉽게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미인>의 히로인 이지현은 아름다운 몸매와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를 가진 매력적인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대사처리가 마치 구연동화를 읽는 듯 했지요. 같이 출연한 오지호란 남자배우는 순정만화 주인공같은 로맨틱한 얼굴에 최소한의 근육만으로 이루어진 미끈한 몸매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영화 내내 우울하면서도 어딘지 초월적인 분위기의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엑스터시의 순간에도 한줌의 호흡도 흐트러뜨리지 않는 오지호를 보고 있으면, 혹시 저 남자, 게이가 아닐까 의심스러웠습니다. 반면 <맛있는 섹스...>의 두 주인공은 현실감있는 캐릭터들입니다. 봉만대표 에로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사실감 넘치는 대사와 리얼한 사운드라고 하지요. 이 영화의 섹스씬 역시 그런 미덕과 함께 마치 옆에서 훔쳐보는 듯한 감질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김서형이라는 배우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탐욕스럽게 자신의 나신을 훑어대는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의 성욕을 자유로이 향유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는 당당한 여성상이 창조될 수 있었던 것은, 김서형이라는 배우의 저 당돌하고도 자신만만한 표정과 몸짓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주 이쁜 몸매입니다.

제가 본 봉만대 영화는 <스파링 파트너> 뿐입니다. 봉만대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봤는데, 뭐 이런 신기한 에로영화가 다 있나 싶었지요. 하지만 현란한 카메라웤과 리얼한 연기로 빛나는 전반부와 달리, 그 영화의 결말은 영화 형식의 참신함을 무색하게 할만큼 불쾌하거나 진부했습니다. 형부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처제가 강간을 당한 후 어딘가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나버렸거든요. <스파링 파트너>만 가지고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평가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봉만대 에로영화가 굉장히 전복적인 섹스관이나 애정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그런 봉만대가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더니 아주 전형적인 멜로영화의 관습을 따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구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멜로영화의 관습을 적극 차용하고서도 이렇게 야하게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이 영화의 가치가 확보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지독하게 감상적인 멜로영화를 찍어대던 곽지균이 만든 <청춘>이란 에로영화와 에로영화 전문 감독이었다가 이제 처음 스토리가 있는 멜로영화를 찍은 봉만대의 <맛있는 섹스...>는 얼마나 다른 모양새인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여성분들이 이 영화에 호의를 보였다고 들었습니다. 김서형이라는 캐릭터가 대한국민 미혼여성들의 섹스관- 실제의 반영이든 이상적 모델이든간에 - 을 얼마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김서형의 섹스관에는 약간 자기모순적인 면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평생 한남자와만 섹스를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는 섹스는 한 번에 한 남자하고만 한다, 즉 이 사람과 연애중일 때는 이 사람하고만 한다,는 것이 그녀의 섹스관입니다. 결국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섹스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녀가 성우와 처음 만난 날 바로 섹스를 했고, 당시 둘은 물론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섹스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 그녀에게 이번 케이스는 단지 예외적인 상황일 뿐인가요? 왜 그녀는 사랑은 섹스의 전제조건이라는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요? 그건 결국 낭만적 사랑이라는 환상의 덫에 한쪽발이 걸려버린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면서 섹스도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왜 꼭 사랑할 때만 섹스해야하냔 말이죠.

전 이 영화가 동시대 여성들의 섹스관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반영했다면 봉만대 감독의 혹은 동시대 남성들의 욕망이 투사된 섹스관이겠지요. 그것도 아주 유치한 욕망이. 사실 요즘 남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처녀'이기를 바란다든지, 그런 터무니없는 욕심까지 부리지는 않습니다. 여성들도 자신의 성욕을 나름대로 향유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거죠. 하지만 자신의 여자가 나 이전에 다른 남자랑 섹스를 했다는 건 감정적으로 게 받아들이기 힘들지요. 때문에 자기 여자의 예전 섹스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섹스한다, 한번에 한 명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극중 서형의 섹스관은 남자들이 요즘 여성들에게 바라는, 그녀들의 섹스관이길 바라는, 그런 섹스관인 것이지요.  

한편 이 영화를 남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척 씁쓰레하고 서글픈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자들에겐 기본적으로 성욕이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극중 서형처럼 다른 뭔가에 부속되는 이차적인 욕망도 아닙니다. 성욕은 남성에게 거의 언제나 0순위인 것입니다. 섬세하고 사려깊은 감정은 성욕을 어떤 방식으로든 다.스.리.고. 나야 가능해집니다. 서형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섹스를 강요하는 성수의 모습은 물론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성욕은 때로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게 할만큼 압도적인 힘으로 남자의 머리를 하얗게 비우게 만듭니다. 3개월전에 헤어진 서형에게 구질구질하게도 "너를 갖고 싶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남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구질구질한지 몰라서 저런 소리하겠습니까? 노예의 삶이 불쌍하다면 성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마는 남자의 삶도 불쌍합니다.  (2003·08·18 22:29)

 

キュア 큐어 ★★★★
Directed by 黑澤淸
naver

제가 본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인간합격>, <위대한 환영>, <카리스마>였습니다.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준, 저는 부적절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를 공포영화 감독으로 알리게 한 대표작 <큐어>는 어제야 비로소 보게 되었습니다.

씨네마테크를 자주 드나들던 그해 가을과 겨울, 기요시의 <인간합격>과 <카리스마>는 그때 본 수많은 걸작중에서도 특히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주었던 영화였습니다. (<위대한 환영>은 무척 난해한 영화라서...) 검은 작업복을 입은 일꾼들이 규칙적인 템포로 해머로 전 고용주의 머리를 내리치는 부조리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군요.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애매한 상징성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산함까지, 다소 난해하고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눈을 땔 수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인간합격>은 '드라마게임'같은 소재로 만든 편안한(?) 영화였습니다. 이미 끝장나버려 갈갈이 흩어진 가족들을 다시 모아, 그가 혼수상태에 빠지기 10년전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는 청년 유타카의 이야기지요. 가족의 짧은 해후 후 갑자기 찾아온 유타카의 죽음...

어제 본 <큐어>는 명성답게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공포영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Se7en>이 공포영화라기보다 범죄 스릴러인 것처럼. <큐어>는 오컬티즘에 관해서도 말하지만 결국 오컬티즘과 관련된 설명은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게 처리해서 관련성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관객을 자극하는 감각이 '공포'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런 면에선 공포영화, 그것도 아주 살떨리는 공포영화라고 말해도 괜찮겠지요. 마미야가 최면술로 평판좋은 초등학교 선생, 사람좋은 노순경, 성실한 여의사 등에게 처참한 살인을 암시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당신은 누구야?"라고 물으며 "당신의 이야기를 해달라"라 말할 뿐입니다. 그 질문들은 그 선량한 사람들은 안에 잠들어 있던 불안과 분노를 일깨우고 결국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 사람들은 특별히 사연많은 인생을 살았거나 억눌린 유년의 상처가 큰 사람들도 아닙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지요. 어느날 그들은 정체모를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정체를 밝히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이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일상의 평온함 혹은 지루함 밑에 감춰져있는 은밀한 불안과 상처는 없습니까?

그렇다고 얼굴 피부가 벗겨지도록 칼부림을 한다는 건, 그렇습니다,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지요. 하지만 극중 마미야가, 그리고 구로사와 기요시가 영화를 통해 드러내듯 인간 존재의 기반은 불안합니다. 근본적인 질문 몇마디에 저렇게 손쉽게 그들의 인생이 살인자로 돌변했듯이, 우리도 자신의 삶을 무너지기 쉬운 기반위에서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미야가 여의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며 그녀의 오래된 상처를 건드릴 때, 그리고 형사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에게 질문을 던질 때, 관객인 저 자신도 무서웠습니다. 그들 못지않게 많은 불안과 불만을 가진 저는 누구보다 쉽게 마미야의 희생양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이 영화의 공포는 바로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비범한 연쇄살인사건은 인간존재의 보편적인 면을 반영합니다. 자신의 이야기인데 안 무서울 수가 없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설명할 땐 항상 고다르의 영향을 이야기하더군요. 글쎄요.. 뭘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점프컷이나 배우들이 입체감없이 움직이는 동선과 카메라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주로 롱테이크와 롱 숏으로 인물들을 잡아내고 특히 백주 대낮에 느닷없이 벌어지는 살인 장면에 그 쇼킹함을 더합니다. 청각세포를 자극하는 의미없는 소음도 영화의 불안감을 높이고요. 낯선 방식의 편집은 영화의 기괴함을 더합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웃기는 부분은 실로 어처구니없이 등장합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부인을 뒤치닥거리 하기 힘들어진 형사(야쿠쇼 코지)는 마미야의 집을 수색하다가 영감처럼 자신의 부인이 자살했을 거라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집에 달려 들어온 순간 그녀는 천장에 목을 매고 있고 야쿠쇼 코지는 절규하며 무너집니다. (고통에 일그러진 야쿠쇼 코지의 얼굴, 대단했습니다. 야쿠쇼 코지는 정말 뛰어난 배우입니다. 어디 감히 안성기 따위를 야쿠쇼 코지한테 비유하는지... -_-) 하지만 다음 순간 그건 단지 환상, 마미야에 의해 증폭된, 무엇보다 그 자신히 은밀히 바라고 있던 환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 순간의 허탈함이란...

여튼 이 영화, 굉장합니다. 올해의 best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배급사가 이 영화를 수입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당분간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재미없으니까. 하지만 만약 개봉한다면 꼭 보시길. 멋진 영화입니다.   (2003·08·03 10:43 )


아래는 영화제 팜플렛에서 펍니다..

TITLE (K)  큐어
 
TITLE (E)  Cure
 
TITLE (O)  キュア
 
DIRECTOR  구로사와 기요시   Kurosawa Kiyoshi
 
ADDITION  1997 | 35mm  | 111min  | 일본  | col  

공포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보여주면서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해준 대표작. 세기말의 어두운 도시, 목에 X자 모양의 상처를 입고 난자당한 살인사건이 잇달아 일어난다. 하지만 정작 범인들은 살해동기조차 기억하지 못하며, 수사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중 담당형사 다카베는 기억상실에 걸린 청년 마미야가 일련의 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의대생이었던 마미야는 최면을 통해 사람들의 살해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아내의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던 다카베 역시 마미야의 최면에 빠져들 뻔하지만, 다카베는 다른 방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최면술이라는 오컬트적인 소재를 택하여 스멀거리는 공포감과 컬트적인 감수성을 표현한 작품으로,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이상심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롱쇼트의 고정된 화면과 명암대비가 극명한 조명, 부조화스러운 음향도 정체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더욱 배가시킨다.  



 

 

極道恐怖大劇場 牛頭 극도공포대극장 우두
directed by 三池崇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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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미이케 다카시의 2003년 작입니다.

이 영화는 <이치 더 킬러>나 <비지터 Q>에 버금가는 걸작입니다. 생소하고 어딘가 부조리적인 초반부는 다소 지루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미이케 다카시 특유의 잔인한 유머가 빛을 발합니다. 다음 장면을 상상할 수 없는 황당한 설정과 가장 잔인한 장면에서도 유머의 감각을 잃지않는 뛰어난 감각까지, 정말 미이케 다카시는 뛰어난 감독입니다.

올해 본 영화 중 best입니다.  (2003·07·20 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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