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Blossoms or The Yellow Man and the Girl 꺾어진 꽃 ★★★☆
Directed by D.W. Griff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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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고 있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Les amis de la Cinematheque 영화제" (꼭 저 지랄로 불어를 갖다 붙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의 상영작 중 하나입니다. 정성일이 그 특유의 협박성 어조로 (물론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도 안 보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 어쩌구 하시길래 챙겨 보게 되었습니다.

만들어진 지 87년이 지난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요? < Broken Blossoms or The Yellow Man and the Girl >는 그게 '거의' 가능한 영화입니다. Lucy를 연기한 릴리언 기쉬 Lillian Gish의 연약하고 상처받은 얼굴과 겁에 질린 몸짓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합니다. 무성영화 시대 특유의 과장된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정서적 공명을 불러 일으킵니다. 작은 키에, 영화 촬영당시 27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형같은 섬세한 얼굴선은, '시련받는 소녀'라는 거부하기 힘든 매혹의 소재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한 대 더 맞을까 움찔하는 순간순간마다 저의 가슴도 찢어졌습니다.

<꺾어진 꽃>은 '예쁜 소녀의 가슴아픈 시련記'인 동시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인종적 편견과 가부장적 폭력 등이 그 원인일텐데, 그 사랑이, Cheng Huan과 Lucy에게 남은 유일한 삶의 위안이고 희망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맘이 아프군요. 폭력과 알력으로 점철된 서양세계에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영국으로 건너온 중국인 Cheng Huan은 가능할 리 없는 그 이상이 꺾이고 아편굴을 전전하며 살아갑니다. 폭력적인 애비에게 채찍으로 맞는 게 일과인 Lucy는 지금껏 미소지어 볼 기회가 없을만큼 암담한 세계를 살아 가고 있구요. 삶의 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들 두 사람에게 사랑은, 이창동의 <오아시스>에서처럼, 뭔가의 해결책은 되지 않을지언정, 기대어 쉬고 위안받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을테데, 그 '사랑'을 빼았기고 두 사람은 죽음에 이릅니다...

그쵸, 졸라 신파지요? 하지만 정통신파(?)의 위력을 최근 <너는 내 인생>에서 다시금 깨달은 저로서는 이 뻔한 멜로드라마에 충분히 울어줄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무성영화가 아니라서 <너는 내 인생>의 황정민처럼 Cheng Huan도 울부짖었다면 내가 함 울어줬을텐데...

가장 애매한 장면은 Cheng Huan이 일종의 성욕을 품고 Lucy에게 다가섰다가 포기하는 장면입니다. sex까지를 포함한 순수한 사랑이란 건 감당할 수 없었을 시대였겠지만, 그런 시대적 배경 이외에도, 황인종에 대한 혐오나 어떤 공포 같은 맥락에서 나온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야만인, 뭐 그런 이미지쯤이었을까요? 그리피스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건 해묵고 재미없고 관심없는 주제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하긴 황인종이 미성년자같은 백인 여자애랑 엎어져 떡을 치는 영화라면,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겠지요!

중국인 Cheng Huan을 연기한 배우는, 당연히 Richard Barthelmess라는 백인입니다. 이것 또한 새삼스러울 거 없는 얘기겠지요. 중국인을 포함한 동양배우들이 일본을 배경으로 줄창 영어로 얘기하는 게이샤 영화를 아무 거부감없이 보는 사람들이고 보면, 사실성 여부에 아랑곳않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미국인들의 능력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여기에 가시면 <꺾어진 꽃>의 자세한 소개와 자막으로 처리된 모든 대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는 Lucy를 연기한 릴리언 기쉬 Lillian Gish의 사진입니다. 무성영화시대의 대배우였다고 하는군요. 그녀가 <꺾어진 꽃>에서 죽음의 순간 마지막으로 '만들던(!)' 미소는, 제가 지금껏 본 가장 슬픈 미소였습니다.
<사냥꾼의 밤>에서 고아원(?) 원장으로 나왔던 그 배우인 것 같군요.   (2006·01·2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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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TITLE (K)  흩어진 꽃잎
 
TITLE (E)  
 
TITLE (O)  Broken Blossoms
 
DIRECTOR  D.W. 그리피스   D.W.Griffith
 
ADDITION  1919 | 35mm  | 70min  | 미국  | B&W Silent  

출연:릴리언 기쉬, 리처드 배틀메스, 도널드 크리스프, 애서 하워드

무성영화의 문법을 창시한 그리피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이루며 무성흑백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영화 기법들을 집대성한 영화이다. 영국의 슬럼가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 이민자 쳉 후안과 권투선수 아버지 아래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루시 버로우가 사랑에 빠지며 겪는 사회적 불관용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감독 자신의 오리엔털리즘적 시선이 맑스주의 영화비평자들의 성토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피스가 무성영화 시대의 대배우 릴리언 기쉬에게 사용한 매혹적인 소프트 포커스 쇼트는 서사를 강화하는 기법의 진일보였으며, 몽환적인 매혹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All That Jazz 재즈는 나의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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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에 실린 글입니다.]

<올 댓 재즈>는 꽤 ‘현실감’있는 뮤지컬입니다. 가령 길을 걸어가던 선남선녀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뜬금없이 춤을 추거나 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화려한 댄스 넘버와 노래가 나오지만, 지금 댄스 연습중이라거나 환상속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지요. <올 댓 재즈>는 뮤지컬 배우를 뽑는 오디션 장면과 안무 과정 등을 보여주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는, ‘뮤지컬 만들기에 관한 뮤지컬’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올 댓 재즈>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요. 극중 안무가 겸 영화감독인 기돈은 새로운 뮤지컬의 연출과 더불어 자신이 감독한 영화의 편집 작업을 겸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쇼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창조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올 댓 재즈>는, 무대 ‘뒤’도 실제 쇼가 펼쳐지는 무대 ‘위’ 만큼 열정적이고 화려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지요.

하지만 <올 댓 재즈>가 성공한 예술가의 삶과 쇼 비즈니스계를 화려하게만 묘사했다면, 그저 선정적인 눈요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올 댓 재즈>가 걸작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뮤지컬 영화’에 값하는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창조의 주체자로서의 예술가의 자의식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올 댓 재즈>는 감독 밥 포세의 반 자전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밥 포세는 <시카고>나 <피핀> 등의 뮤지컬 연출가이자, <캬바레> 등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습니다. 뮤지컬 연출과 영화 제작을 동시에 진행해야하는 영화상의 설정은 그가 < Lenny >라는 영화를 만들며 실제 겪었던 일이구요. 감독의 가족사나 흡연습관, 그리고 실제 밥 포세의 사인(死因) 등도 영화 속에서 묘사된 것과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이렇듯 개인적 체험에 상당부분 근거한 영화이지만, <올 댓 재즈>는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온 예술가의 자아도취를 드러내는 대신, 오히려 실패와 좌절, 그리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좌절의 원인은 일차적으론 갑자기 닥친 병마와 쇼 비즈니스계를 지배하는 경제논리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론 뛰어난 재능과 불굴의 열정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로 귀속되지요. 마치 ‘죽음’과 대결하듯 혹은 화해하듯, 마지막 무대를 펼치는 기돈의 모습은, 한 예술가의 자화상일 뿐만 아니라, 실패와 좌절, 결국엔 죽음과 대면해야하는 인간, 그 보편의 모습일 것입니다.

P.S. 뛰어난 안무가의 영화답게 <올 댓 재즈>에는 눈을 즐겁게하는 많은 댄스 넘버들이 있습니다. 특히 < Welcome Aboard Air Rotika > 는 좀 과하게 섹시합니다. ^^

P.S. <올 댓 재즈>에서는 또한 서른살 즈음의 제시카 랭의 풋풋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76년도 판 <킹콩>을 매혹했던 그 섹시한 미소, 저렇게 아름다운 ‘죽음’이라면 누군들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2006·01·21 03:45)

Giù la testa 석양의 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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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에 실린 글입니다. 아, 이걸 글이라고 올려놨나... 부끄럽지도 않냐...]

Directed by Sergio Leone
세르지오 레오네의 대표작이라면 <달러 삼부작>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꼽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겠지만,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 좀도둑 후안과 IRA출신의 폭파전문가 숀의 우정을 그린 <석양의 갱들> 역시 레오네식 웨스턴의 매력과 감독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함께 담아낸 흥미로운 영화다. <석양의 갱들>은 전/후반부가 이질적인 두 개의 플롯이 구성되어 있어 마치 두 편의 영화가 하나로 연결된 듯 보인다. 전반부가 위력적인 다이너마이트에 얽힌 해프닝과 그를 이용하여 은행을 털려고 하는 계획을 코믹하게 묘사했다면, 후반부는 피로 얼룩진 멕시코 혁명의 참상과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스펙터클한 총격씬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이질성은 내정된 감독이 중도에 레오네로 교체되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코믹함이 강조된 스파게티 웨스턴의 외피에 당대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정치적 코멘트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오쩌둥의 혁명론을 인용하며 시작된 영화가 시종일관 지배계급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석양의 갱들>은 일견 좌파성향의 감독이 전세계를 뒤흔들던 68혁명의 물결에 대한 지지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솔리니 체제와 2차대전을 직접 경험한 레오네는 폭력에 기댄 사회변혁에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정치적으로 과격했던 당대의 정치적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고다르의 영화들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비판적 입장을 취해 왔다. 잔인한 학살씬이 몇 번이나 등장하고, 정부군 장군을 나찌처럼, 혁명가를 기회주의적 배신자처럼 묘사하는 <석양의 갱들>은 정치적 명분하에 자행되는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한 감독의 염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석양의 갱들>에서 폭력의 쾌감은 사람과 사람이 총을 맞대고 결투하는 장면이 아니라, 대량의 다이너마이트로 다리를 파괴되고 열차끼리 충돌하는 스펙터클에서 나온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이 < A Fistful of Dynamite >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석양의 갱들>가 레오네의 영화 중 가장 정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스파게티 웨스턴 고유의 매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눈에 대한 클로즈업과 빠른 편집의 총격씬, 그리고 엔리오 모리꼬네의 턱없이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 등은 레오네식 웨스턴의 매력을 만끽하는 데 충분하다. 여기 다시 한 번 비열한 불한당들이 펼쳐지는 복수와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 점은 배경이 서부이거나 멕시코 혁명의 한복판이거나 다를 바 없다.    (2006·01·16 09:53)

簪 장식비녀 ★★☆
DIRECTOR  시미즈 히로시淸水宏  
jmdb    cinematheque.seoul.kr

실은 2005년에 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찬사의 말을 아끼지 않던 그 분의 심정,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열라게 재미없었어요. 맨 마지막 장면, 우산 같은 걸 받고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은, 화투장의 비광을 보는 듯한 느낌... 이런 불경한...-_-

여튼 일본 꼬마애들은 열라 시끄럽군요. 비녀에 발이 찔린 류 치슈(역시 젊었을 때부터 비실비실 체형이었군요.)의 옆에서 "감바레" 어쩌구 떠들어 대는데 짜증나 죽는 줄 알았어요. 여기에서 저기까지 왔다갔다 걷기 연습하는 장면만 25분은 될 거 같습니다. 뭐하쟤는겨 도대체?

업히란다고 그렇게 홀랑 여리디 여린 아낙네의 등에 업히다니, 뭐하는 놈인가 싶더군요. 역시 일본인들은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2006·01·01 23:19)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TITLE (K)  장식비녀
 
TITLE (E)  The Ornamental Hairpin
 
TITLE (O)  簪
 
DIRECTOR  시미즈 히로시淸水宏   Shimizu Hiroshi
 
ADDITION  1941 | 35mm  | 75min  | 일본  | b&w  

출연: 다나카 기누요, 류 치슈, 사이토 다츠오, 히모리 신이치, 가와사키 히로코

이부세 마스지의 유머 넘치는 원작을 시미즈 히로시가 세련되게 연출해낸 우아한 멜로드라마. 미노부 산을 찾는 참배객들로 늘 번화한 시모베 온천의 여관. 귀환병인 난무라는 목욕하던 중 장식비녀에 발을 찔려 큰 상처를 입고 만다. 장식비녀를 떨어뜨린 에미는 이를 사과하러 오고, 난무라는 그녀를 보자 첫눈에 연심을 품게 되는데...


無能の人 무능한 사람 ★★★☆
감독 : 다케나카 나오토竹中直人
jmdb    cinematheque.seoul.kr
 
아... 일본어가 들리는군요. 자막이랑 같이 보니까 반 이상은 알아 듣겠더군요. 다들 말을 천천히 해서.

그 바보 아저씨 ろ 발음을 못해서 전부 ど로 발음하는데, 그게 웃기다고 생각되다니... 아... 일본어로 웃다니, 제 자신이 대견했습니다..-_-

영화도 졸라 재밌었어요.    (2005·12·29 23:13 )


아래는 영화제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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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K)  무능한 사람
 
TITLE (E)  Nowhere Man
 
TITLE (O)  無能の人
 
DIRECTOR  다케나카 나오토竹中直人   Takenaka Naoto
 
ADDITION  1991 | 35mm  | 107min  | 일본  | color  

출연: 다케나가 나오토, 후부키 준, 산토 도타로, 야마구치 미야코, 오스기 렌

자신의 가난한 일상을 작품화하는 사소설적인 작업으로 잘 알려진 만화작가 츠게 요시하루의 스토리를 기초로 만든 다케나카 나오토의 감독 데뷔작. 생계와 창작의 위협에 동시에 직면한 가난한 만화가가 돈을 벌기 위해 벌여놓는 황당한 사업들을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받는 낭만과 미학으로서의 가난을 보여준다. 코미디 배우로 유명한 다케나카의 예술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필견의 작품.  

King Kong 킹콩 ★★★★
Directed by Peter Jackson
imdb    naver

[ 영진공에 실린 글입니다. ]

잭 블랙이 연기한 Carl Denham은 '영화는 단돈 25센트로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놀라운 오락거리다' 뭐 그런 취지의 발언을 줄곧 하는데, 정확히 이 영화 <킹콩>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단돈 2500원 혹은 8천원에 이런 어마어마한 스펙터클을 구경할 수 있다니... 좋아하는 장르나 배우나, 뭐 그런 거에 관계없이, 영화랑 안 친한 분들도 무조건 봐줘야 하는 영화입니다. 안 보면 손해입니다.

압권은 킹콩이 세 마리의 티라노사우루스와 싸우는 장면. 입이 안 다물어집니다. 물론 피터 잭슨이나 혹은 다른 감독이 기술적 진보에 힘입어 조만간 더 어마어마한 장면을 보여줄 터이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박진감과 중량감의 괴수 격투씬이 아닐까 생각되었어요. '전율'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닐 거에요.

영화의 중간부분에 나오는 그 격투씬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상대적으로 그 이후, 뉴욕시를 헤집고 다니는 소동극은 그다지 임팩트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후반부에 가면 멜로(!) 코드가 강해지기 때문에 슬퍼하느라 정신없어져요. 8m 정도의 작은(!) 몸집으로 마천루 꼭대기에서 복엽기를 상대로 승산없는 싸움을 하는 마지막 장면의 킹콩은 어린 짐승처럼 연약해(!) 보일 지경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괴수 영화로서나 멜로 영화로서나, 영화팬 혹은 영화 창조자로서의 자의식의 반영으로서나 뭐하나 흠잡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걸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없겠지요.

하지만...

역시 저에게 있어서 피터 잭슨의 최고작은 여전히 <데드 얼라이브>입니다. 놀라운 영화이고 오랜 기다림에 충분히 값하는 영화이지만, 누가봐도 놀라울 그 웅장한 규모만으로는 <데드 얼라이브>에 그랬던 것처럼 '열광'할 수 없군요. '열광'이란 걸 하기엔 나이를 너무 많이 쳐먹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규모의 경제학'의 자장안에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데드 얼라이브>같은 영화는 소시적의 피터 잭슨같은 변태 감독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영화였지만, 글쎄요, 2억달러의 제작비와 세계 최고수준의 CG 기술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피터 잭슨 뿐일까요?

혼자 쓸데없이 고민 많이 했습니다. 나에게 별 4개나 4개 반이냐. 두말 필요없는 '걸작'이지만,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버금가는 감동은 느낄 수 없군요. <킹콩>의 죽음보다 <아무도 모른다>의 그 어린 아이의 죽음이 더 가슴아팠구요. 그래서 별 네 개.

그렇다고는 하지만, 역시 다시 보러가야겠어요. 정말 3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거든요.  (2005·12·19 21:49)

Dark Water 다크 워터 ★★☆
Directed by Walter Salles
imdb    naver

이 영화는 '실수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검은 물밑에서>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호러영화인 <링>의 감독인 나카다 히데오가 이 영화의 헐리우드 리메이크를 맡게 되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어디선가 줏어들었었거든요.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감독이 <중앙역>이라는, 꽤 평은 좋았지만 저로선 무척 지루했던 영화를 만들었던 브라질 출신의 월터 살레즈라는 걸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보다 말았을테데... 이렇게 지루한 영화가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가 아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군요. 보는 내내, 아, 나카다 히데오가 맛이 갔나보다, 안타웠거든요.

<다크 워터>는 원작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원작 소설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검은 물밑에서> 엄마가 어린 유령과 함께 죽음을 택한 것은 그녀의 母性을 자극하는 측은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검은 물밑에서>의 쿠로키 히토미 여사가 어린 유령을 안았을 때 모골송연한 공포과 함께 처연한 감동이 느껴졌더랬지요. 이렇듯 동양의 모성은 죽음의 영역까지 보듬는 자발적이고 무한한 사랑입니다. 반면 <다크 워터>에서 엄마가 어린 유령의 볼모가 된 것은, 그 어린 유령이 엄마의 친딸을 물속에 쳐박아 익사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모성에 대한 어린 유령의 갈구가 공격적으로 변하자 자신의 친딸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거래를 한 것이지요. 딸 대신 목숨을 내놓것 역시 모성이긴 하나, 이 영화에서 엄마가 유령 곁에 남게 된 것은 강요된 선택이었습니다. 외롭고 슬픈 영혼이라면 혈연적 밀접성과 관계없이 다 포용하는 <검은 물밑에서>의 엄마가 모성이라는 지고한 가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성자처럼 묘사되었다면, <다크 워터>의 엄마는 단순한 희생자에 머물고 맙니다. <다크 워터>에서의 결말-딸을 구하기 위해 엄마가 죽었다-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 감동의 폭도 줄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는 어릴적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엄마(제니퍼 코넬리 분)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묘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겠지요. 어쩌면 모성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딸을 위해'만으론 엄마가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이유가 안된다는 생각일까요?

영화는 또한 엄마의 신경과민도 정성들여 묘사하지만, 좀 군더더기 같더군요. 원작 영화의...

아... 귀찮어... 고만써야지...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 그지같다...


Angelo Badalamenti이 음악을 맡았군요.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멀홀랜드 드라이비>, <와일드 앳 하트>, <로스트 하이웨이> 등의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뭐,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든지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2005·12·05 06:26)

セーラー服と機関銃 세라복과 기관총 ★★☆
감독 : 相米慎二 소마이 신지
naver    jmdb   

소마이 신지는 이타미 주조 등과 함께 80년대 새로 등장한 주요한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주로 청소년들의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가장 유명한 영화는 아마도 이 영화 <세라복과 기관총>이 아닐까 싶군요. 당대 흥행 1위작이기도 하구요.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소마이 신지의 회고전도 있었죠. 일본 영화를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몇년전까지만 해도, 일본 영화의 걸작 같은 것들을 소개할 때 항상 들먹여지던 영화였죠. 일단 제목부터가 임팩트가 강하잖아요?

하지만 구미당기는 제목의 일본영화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최양일의 <꽃의 아스카 조직>라든가 <스트립댄서, 손가락을 적시는 여자>,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 <발광하는 입술>같은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대실망인 영화입니다. <고구센>같은 코미디거나 아니면 <코타로, 당당하게 가다>같은 엉망진창 학원물인 줄 알았는데, 아, 상당히 칙칙하군요. 여고생이 야쿠자조직의 보스가 된다는, '역할바꾸기' 상황이 유발할만한 어처구니없는 헤프닝 같은 것은 의외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령 주인공 이즈미는 야쿠자 보스가 되가는 과정 중에 심각한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보스가 된 후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여, 여고생과 야쿠자 보스라는 양립할 수 없는 신분적 갈등의 소지도 없애버립니다. 대신 헤로인에 얽힌 꽤 심각한 살상전이 묘사됩니다.

영화는 말하자면 성장 드라마입니다...라고 써보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말하기도 썩 뻘쭘하군요. 엘렉트라 컴플렉스같은 해석을 노리는 듯한 단서들-이즈미가 연정을 품고 있는 조직원 중 한 명은 이즈미의 죽은 아버지와 무척 닮아있는데다, 이즈미는 심지어 그가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여자와 섹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도 발견되기도 하지만, 글쎄요, 그저 혼란스럽기만 할 뿐 뭐하자는 수작인지 알 수 없는 영화입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상대조직을 치러가면서도 살랑살랑 춤을 추며 이쁜척만 해대는 얼빠진 계집애한테서 성장통이랄까, 성장에 따르는 현실감있는 고민의 흔적같은 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화끈한 야쿠자물이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니군요. 조직원들 사이의 동성애적 관계도 등장하고, 처절,하다고 영화속에서 설정되어 있는 죽음도 몇번이나 등장하지만, 글쎄요... 진지하게 보아주기엔 24년이란 너무 긴 세월이군요. <간장선생>으로 유명한 젊을적 에모토 아키라가 마치 <영웅본색2>의 장국영처럼 오만 궁상을 떨며 죽어가는 장면에선 어쩔수없이 실소가 터집니다.

한편 <세라복과 기관총>의 영화적 기법은 꽤 낯설게 느껴집니다. 롱 테이크와 롱 숏으로 일관하다시피 하고 있는 탓에 꽤 예술적 흥취(?)도 풍깁니다.

글쎄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뭐 심각하게 해석하자면 그러지 못할 영화도 아닌 듯 하군요. 여튼 저에겐 무척 재미없는 영화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들자면... 역시 상대 조직 보스의 방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면 '快感 かいかん!'라고 말하는 슬로우 모션이겠죠.    (
2005·11·27 00:03)

Corpse Bride 유령신부 ★★★☆
Directed by Tim Burton & Mike Johnson
imdb    naver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전 팀 버튼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나마 그의 영화중 가장 좋아하는 건 <크리스마스의 악몽>입니다. 물론 그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팀 버튼의 영화'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테죠.

이 영화의 제작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전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잭이 등장하는 스핀오프같은 게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령신부>의 빅터는 해골이라 해도 좋을정도로 삐쩍 마른데다 유령신부도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그 해골여자 캐릭터와 비슷하잖아요. 저처럼 생각한 분, 많지 않나요? ^^;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말은 없습니다만... 어쩐지 <파이널 판타지>라는 황당힌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 비슷한 당혹감이 들더군요. '실제배우'가 연기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목표로, 저렇게 많은 제작비와 공을 들여 정교하게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 요량이면, 차라리 실제 사람으로 만들지 뭐하는 개삽질냐, 싶었었죠. 이 영화도, 분명 CG임이 분명한 장면들이 종종 나옵니다. 물론 오브제의 움직임이 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CG의 힘을 빌릴 거면 차라리 전부 CG로 만들지 뭐하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냐, 싶더라구요. <월레스와 그로밋>이 뛰어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는 건, 가공할만한 집중력과 삽질로 이루어진 수작업의 결정체,라는 느낌이라서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론 헬레나 본햄 카터가 심지어 애니메이션에서까지 저런 이미지로 등장하는 게 좀 못마땅하네요. 헬레나 본햄 카터라면 전 <전망좋은 방>이나 <하워즈 엔드>, <햄릿> 등에서의 당돌하지만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뭐 그런 배우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파이트 클럽> 이후의 그녀는 마약중독자, 원숭이 등을 거쳐 급기야 시체에게 이미지를 빌려주는 지경에 이르렀군요. 흑...   (2005·11·26 21:00 )

発狂する唇 발광하는 입술 ★★★
imdb    naver    omega.co.jp

[ 영진공에 올려주셨군요. 호호...]

이런 종류의 영화, 한 두 편이 아니지만, 이 영화도 꽤 손색없는 '정신나간' 영화입니다. 미국 등지에서도 DVD가 발매되어 나름의 컬트팬도 갖고 있는 꽤 유명한 영화죠.

제작진도 화려합니다. 감독 사사키 히로시구는 쿠로사와 기요시의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 이래로 죽~ 조연출을 맡아왔다고 하는군요. 나카다 히데오의 <링>, <여우령> 등의 각본가이기도한 타카하시 히로시가 시나리오를 맡았고, 오오스기 렌이나 아베 히로시 등 눈에 익은 배우도 나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거의 의미가 없는 짓이지만... 여고생 네 명의 목이 잘린 채 발견되는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미치오가 지목되고, 그의 가족-엄마, 두 여동생인 사토미와 카오리-은 매스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려, 집에서 칩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여자 탐정과 그의 남자 조수가 실종상태인 미치오를 찾아주겠다고 나서며 사토미의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됩니다. 그 와중에 발정난 엄마와 카오리는 그 남자조수와 쉴새없이 섹스를 하고, 이런 저런 소동 끝에 사토미의 염력(!)에 살해당한 형사의 시체에 사토미는 강간(!)당합니다. 일련의 섹스는 여자탐정이 어떤 괴물(?)을 불러내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었다는군요. 한편 사토미의 염력을 용의주시하고 있던 FBI(!) 요원들은 TV등을 통해 사토미를 감시하지만, 결국 아무일도 하는 게 없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이 모든 소동이 미치오와 여자 탐정의 계획이었고, 소녀들을 죽인 건 엄마와 사토미, 카오리였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이에 격분한 소녀의 가족들이 엄마와 사토미 등을 추적하고 영화는 난데없이 격투영화로 변해 한참 신나게 싸워댑니다. 결국 사토미와 미치오만 살아남는데 사토미의 뱃속에는 오빠인 미치오의 아기가 자라고 있습니다. 사토미가 "우린 남매니까 아이를 낳으면 안되겠지?" 슬퍼하자 미치오는 "사실 난 어릴적에 엄마 아빠에게 납치되어 왔기 때문에 실제로는 너와 나, 피가 안섞였어." 어쩌구 하는 소리를 합니다. 이에 사토미가 발정나서 "하잇떼..."하며 둘이 또 섹스를 하고 있는 중, 살아남아 있던 여자 탐정이 도끼로 둘을 살해합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본의 FBI요원(!)은 작전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누군가에게 하며,  살상반경 20km의 폭탄을 투하하길 요청합니다. 여자 탐정은 투하되는 폭탄을 보며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고 좋아하며 영화가 끝납니다.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에는 에로, 액션, 호러, 오컬트, 심지어 뮤지컬 등 온갖 장르를 뒤섞여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하고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신나간 짓만 해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꽤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기본적으론 이딴 영화에 흥분하기엔 제가 나이를 너무 많이 쳐먹은 탓도 있고, '기시감'을 느끼게 할정도로 이런 '정신나간' 영화를 많이 만들어져왔다는 점도 있고-가령 이 영화와 같은 해에 만들어진 <비지터 Q>나 <이치 더 킬러>, 정신나간 야구영화 <폭렬갑자원> 등-, 무엇보다 이 영화의 비쥬얼이 전.혀. 쇼킹하지 않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령 이 영화의 섹스신은 기껏 가슴이나 빠는 정도이고,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일, 사토미가 시체와 남자 조수에게 동시에 강간당하는 장면에선 속옷을 착실하게 착용한 상태입니다. 도끼로 머리를 찍는다든지 하는 좋은 고어의 소재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구요. 가령 여자 FBI가 남자조수와 섹스하는 중 머리가죽이 벗겨지는 장면도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정신나간 장면들은 많이 있지만, 그런 정신나간 설정만으로는 관객을 흥분시키기 부족하지요. 이 장르의 걸작인 미이케 다카시의 <비지터 Q>나 <이치 더 킬러>같은 영화는 가령 아줌마 젖짜기 장면이나 내장이 날라다니고 핏줄기가 분출하는 극단적인 신체손상, 사후경직된 시체에 성기가 찡겨 오도가도 못하는 위악적인 설정 등, 화려한(!) 볼거리와 과격함으로 무장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발광하는 입술>은 너무 몸을 사린달까요.

사실 이렇게 길게 낙서를 할 이유도 없는 영화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 이런 류의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기 때문에,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긴 낙서를...

한마디로 소문만 요란한 영화입니다. 뭔가 심오한 메시지야 애시당초 기대도 안 합니다만, 이렇게 볼 게 없어서야... 안 봐도 상관없는 영화입니다. 정 봐야겠다면 차라리 <비지터 Q>나 <이치 더 킬러>를 복습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2005·11·20 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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